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선거 때만 반짝하는 평생 비정규직

방송, 신문, 인터넷 가릴 것 없이 하루 종일 수도 없이 많은 정치기사가 쏟아져나온다. 새로 등장한 종편 4개사와 보도채널 1개사도 이런저런 정치프로그램을 신설했다. ‘보수논객’ 전원책 변호사가 경향신문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문이든 방송이든 가히 정치평론가들의 전성시대”다.

언론에 등장해 ‘정치평론’을 하는 사람들은 크게 전업 정치평론가, 정치·사회학 관련 전공 교수, 정치컨설턴트(선거상담 전문가), 여론조사 분석가 등 4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고성국 정치평론가가 YTN에 출연해 뉴스해설을 하고 있다. | YTN 화면캡처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한 평론가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 MBC 화면캡처

선거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정치컨설턴트와 여론조사 분석가의 경우 1990년대 들어서 선거가 세분화·전문화하면서 나타난 직업이다. 정치컨설팅 업체의 경우, 2012년 ‘대목’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100여개 이상의 업체가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치평론’에서 가장 많이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전업 정치평론가들이다. 다른 직업이 없는 전업 평론가들은 그만큼 하루를 온전히 평론 준비에 쏟을 수 있다. 4·11 총선 당시 쟁점이었던 ‘PK 민심’에 대해 실제 지역구까지 특정하며 분석하는 평론가도 있었다.

정치평론가의 하루는 어떻게 지나갈까. 이들은 대개 동트기 이전인 새벽 4~5시께 일어나 언론에 나온 핵심 이슈를 살펴본다. 아침 6~7시께부터 시작하는 아침 라디오 방송 출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아침 방송을 마치면 다른 방송사에 출연하기 위해 이동한다. 때로는 시간이 여의치 않아 이동 중에 매체 기고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지역 이슈 찾아 현지분위기 파악
정치평론가들은 틈틈이 기자들의 취재전화를 받기도 한다. ‘괄호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는 ‘코멘트’용 전화들이다.

신문·방송사의 마감시간 무렵인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정치평론가의 공식 일정이 끝난다. 고정 진행자로 활동하는 평론가의 경우, 저녁식사를 마친 이후에도 다음날 방송을 준비하기도 한다.

요즘 같은 ‘정치의 계절’이 되면 주말도 바빠진다. 이곳저곳에서 요청하는 강연에 불려다니기도 하고,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며 정치권 내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기도 한다. 4·11 총선 당시의 부산·울산·경남(PK) 지역처럼 특정 지역이 이슈로 떠오를 때는 직접 지역을 찾아가 현장 분위기를 듣기도 한다. 평론가들은 “대선이 끝날 때까지는 사실상 주말을 반납한 셈”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정치평론가’의 자격을 얻을 수 있을까. 문학평론가의 경우 등단 절차가 있지만 정치평론가는 특별한 데뷔 절차가 없다. 그러다보니 평론에 발을 들여놓는 과정도 천차만별이다.

고성국 평론가는 학술단체협의회 활동과정에서 알게 된 기자·PD의 추천으로 우연히 방송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김종배 평론가는 미디어오늘 기자 출신이다.

정치·사회학 관련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교수로 나가지 않고 평론의 길로 들어선 사람도 있고, 정치권에서 활동하다가 평론가로 나선 사례도 있다.
정치평론가들은 정치의 해를 맞아 정치평론가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나도 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권하진 않는다”고 말한다. 일정 정도 궤도에 오른 정치평론가라 할지라도 안정적 생활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교수 임용의 기회가 없는 비정규직 대학 강사”로 비유하는 평론가도 있다.

무엇보다 평론가들을 신경쓰게 하는 것은 ‘정치적 외압’이다. 고성국 평론가의 경우 1992년 총선 이후 CBS <시사자키> 진행자에서 물러났다. 고 평론가는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총선에서 69석을 잃은 원인 중 하나로 자신의 방송이 지목됐다고 말했다.

유창선, 김종배 평론가 역시 이명박 정부 들어 고정적으로 출연하던 KBS,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갑자기 물러나게 됐다. 유 평론가는 “지금도 KBS, MBC에서는 섭외 자체가 안 들어온다”고 말했다.

정치평론가들이 고정적으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곳은 ‘고정 진행’이다. 하지만 1년 이상 특정 방송사에서 고정 진행자로 활동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프로그램 개편을 이유로 6개월 만에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진행자가 아닌 패널로 나오는 토론 프로그램의 경우, 특정인을 자주 출연시키기 어려운 방송사의 사정 때문에 징검다리로 출연할 수밖에 없다. 신문·인터넷 매체 등에 보내는 기고글은 생활을 영위할 만큼 충분하지 못하다.

‘정치적 외압’ 출연방송 하차하기도
방송 출연, 언론 기고 외에 전업 평론가가 수입을 벌어들이는 경로로는 강연과 책 출간이 있다. 평론가들은 올해같은 ‘정치의 계절’이 아닌 때에는 강연과 책 판매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줄어든다고 말한다.

유명 정치평론가들의 겉은 화려하지만 이들 역시 ‘평생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다. 정치평론가들은 수입의 불안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평론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고성국 평론가는 “정치평론도 방송 콘텐츠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스스로 소진된다는 느낌을 가지고 여기저기 뛰어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고 평론가는 이어 “일주일에 세 군데 정도만 출연해도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되면 좋겠다. 생활이 안정되면 더 많은 시간 연구를 할 수 있고, 더 수준 높은 평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창선 평론가는 “방송 개편 때마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상황이 1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방송 현실에서는 이상적인 이야기겠지만, 방송국과 1년, 2년 식으로 계약을 맺어서 그 기간에는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원책 변호사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정치평론가의 전성시대’를 말했지만 그들을 상찬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 변호사는 일부 정치평론가들을 거론하며 “자신도 잘 모르는 말들이 흘러넘친다. 문제는 그런 말들 뒤에 숨어 있는 여론조작의 의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치평론가들은 “결국 평론의 내용은 소비자인 대중에 의해 검증된다. 대중이 외면하는 평론가는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