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흥미보다 깊이로! 진화하는 팟캐스트

나꼼수 이후 팬덤 현상은 사라지고 열기도 예전같지 않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지만 누구나 살아남을 수도 없다. 이젠 자극적인 것보다 전문성이 중요해졌다. 대안매체로서 안정적인 기반을 갖추려는 팟캐스트들의 다양한 변신이 주목된다.

네 시간에 걸친 녹음이 끝났다. 지치면서도 그럭저럭 방송을 마쳤다는 후련함으로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이하 <그것은…>)의 진행자 유엠씨(본명 유승균)가 스튜디오 문을 나섰다.

하지만 더 골치 아픈 일은 남아 있는 편집과정이다. 자를 부분은 자르고 앞뒤 배열도 신경 써가며 들어갈 음악까지 찾거나 만드는 데 꼬박 12시간이 걸린다. 유씨가 기획과 섭외까지 담당하고 광고에도 신경 써야 하는 터라 한창 힙합씬에서 활약하던 래퍼 시절은 과거가 됐다. 음악방송 등 2개의 팟캐스트 진행과 편집까지 더하면 ‘전업 방송인’이 된 것이다.

딴지라디오 스튜디오에서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의 출연진이 방송 녹음을 진행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그것은…>이 매주 주제를 선정하는 방식은 원칙이 없어 보이는 것이 원칙이다. 최근 방송된 ‘모두의 분만’ 편은 제왕절개가 위험하다는 인식은 다소 과장됐을 수 있다는,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주제를 다뤘다.

방송 게시판은 청취자들간 토론의 장으로 변했다. ‘국민영웅 이봉걸’ 상·하편 역시 한 선수의 과거사를 통해 당시 시대상을 분석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처럼 논란을 부르는 무작위한 소재 선정과 진행자들이 자유롭게 내뱉는 의견이 <그것이…>를 기존 매체는 물론 다른 팟캐스트들과도 차별화시키는 지점이었다.

살아남으려면 ‘품질’ 담보돼야
<그것이…>가 다른 방송과는 달라야 하는 이유를 꺼내며 유씨는 ‘시장’의 논리를 강조했다. 청취자들에게서 외면받는 팟캐스트를 만들면 즉각 도태되기 때문에 살아남으려면 그만큼의 ‘품질’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이래야 한다고 훈장질을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미디어도 덩달아 춤추는 데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팟캐스트로 몰렸다고 거기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제대로 된 방송을 만들려면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존의 매체가 다루지 않는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대안 매체이기 때문에 팟캐스트가 더욱 안정적인 기반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팟캐스트(podcast)라는 이름처럼 스마트기기 아이팟의 등장과 함께 대중화된 개인 방송인 팟캐스트는 사용자의 생활이 녹아 있는 새로운 방송 유통의 통로로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선 2011년 4월부터 방송된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와 함께 팟캐스트를 향한 시민들의 관심이 증폭된 이후, 덩달아 전체 팟캐스트의 다운로드 횟수도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나꼼수> 이후 약 10개월이 지난 현재, ‘누구나 쉽게 방송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은 절반만 맞는 얘기가 되었다. 팟캐스트들이 생존을 위해 더욱 전문성을 갖추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꼼수> 이후 팟캐스트는 어떤 변화를 맞았을까. 전체 팟캐스트의 다운로드 횟수만 보면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 팟캐스트 포털서비스를 제공하는 ‘팟빵’의 관계자는 “지난 연말 대선 전 <나꼼수>가 끝난 뒤부터 현재까지를 보면 <나꼼수> 청취자들이 다른 팟캐스트로 유입됐고 또 팟캐스트 채널들도 늘어났기 때문에 전체 다운로드 횟수는 소폭 상승하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 팟캐스트 채널 수는 6200개를 넘어선 상태다. 하지만 구독신청을 하면 자동으로 다운로드되는 팟캐스트의 특성상 청취자들이 얼마나 실제로 방송을 듣는지는 집계하기가 어렵다.

팟캐스트 제작자들은 대체로 청취자들의 관심 감소가 피부로 느껴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댓글 등 직·간접적으로 전해지는 반응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열심히 반응해주는 사람들 반응은 믿으면 안 된다. 공중파 방송처럼 시청률로 즉각 반응이 오는 게 아니어서 어느 정도 예측을 하는 수밖에 없지만, 매회 방송을 내보낼 때마다 위기감을 느낀다.”

유씨의 <그것은…>은 <나꼼수> 종방 직전인 지난해 10월에 첫 방송이 나갔다. <나꼼수> 이후 딴지라디오의 간판 팟캐스트로 자리잡은 <그것은…>의 방송 경험이 쌓이면서 유씨가 내린 결론은 “결국 완성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자극적인 소재를 쓰면 다음번에 더 큰 자극을 주지 않으면 반응을 이끌어낼 수 없다. 청취자들의 흥미를 볼모로 방송을 만들다가는 결국에는 도태되는 수밖에 없다.”

<나꼼수>를 위시한 시사·정치분야 팟캐스트가 대선 이후 사라지거나 이전에 비해 순위가 떨어진 현상은 유씨의 말을 뒷받침한다. 팟캐스트를 통해 정치적 의견을 홍보하던 정치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는 점을 고려해도, 전 정권의 실책을 꼬집기 위한 자극적인 정치 수사들이 난무했던 팟캐스트들도 동반적인 순위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

그 자리는 공중파 방송사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대체했다. <나꼼수> 종방 전부터 현재까지 10위권 내 순위를 유지하고 있는 팟캐스트가 딴지라디오의 <그것은…>과 <벙커1 특강>, 오마이뉴스의 <이슈 털어주는 남자>, 그리고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이하 <이이제이>)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면 ‘지속 가능성’과 ‘변화’란 과제가 제작자들에게 던져진 셈이다.

국내 채널수만 6200개 넘어서
지난해 8월 방송을 시작한 뒤 서서히 인기를 끌면서 올해 3월부터 7월까지 다섯 달 연속 전체 팟캐스트 순위 1위를 차지했던 <이이제이> 역시 기본적인 골격과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변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이제이>는 현재의 정치상황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다른 팟캐스트와는 차별화한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해방 전후 현대사를 전면에 내세운 팟캐스트다.

초기 ‘깡패특집’에서 김두한·이정재 등의 정치깡패와 백색테러를 다룬 데 이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박마리아(이기붕 전 부통령 부인)와 김마리아(이범석 전 국무총리 부인) 간의 권력 암투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팟캐스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진행자들이 청취자들이 참여한 공개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 이이제이 생활역사협동조합 제공

<이이제이>가 방송 초기에 비해 내용면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진행자의 연애사 등 신변·과거와 관련된 잡담이 줄어든 데 있다. 청취자들을 모으는 데 크게 공헌한 ‘섹드립’과 욕설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흥미 위주의 방송으로 흘러가는 것은 막겠다는 의지다.

“개인 얘기가 방송에 나오다 보니 언젠가부터 더 이상 끄집어낼 레퍼토리가 없어지는 문제가 생기는 데다, 자주 쓰던 성대모사도 반응이 좋지 않아 자제하려고 노력 중이다.” 진행자 3인 중 한 명인 이종우 박사(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는 “근래 들어 갈수록 조금씩 다운로드 수가 줄어들고 있는데 큰 변화를 주진 않더라도 역사적 사실과 올바른 시각을 전달하는 취지는 살릴 수 있게 질적인 면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가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 진행자들의 자발적인 노력만으로 제작되던 <이이제이>가 지속적으로 방송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게 된 것은 청취자들이 결성한 협동조합의 힘이 컸다. “함께 진행하는 이 작가가 유명해질 수 있다며 꾀기에 그말에 혹해서 시작한 일인데 이젠 어쩌다 보니 협동조합 이사장까지 맡게 됐다.” 이 박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이이제이 생활역사협동조합은 10월 4일 현재 783명의 조합원이 소속돼 있다. 녹음이 약 10일 안팎의 간격을 두고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이뤄지는데, 여기 들어가는 제작비는 조합의 지원과 광고수입 등으로 충당한다.

영상 등 ‘팟캐스트 이후’가 더 고민
팟캐스트에 진출한 협동조합 방식은 국민TV미디어협동조합(국민TV)이 대표적이다. 현재 국민TV에는 1만6000여명의 조합원이 가입해 있다. 국민TV의 팟캐스트가 현재 상위 10위 안에 4개나 포함될 정도로 <나꼼수> 이후 팟캐스트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치 관련 팟캐스트가 전반적으로 퇴조하는 상황이지만 국민TV는 고정층 청취자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 콘텐츠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딴지라디오는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위한 방안으로 광고에 주목했다. 팟캐스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안정성이 기반이 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딴지라디오의 팟캐스트를 총괄하는 김용석 딴지일보 편집장은 “<나꼼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당시에도 청취자들의 자발적인 후원금을 제외하면 광고로 들어오는 수입은 없었다”고 말했다. 다운로드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것을 감당할 서버 비용만 급격하게 높아지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은 뒤 광고를 통한 수익모델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그것은…>을 비롯한 딴지라디오 팟캐스트에 붙는 광고의 절대다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광고다. 광고주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대안 매체라는 정체성을 지킨다는 방침 때문이다.

김 편집장은 “광고 판매는 제작비를 채울 수 있을 만큼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 재정적인 취약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며 “매일 진행되는 명사 특강 등 <나꼼수> 시절보다 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콘텐츠를 갖추는 방식으로 팟캐스트 시장에서의 입지를 키워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작자들의 고민은 <나꼼수> 이후 팟캐스트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팟캐스트 이후’를 향하기도 했다. 영상 팟캐스트가 활성화되지 않은 현재로선 대안적 특성만을 내세워 음성 중심 팟캐스트만으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와 경쟁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의 유씨는 현재 팟캐스트가 직면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시덥지않은 사람들이 나와 시덥지않은 말을 하는 게 팟캐스트의 장점이지만 반대로 그런 얘기는 술자리에만 나가도 들을 수 있다. 비록 시덥지않은 사람이지만 시덥게 말할 수 있어야 듣는 사람들이 계속 들을 것이다.”

스포츠 분야 급부상… ‘이용균 야구멘터리’ 기대

<나꼼수> 열풍이 지나간 자리엔 그동안 정치 관련 팟캐스트에 가려진 다양한 이색 팟캐스트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대중적인 접점을 찾지 못해 해당 분야에 관심을 가진 일부에게만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방송이 거듭되면서 차츰 두각을 나타내는 팟캐스트들도 나오고 있다. 특히 가장 대중적인 관심 주제인 스포츠 관련 팟캐스트들은 독자적인 청취자층을 형성해 왔다.

현재 팟캐스트 상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종목은 축구다. 스포츠분야 팟캐스트 1~3위는 모두 축구 해설위원들이 만드는 팟캐스트가 차지하고 있다. 1·2위인 <데일리 풋볼리스트>와 <주간 서형욱>은 축구 관련 인터넷 매체인 <풋볼리스트>에서 제작하는 특성상 대표팀 경기 방송해설에서 들을 수 없는 잡다하고 자유로운 내용을 포함해 인기를 끌었다. <전격 서울사람들>처럼 K리그 각 구단 서포터들이 진행하는 ‘편파적인’ 입장의 팟캐스트 역시 구단 팬 사이에선 화제가 됐다.

야구 관련 팟캐스트 중에서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에 관한 주제만 다루는 가 국내 야구를 다루는 방송들보다 월등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 방송은 청취자와 홈페이지 이용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매회 주제를 선정하며, 포스트시즌이 진행 중인 시점에 맞춰 미국 현지 취재까지 진행한다는 점 때문에 주목을 받기도 했다.

경향신문도 체육부 이용균 기자가 진행하던 <이용균의 야구멘터리>를 대폭 보강한 팟캐스트를 준비 중이다. 11월 초부터 제공되는 경향신문의 팟캐스트는 기존의 스포츠 팟캐스트에서 생생한 영상을 확인할 수 없었던 한계를 보완해 경기 및 인터뷰 영상과 함께 심도 있는 해설을 포함할 예정이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