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일본 넷우익 반한·반중 ‘노골적’

지난 5월 10일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 청원란에는 미국 펠리세이즈파크 시에 세워진 일본인 위안부 추모비를 철거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3만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이 청원에 서명하자 백악관은 청원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이 청원은 일제의 태평양전쟁 기간에 일본군 위안부가 동원된 것이 날조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넷우익(Net右翼)이 주도해 이뤄졌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 넷우익들은 위안부 문제와 같은 역사문제와 독도·센카쿠제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등의 영토문제 등 기존의 국제문제뿐만 아니라 한류·재일 한국인(조선 국적 포함)에 대해서도 맹목적인 국가주의를 바탕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일본의 우익단체 회원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열린 종전기념행사에 참석해 일장기를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 넷우익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으로 ‘2ch’(니찬네루)를 비롯, 니코니코동화·야후 재팬의 뉴스게시판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디시인사이드에 비견할 수 있는 2ch가 가장 대표적인 넷우익 활동공간이다. 1999년 5월 개설된 익명제 커뮤니티 사이트인 2ch는 사회 전반을 망라하는 40여개의 카테고리 아래 각각의 하위 분야로 나뉜 700여개의 게시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게시판에는 수십에서 수백에 이르는 ‘스레’(영어 thread에서 온 말, 대화 주제나 이야깃거리)가 서고 각 스레에 이용자들이 올린 글은 시간 순으로 배열된다. 넷우익의 활동이 활발한 게시판은 동아시아뉴스+판·뉴스극동판·한글판·중국판 등이다. 세분화된 주제의 게시판에서 일반적인 이용자들은 각각의 주제에 맞는 대화를 하는 데 비해 이들 게시판은 넷우익이 쏟아내는 한국인·중국인에 대한 게시글로 뒤덮이며 사실상 넷우익의 본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커뮤니티 사이트 ‘2ch’ 본거지 역할
넷우익들의 공격이 집중되는 대표적인 대상은 한류 연예인과 재일 한국인이다. 최근 탤런트 김태희씨가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넷우익들로부터 집요한 공격을 받은 것과 유사한 예를 여럿 찾을 수 있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공격은 넷우익들의 활동이 집중된 게시판 외에 일견 민족문제와는 무관해 보이는 분야의 게시판에서도 나타난다. 벤처기업 게시판의 소프트뱅크에 관한 스레에선 소프트뱅크 창업자인 손정의 회장(일본명 손 마사요시)이 한국계라는 이유로 비판글이 올라오는가 하면 무예 게시판에는 공수도 단체 극진회를 세운 최영의 총재(일본명 오오야마 마스타츠)를 비방하는 스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회학 게시판의 ‘반일 공작원 강상중’이란 스레에는 도쿄대 강상중 교수의 어머니가 7년 전에 작고했음에도 현재 살아서 생활보호 급여를 받고 있다는 황당한 내용의 글도 올라온다.

넷우익의 주된 비판 대상이 되는 국가는 한국과 북한, 중국이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인에 대해서는 남·북한 사람과 재일 한국인을 한데 묶어 ‘’이라는 비하의 뜻이 담긴 호칭을 쓰는 데 비해, 중국인에 대한 반감은 대만과 홍콩을 제외한 중국 본토에만 적용한다는 것이다. 넷우익은 반일 정서가 약하거나 중립적인 대만과 홍콩 등을 제외하고 남·북한과 중국을 묶어 ‘특정 아시아’라 지칭하며 반한·반중 감정을 확대하고 있다.

<기호로서의 혐한과 혐중-일본 넷우익과 내셔널리즘>이란 논문에서 일본 넷우익의 행태를 분석한 고려대 일본연구센터의 김효진 교수는 “넷우익은 2ch에서 보이던 혐한·혐중 정서가 2005년 전후로 보다 구체화한 결과”라면서 “명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혐한·혐중 정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국가의례 도입에 동의하는 등의 우익적 성향, 그리고 온라인 상의 다양한 활동 참여 등을 기본적인 특성으로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넷우익은 확성기를 들고 도심에서 선전활동을 벌이는 모습으로 대표되는 기성우익과는 이질적인 세력이다. 김 교수는 “기성우익은 천황제를 신성시하지만 넷우익은 천황제라는 이념보다는 국가 차원의 이익을 우선하며 일반 시민들처럼 기성우익의 활동에 비판적”이라고 말했다.

기성우익엔 비판적, 국가이익 우선
전문가들은 일본 사회의 복합적인 변화가 넷우익이라는 현상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서울대 일본연구소의 조관자 교수는 “1990년대 초부터 이어진 일본의 장기불황의 결과로 ‘프리터’로 대표되는 젊은층 비정규직과 중산층 사이의 골이 깊어지면서 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불만이 재일 한국인에게로 옮겨간 면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들의 경제성장을 보면서 전후세대들 사이에서 일본이 더 이상 가해자가 아니라는 인식과 함께 기성 좌·우익 모두와 구별되는 민족주의·국가주의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경희사이버대 NGO학과 민경배 교수는 “아시아 각국이 빠르게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민족 갈등이 온라인에까지 번지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과 일본의 온라인 우파는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태어나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지만 구체적인 부분에선 차이점도 발견된다. 인터넷 공간의 특성상 양국의 온라인 우파 모두 조롱과 희화화 등의 방식으로 외부의 공격 대상을 배척하는 동시에 집단 내부의 친밀도를 높인다는 점은 공통된다. 또 다소 과격한 행태와 일방적인 논리 때문에 일반적인 네티즌들로부터 지탄 혹은 무시의 대상이 되는 소수세력이라는 점 역시 비슷하다.

경제위기를 거치며 양국의 우파 모두 외국인 노동자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 점도 유사하지만, 한국의 경우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비교적 근래의 현상인 데 비해 일본의 재일 한국인은 수 세대를 거치며 오랜 기간 정착해 있었다는 점이 다르다. 다만 젊은 넷우익은 한류 문화를 접하는 등 발전한 한국의 모습에 익숙하기 때문에 재일 한국인이 차별이 아니라 오히려 특혜를 받고 있으며, 그들이 일본 사회를 장악·조종하려 한다고까지 보는 점에서 기성세대의 인식과는 다른 점을 나타낸다. 한편 한국의 온라인 우파에게서 두드러지는 지역주의가 일본의 넷우익에게는 드물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