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크루즈 패밀리 - 진화를 위해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여보, 안 돼요.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잖아요. 돌아가요.”
“이것은 기회야. 저곳으로 가야 해.”

땅이 무너져내리는 절체절명의 순간. 아빠 그루그는 절벽 앞에서 아내 우가에게 말한다. 앞은 먼지가 자욱한 미지의 세계,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평생 집밖으로는 나가본 적이 없던 가족들이다. 절벽을 뛰어넘을 것이냐, 돌아갈 것이냐. 그루그의 선택은 ‘내일’이었다.

애니메이션 <크루즈 패밀리>(2013)는 선사시대 원시인 이야기다. 드림웍스가 만들었다. 커크 드 미코와 크리스 샌더스가 공동감독했다. 제작에 무려 9년이 걸렸다. 아빠 그루그 목소리는 니콜라스 케이지다.

그루그 가족은 동굴에 산다. 그루그는 그림을 잘 그린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나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그린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루그네는 주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원시인이다. 그루그의 대원칙은 ‘동굴 속에 머물기’와 ‘밤에는 돌아다니지 않는다’다. “새로운 것은 항상 나쁘다”고 말하고 “항상 두려워하라”고 말한다. 아빠는 가족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딸 이프는 아니다. 이프는 어느날 밤 동굴 속으로 비쳐들어온 불빛을 좇아 밖으로 나간다. 그곳에서 불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가이’를 만난다. 가이는 동굴인보다는 조금 더 진화한 인간이다. 머지않아 대지각변동이 있을 것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크루즈 패밀리>는 상상력이 기발하다. 곰빼미는 곰과 올빼미를 합친 동물이다. 쥐와 코끼리를 합친 쥐끼리도 있다. 피랴냐꼬는 겉은 잉꼬처럼 예쁘지만 실은 살인물고기 피라냐를 닮았다. 앵무새와 호랑이를 섞은 앵무랑도 있다. 수천, 아니 수만년 전 얘기니 어떤 진귀한 동물을 내세워도 이상하지 않다.

경제적으로 보자면 그루그 가족은 리스크헤지(위험회피)형 가족이다. ‘리스크’란 위험은 위험인데 지금 발생한 위험이 아닌 잠재적인 위험을 의미한다. 딸 이프는 말한다. “우리가 살아남은 건 아빠의 명령을 따랐기 때문이지. ‘동굴 밖은 죽어도 나가지 마!’” 사방팔방이 위험한 것밖에 없는 시대, 리스크헤지는 유용한 생존법이다. 하지만 딸 이프는 반항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사는 것은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럴 때 가이를 만났다.

다시 절벽. 앞으로 나가느냐 뒤로 후퇴하느냐, 선택의 기로에선 그로그는 절벽을 뛰어넘는 것을 선택한다. ‘리스크테이킹’(위험추구)을 하기로 한 것이다. 리스크테이킹(Risk Taking)이란 위험을 떠안는 것을 말한다. 위험을 떠안는 이유는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고수익에는 고위험이 따르고, 저수익에는 저위험이 따른다. 투기등급의 채권 수익률은 우량 채권보다 높다. 부실채권이 돼 한푼도 못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장기 채권은 단기 채권보다 금리가 더 높다. 장기로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대변혁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무너져내리는 동굴은 더 이상 그루그 가족의 보호막이 될 수 없다.

사회가 급변하는 고성장 시대는 리스크테이킹형 CEO가 알맞다. 위기도 많지만 기회도 많아 한몫 잡을 가능성이 크다. 정주영, 이병철 같은 대기업 창업 1세대가 1960~1970년대에 나온 배경도 다 이유가 있다. 반면 외환위기, 대공황과 같은 경제위기 시절에는 리스크헤지가 더 중요해진다. ‘비올 때 소나기를 피해가라’는 투자격언과 닮았다. 기업은 투자보다는 비용절감에 나선다. 새로운 리스크를 안기보다는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간다. 잘못하면 기업 생존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경제

물론 이런 위기 때도 리스크테이킹을 선택할 수 있다. 모두가 비용을 줄일 때 광고를 늘리고, 연구개발비를 늘려 위기이후 ‘대박’을 낸 사례도 많다. 리스크테이킹이냐 리스크헤지냐,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