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용산참사 마지막 재판 2명 “용산의 용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

김영근씨(55)는 오래 서 있지 못했다. 걸을 땐 다리를 절룩거렸고, 멈출 땐 금세 주변의 바위나 돌 위에 앉았다. 허리를 주무르기도 했다. “오래 서 있으면 아직도 다리와 허리가 시큰거린다”고 김씨는 말했다. 학교에선 체조부 활동을 했고, 직장을 다닐 때는 보디빌딩 대회에서 3위에 입상한 적도 있던 김씨가 다리와 허리를 다친 것은 2009년 1월 20일 발생한 용산참사에서였다.

그때를 입에 올리는 순간 그의 얼굴에 분노와 고통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용산의 용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 옛날 얘기는 그리 하고 싶지 않다.”

건물 옥상서 추락 후 인생 송두리째 변해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 그는 생지옥 같았던 그날 남일동 건물에 있었다.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고 망루에 불이 붙었어요. 치솟는 열기와 연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쪽문으로 달아났어요. 몇 발짝 뛰었는데 허공이 나타났어요. 필사적으로 난간에 매달려 있다가 ‘불에 타죽기보다는 시체라도 멀쩡해야겠다’는 생각에 기도와 함께 손을 놨어요.”

김씨는 남일당 건물 옆 길바닥에서 발견됐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남일당 건물이 있던 자리에 7월 5일 현재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 이상훈 기자

5층 건물 옥상에서 추락한 이후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변해버렸다. 발목 뼈는 산산조각이 났고, 두 손은 화상으로 그을렸다. 허리도 좋지 않아 오랜 시간 앉거나 서 있을 수 없었다.

다친 다리에 고름이 차오르면 그때마다 수술부위를 절개하고 철심을 새로 박아 넣어야 했다. 그렇게 열 번이 넘는 재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2011년 가을 무렵 퇴원했다. 김씨가 대책위원장으로 있었던 남양주시 지금동 재개발 문제는 그때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김씨는 바로 동네로 달려갔다. 김씨가 용산참사 부상자라는 점을 감안했는지 재개발조합이 전향적으로 보상협상에 나섰다. 그 해 12월, 김씨의 가족과 다른 남양주 철거민들은 보상을 받고 동네를 떠났다. 자신의 재개발 문제를 해결한 김씨는 경북 문경의 처가로 내려갔다. 밤마다 떠오르는 그날의 악몽, 꿈속에서 찾아오는 죽어간 동료들. 김씨는 “사람 만나기가 무섭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인터뷰도 시내에서 진행했다. 집에서의 인터뷰를 극구 거부했다. “장모님하고 처형이 아무런 생각하지 말고 여기서 몸도 고치고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있다가 올라가라고 말을 해줘도 내 맘이 가시방석이죠.”

4년 전의 아픔이 여전히 그를 지배하고 있는 듯했다.

힘들게 입을 연 김씨는 “지금 생각해보니 2007년부터 조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 해 추석, 김씨의 일가친척들은 김씨의 아버지가 계시는 서울 성북구 정릉동으로 모였다. 김씨의 큰형은 김씨에게 “네 형수에게 들었는데 조만간 네게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니 몸조심해”라고 말했다. 김씨의 큰형수는 절을 다니다가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됐다. 김씨는 “형은 무슨 그런 미신을 믿느냐”며 웃어넘겼다. 사업 실패를 두고 하는 말이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형수의 예언은 하나둘씩 현실이 됐다. 2008년 초에는 아버지가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즈음 김씨가 사는 남양주시 지금동이 재개발지구가 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7월에는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회 의장이 동네에 찾아와 재개발 설명회를 열었다. 전세를 살고 있던 김씨는 재개발 이후 보상받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남 의장의 설명회에 참석했다. “남 의장이 보상도 받을 수 있게 도와준다고 했고, 믿을 만한 사람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전철연에도 가입했고 지금동 대책위원장도 맡게 됐죠.”

지금동철거대책위원장이 된 김씨는 전철연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회사를 퇴직했다. 다른 전철연 회원들과 함께 경기 수원 권선동, 평택 성매매지구 등 재개발지역 연대집회에도 참가했다. “가을에 평택 성매매촌(일명 쌈리)을 없앤다고 해서 남 의장하고 같이 내려갔는데 거기 여자들이 다들 전철연에 가입했더라고요. 근데 해결이 바로 됐는지 그 다음부터는 안 불렀어요.”

남일당 건물 옥상에 물건 올려주고 갇혀
2009년 1월 18일 밤 12시, 김씨는 남 의장의 전화를 받았다. 비상상황이니 용산으로 오라는 전화였다. 김씨는 밤이 늦어서 못간다고 했다. 이튿날, 남 의장은 다시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급한 일이니 꼭 오라고 전화를 했다. “망루를 세운 걸 알았으면 안 갔겠죠. 평소처럼 집회하고 이런 건 줄로만 알고 지금동 사람 2명을 더 데리고 갔어요.”

남 의장은 김씨와 지금동 사람들을 ‘운반조’로 편성했다. 농성에 필요한 물과 식량을 남일당 건물 옥상으로 올리는 역할이었다. 김씨와 동료들이 도착한 19일 밤, 이미 남일당 건물 주변에는 하나둘씩 경찰 기동대 버스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김씨는 정해진 물품을 위로 실어나른 뒤 내려오려 했다. 하지만 용역들이 길을 막아 나갈 수가 없었다. 다른 지금동 사람 2명은 용케 빠져나갔지만 김씨는 그대로 다른 농성자들과 함께 남일당 건물 옥상에 갇혔다.

김씨는 아직도 용산에 살고 있다. 밤마다 그는 남일당 건물에 서 있는 자신을 본다. “지금도 제대로 잠을 못자는 날이 많고, 망루에서 있었던 일들이 꿈에 나와요. 한 번 잠을 깨면 몇 시간을 토끼잠을 자면서 헤매죠. 그래도 다들 예전보다 지금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해요.”

운영하던 가게 잃은 후 전철연 활동가로
지석준씨(43)는 2000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순화동에 ‘나루’라는 장어요리집을 열었다. 2층짜리 일반 가정집을 고쳐서 11개 테이블을 갖춘 요리집이었다. 건강이 나빠진 아버지를 대신해 지씨와 지씨의 부인, 어머니가 함께 새벽 5시에 일어나 저녁 10시까지 손님을 맞았다.

지씨 가게의 단골손님 중에는 문화일보 논설위원을 지냈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도 있었다. 지씨는 윤 전 대변인의 얼굴을 기억했다. “어떤 분이 식사를 하고 나선 ‘장어값이 문화일보 몇 달치 구독료랑 비슷한데 1부만 구독하시죠’ 하길래 1부 구독을 했어요. 신문을 펴보니까 문화일보 논설위원이라고 나오던데 얼마 전까지 TV에 자주 나오시더라고요.”

가게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점이었던 2005년, 순화동 재개발이 시작됐다. 지씨가 활동하던 순화동 상인번영회는 그대로 ‘순화동 철거대책위원회’가 됐다. 상인번영회 총무였던 지씨는 대책위 총무를 맡았다. 대책위원장은 용산참사 희생자인 윤용헌씨였다.

2010년 12월 1일, 용산 남일당 건물이 철거되고 있다. | 이상훈 기자

재개발이 시작됐지만 가게가 철거되기 전까지 지씨는 원래대로 장사를 계속했다. 손님이었던 경찰관들도 계속해서 가게를 찾았다. 어떤 경찰관은 지씨에게 “투쟁해서 자기 권리를 찾으라”는 말을 전했다고도 한다. 2007년 들어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됐다. 순화동 철거대책위 48가구 중에서 지씨의 가게가 ‘시범 케이스’로 철거됐다. “그래도 제가 열심히 살 만큼 살았고, 남에게 손 한 번 벌린 적이 없어요. 가게를 할 때도 나랑 집사람이랑 어머니랑 셋이서 새벽 5시에 일어나 저녁 10시까지 일했는데 그게 하루 아침에 개발이 된다고 하니….”

하루 아침에 가게를 잃은 지씨는 이후 전철연 활동가로 살았다. 재개발 과정 속에서 입은 상처가 계기가 됐다. 20년 넘께 살아온 순화동은 지씨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였다. 형님 아우 하면서 지내던 동네 사람들과 상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동네 친구들’은 재개발조합원과 세입자로 나뉘어 서로에게 삿대질을 했다. 수십명의 용역이 자신의 가게를 철거하는 과정 역시 지씨에겐 폭력이었다.

“인간 취급을 하지 않고 인간 아래로 보는 느낌이었어요. 선진국은 마지막 한 사람이 나갈 때까지 보상을 해주고 나서 공사를 하는데 무조건 용역 데리고 밀어붙이니까 더 열이 받는 거죠.”

지씨가 그날 용산 남일당 건물에 온 것 역시 전철연 활동의 일환이었다. 지씨는 평소 형님처럼 따르던 윤용헌씨와 함께 망루에 올랐다. 망루에서 불이 나자 윤씨는 지씨를 데리고 망루에서 옥상 난간으로 뛰어내렸다. 난간에 매달려 있던 지씨는 팔힘이 빠지면서 건물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분명히 망루를 빠져나왔던 윤씨의 시신은 망루 안에서 발견됐다.

지씨 역시 다리가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그는 오른발을 접었다 펼 수 없다. 그 자세 그대로 걸어다니는 수밖에 없다. 지씨는 “오른발목 뼈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서 뼈를 그냥 굳혀버렸다”고 말했다.

지씨는 인터뷰 내내 담배를 입에서 놓지 못했다. 그는 용산참사 이후 담배를 입에 댔다고 했다.

“재판 결과가 좋게 나오면 담배를 끊기로 집사람과 약속했어요. 어차피 좋지 않게 나오면 강제로 끊을 수밖에 없잖아요.”

“병원에서 우리보고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말을 들었어요. 나도 원래 보수신문만 읽었고 철거민 되기 전까지는 집회나 행진하는 사람들 보고 ‘왜 남들에게 피해를 주냐’고 욕했어요. 지금은 집회하는 사람들 보면 ‘이 뜨거운 날씨에 집에서 시원하게 선풍기바람 쐬고 있어도 되는데 오죽하면 이 사람들이 나왔을까’ 하고 생각하죠.”

두 사람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용산참사 이후 화가 성효숙씨가 병원을 찾아 두 사람에게 직접 미술치료를 해주기도 했다. 지금도 두 사람은 서울의 한 병원에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

지씨는 2011년 가을 퇴원한 이후 집안에 홀로 있는 날이 많다. 초등학생인 아들은 학교에 가고, 아내는 생계를 책임지러 식당에 출근해서 없다. 혼자 집에 있는 날이면 이유없이 용산참사 당일이 생각나며 화가 솟구친다.

“병원에 있을 때 퇴원하고 나서도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 그때는 그렇게 트라우마가 심하지 않아서 그 말을 좀 우습게 생각했어요. 근데 집에서 가만히 책이라도 읽고 있으면 괜히 돌아버리겠고 가만히 있다가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아 우울증이라는 게 이렇게 오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인기피증도 생겼다. 물심양면 도움을 받은 용산참사진상조사위원회 사람들도 만나기가 싫다.

“그분들 도움을 많이 받았고 찾아가서 인사도 하고 밥 한끼 먹는 게 맞는 건데, 가기가 싫어요. 만나면 또 용산 이야기 할 거고, 저는 용산의 요자만 꺼내도 싫은데….”

지씨는 마음도 다스릴 겸 모친과 함께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아’라는 세례명도 받았다. 그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아직은 계산이 안 나오지만 얼른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어떤 이들에게 1월 20일은 추모일이다.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용산참사진상규명위는 매년 1월 20일이면 “용산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친다.

사건으로부터 4년 6개월이 지났다. 정부의 중재로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용산4구역 재개발조합은 사망자 5명에 대한 보상에 합의했다. 대법원 판결로 옥살이를 하게 된 철거민들도 1명(남경남 전 전국철거민연합회 의장)을 제외한 전원이 지난해 말 가석방과 올해 1월 MB정부의 ‘설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그런데 김씨와 지씨에겐 아직 용산참사는 법적으로도 끝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부상 때문에 다른 철거민들과 함께 재판을 받지 못했다. 두 사람에 대한 서울중앙지법의 1심 선고는 2011년 2월 15일에서야 이뤄졌다. 두 사람과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8명의 철거민들은 2010년 11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4년~5년4월의 실형을 확정판결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김씨와 지씨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18일 2심 선고공판이 열린다.

병원비 보험급여 환수 통보에 울화통
2심 판결이 두 사람에게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유죄판결이 나오면 두 사람은 법정구속될 가능성이 높다. 김씨와 지씨는 3심까지 다퉈볼 생각을 갖고 있다. 다른 용산 철거민 재판에서 2심에서 3심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5개월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는 의료보험 문제다. 이미 국민건강보험 측은 지난해 5월 다른 용산참사 부상자들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기인하거나 고의로 사고를 발생시킨 때에는 보험급여를 하지 아니한다”는 국민건강보험법 48조 1항의 규정을 들어 300만원가량의 보험금 환수를 통보한 바 있다.

지씨와 김씨에게도 건강보험공단이 연락을 해왔다. 지씨는 “공단에서 의료보험 환급 얘기로 지난해에 전화를 걸어온 적이 있었어요.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고, 보험료도 꼬박꼬박 냈는데 무슨 소리냐’고 따졌더니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받은 사람에겐 보험금을 못주겠다고 해요”라고 말했다. 지씨는 잠시 말을 멈췄다. “어떻게든 아내와 어린 아들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되니까, 이혼하려는 마음까지 들었어요. 지금도 빈깡통인데 그 깡통마저 뺏어가려고 하는 것 아닌가요.”

김씨도 “보험공단에서 내 딸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용산참사 재판 진행상황을 물었다”며 분노했다.

“그동안 의료보험비가 몇백만원 정도면 그냥 내고 말죠. 근데 치료비가 1억이 넘는데…. 차라리 그때 다른 사람 죽을 때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박래군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이들의 2심 재판을 앞두고 재판장에게 낸 탄원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두 사람은 4년형의 징역 그 이상을 겪어왔지 않았나요. 4년6개월이 넘도록 아픔을 아로새기며 죽고 싶은 마음 다스리며 살아온 그 고통의 세월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감옥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이 같이 사는 집입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