[영화 속 경제]어느 비행사에 대한 추억 - 돈에 움직이는 용병, 그러나 사랑 앞에선…

‘용병’(傭兵)이란 급료를 주고 고용한 병사다. 용병에 대해서는 차별이 존재한다. 주류 사회에 끼지 못하는 이방인인 데다 무력을 갖고 있는 데 대한 두려움도 용병을 기피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시시도 쥰 감독의 <어느 비행사에 대한 추억>은 이름 없는 용병 비행사와 왕국의 공주간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다. 가상의 왕국인 레밤 황국과 아마츠카미 왕국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다. 레밤 황국의 황태자 카를로는 귀족 가문의 딸인 파나에게 1년 안에 전쟁에서 승리한 뒤 아내로 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전쟁은 길어진다. 레밤 황국은 파나를 본국까지 데려오는 작전에 들어간다. 그 임무를 맡은 자가 샤를르. 빈민가 출신의 혼혈 용병이다. 별다른 호위도 없이 샤를르는 파나와 함께 적이 장악한 하늘을 뚫고 1만2000㎞를 날아가야 한다. 3박4일간 목숨을 건 모험을 하면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영화 속 경제]어느 비행사에 대한 추억 - 돈에 움직이는 용병, 그러나 사랑 앞에선…

샤를르는 ‘자유’ 때문에 비행사가 됐다. 그는 외친다. “하늘은 공평해. 여기는 신분 차별도 없고 자유롭거든.” 하늘에서는 오직 비행기술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땅을 밟으면 신분이 되살아난다. 샤를르와 파나는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 <레드라인> 등을 만든 매드하우스가 만들었다. 원작은 2008년 일본 서점가를 휩쓴 동명소설이다. 압권은 역시 스펙터클한 공중신이다. 샤를르는 파나를 안전하게 레밤 황국까지 인도하면 그 대가로 막대한 포상금을 받는다.

그뿐이다. 출신이 비천한 용병이 고귀한 파나 황태자비를 모시고 왔다는 것이 알려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황국의 굴욕이 된다. 파나의 관심을 느낀 샤를르도 입술을 깨물고 말한다. “용병을 움직이는 것은 돈입니다. 그뿐입니다.”

용병의 역사는 길다. 이탈리아에서 14~15세기로 이어지는 약 200년간은 ‘콘도티에레(용병대장)의 전쟁시대’라고 불린다. 나폴리, 베네치아, 밀라노 등 부유한 도시들은 예외없이 용병을 고용해 도시를 방어했다. 도시국가 지도자와 콘도티에레 사이에 맺어진 계약은 ‘콘도타’라고 불렸다. 콘도타는 각종 고용 계약이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도시국가의 기대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용병대장들은 격렬한 전투를 피했다. 프랑스의 샤를 8세는 콘도티에레 군대를 물리치고 전 이탈리아를 수중에 넣었다. 이는 정치사상가인 마키아벨리가 <군주론>과 <전술론>을 통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용병이 아닌 국민 군대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 근거가 됐다.

이탈리아에서 왜 용병제가 발달했을까? 유르겐 브라우어와 후버트 판 투일이 쓴 <성, 전쟁 그리고 핵폭탄>을 보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던 도시국가에서는 상업을 뒤로 미루는 것이 불합리한 일로 간주됐다. 안보보다 상업을 우선시했다는 얘기다. 13세기 페스트가 반복되면서 유럽 인구가 급감해 징집이 쉽지 않았던 탓도 있다.

이런 문화다 보니 징병해 민병대를 급조해도 전쟁이나 전투에서 이길 리가 없다. 영토 수호를 위해서는 외부전문가(용병)를 고용하는 것이 비용 대비 편익이 높다고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판단한 것도 당연했다. 1342년 피렌체의 용병 숫자는 민병대보다 20배나 많았다. 당시 용병은 독일 기사들이었다.

이라크전에서는 미국이 용병 회사를 투입해 논란이 됐다. 대표적인 기업이 블랙워터USA다. 이 회사는 10여개 국가에서 전직 특수부대 요원 2만여명을 고용했다.

블랙워터의 직원들은 바그다드 주재 미국 외교관과 정부기관의 보안과 경비 업무를 담당했다. 민간을 전쟁터에 투입시켰다는 점에서 ‘비윤리적’이라는 지적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적자에 허덕이던 미국 예산당국은 수십억 달러를 절감하는 효과를 봤다.

영화 속 경제

샤를르는 파나를 무사히 레밤 황국 비행선에 인도하면서 제 임무를 마친다. 떠나가던 샤를르는 파나가 탄 비행선에 접근해 포상으로 받은 금가루를 뿌린다. 용병에게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돈이 결코 전부는 아니다. 용병도 사람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