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다이하드;굿데이 투 다이 - ‘원전마피아’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유

아무리 총과 주먹에 맞아도,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세게 차에 치여도 죽지 않는 할리우드의 영웅들이 있다. 람보, 제임스 본드, 이단 헌트, 인디아나 존스 등이다. 그리고 존 맥클레인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존 무어 감독의 <다이하드;굿데이 투 다이>(2013)는 다이하드 시리즈의 다섯 번째 이야기다.

<다이하드>가 나온 것이 1988년. 시간의 흐름을 존 맥클레인도 피할 수 없다. 존 맥클레인 역을 맡은 브루스 윌리스도 많이 늙었다. 30대 초반이던 그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고, 헤어스타일은 대머리가 됐다. 과거처럼 몸으로 때우는 멋진 액션을 기대한다면 그야말도 도둑놈 심뽀다. <다이하드> 시리즈에 갈수록 총격전이나 차량, 항공기, 헬리콥터, 장갑차 등을 이용한 액션이 많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할배’ 소리를 듣지만 맥클레인은 맥클레인이다. 맥클레인은 딸 루시로부터 아들 잭이 러시아에서 한 사건에 휘말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스크바로 떠난다. 법정에 선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 그의 눈앞에서 대형 폭탄테러가 발생한다. 아들은 법정에 선 정치범 코마로브를 데리고 탈출한다. 알고보니 아들 잭은 작전을 수행 중인 CIA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맥클레인은 폭력에 휘말린다.

[영화 속 경제]다이하드;굿데이 투 다이 - ‘원전마피아’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유

아들 잭이 법정에서 탈출시킨 코마로브는 러시아 정·관계를 흔들 ‘파일’을 갖고 있다. 파일은 방사능으로 오염된 체르노빌에 있다. 코마로브는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핵심인물이다. 그는 다른 흑심을 품고 있다.

<다이하드;굿데이 투 다이>의 소재는 핵이다. 영화 속에서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건은 우라늄을 빼돌리려다 잘못해 폭발한 것으로 설정됐다. 핵발전은 어느 나라나 ‘원전마피아’들이 독점한다. 원전마피아란 원자력 발전에 관련된 소수의 기업과 개인을 의미한다. 최근 국내 원전마피아들은 원전에 부실 부품을 공급했다가 원전이 가동을 멈추는 사태가 벌어졌다. 온 국민이 삼복더위에 때아닌 전기절약에 나서게 된 원인도 원전마피아들의 탐욕 때문이다.

원전마피아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경제학적으로 볼 때 원전사업은 진입장벽이 높은 ‘자연 독점’ 상태이기 때문이다. 자연 독점이란 초기 투자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후발주자가 뛰어들지 못해 생긴 독점 상태다. 법률적으로 독점권을 주지는 않았지만 현실적으로 경쟁하기 힘들다. 철도, 가스, 전기, 상수도 등이 대표적이다. 규모의 경제가 적용된다.

큰 비용이 소요되는 고정설비를 먼저 갖추어야 하는 산업은 대개 생산량을 늘리면 생산단가가 인하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다 설비 규모에 맞는 수준에 이르면 그 이후는 생산량이 늘어도 생산단가가 추가로 하락하지는 않는다. 이 수준을 ‘최소 효율규모’(minimum efficient scale)라 부른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산업들은 최소 효율규모가 매우 크다. 최소 효율규모 이하의 생산밖에 못한다면 과도한 투자를 한 셈이고, 투자비용을 조기에 회수하기 힘들어진다.

원전도 막대한 건설비, 제한된 인력, 높은 위험도 등으로 인해 복수사업자가 나오기 힘들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전 건설과 운영을 독점했다. 원전설비를 만들어 납품하는 업체도 두산중공업 등 일부에 그쳤다. 한수원 출신 인사들은 퇴직한 뒤 원전 관련 회사를 만들었다. 선후배끼리 밀어주고 당겨주는 그림이 완성됐다. 경쟁이 없으니 높은 마진이 보장됐고, 그 대가로 뇌물수수는 관례가 됐다.

영화 속 경제

코마로브가 20여년 만에 찾은 체르노빌에는 그가 감춰놓은 우라늄이 그대로 있다. 원전마피아가 아니라면 우라늄이 있다고 가르쳐줘도 갖고 가기 힘들다. 때로 독점은 문제가 생겨도 단죄하기 힘들다. 이를 대체할 다른 상품이 없기 때문이다. 원전마피아라는 카르텔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