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통합진보당 사태 배후로 지목된 하영옥씨 심야 격정토로

“허위소설로 나를 매도하지 말라”

오후 11시. 약속시간이 되자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계신 데가 어디십니까.”
“○○○역 2번 출구인데요.” “아,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잠시 후 말끔한 양복차림의 남자가 지하철 계단으로 올라왔다. 하영옥씨다. 학원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8년째 학원 수학강사 생활을 하고 있다. 인근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5월 9일 새벽 5시, 하씨는 전화를 받았다. 보안관찰을 하던 담당형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형사는 거꾸로 “괜찮냐”고 물었다. 그날 조간신문 1면엔 “통합진보당 사태의 배후엔 하씨가 있다”며 하씨의 실명과 함께 7~8년 전 그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하씨 입장으로서는 아닌 밤중의 홍두깨였다. 담당형사로부터 전화를 받을 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하씨는 자신이 “주소지에 거주한다는 것을 확인받아두기 위해” 새벽 6시에 담당형사를 만났다.

일부 언론이 통합진보당 경기동부연합의 배후로 지목한 하영옥씨. 그는 현재 경기도 부천의 한 학원에서 수학강사를 하고 있다. | 정용인 기자

하씨는 지난 1990년대 말, 이른바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어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지난 2003년 4월, 당시 참여정부의 특별사면으로 감옥에서 나왔다. 이번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당선자도 같은 사건으로 감옥에 다녀왔다. 최근 제기된 의혹은 이것이다. 당시 민혁당의 또다른 핵심인물인 김영환씨가 공개 전향해 ‘북한민주화운동’을 벌인 것과 달리, 끝까지 전향을 거부했던 하씨가 조직을 재건했고, 그 조직이 통합진보당의 ‘경기동부’ 당권파 배후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하씨를 통합진보당의 이른바 ‘경기동부’ 배후로 추정하는 보도는 그날이 처음이 아니었다. 총선 직후에 발매된 ‘신동아 5월호’의 표지 머리기사도 “국회 진입한 ‘마지막 주사파’ 실체/김일성주의 신봉한 하영옥 그룹이 ‘경기동부’ 핵심”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하지만 의혹을 제기하면서도 정작 당사자 인터뷰는 싣지 않았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신동아’는 하영옥 전 민혁당 중앙위원을 인터뷰하고자 그를 수소문했으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하 전 중앙위원이 이 기사와 관련해 이견을 피력해오면 ‘신동아’는 6월호에서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할 것이다.” 하씨는 이 ‘신동아 보도’도 책을 구하지 못해 읽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하씨는 오랜 시간 동안 기자가 들고 간 자신과 관련한 보도 프린트물을 들여다봤다.

읽은 소감이 궁금합니다.
“글쎄요. 소감이라, 허허.”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정부당국에서 소재를 파악하는 중이라고 하는데요, 보안관찰 담당형사 말고 연락 온 경우가 있나요.
“없었어요.”

여기에서 하 선생님이 배후실세라고 보도하고 있는데, 오보 맞나요.
“오보입니다. 소송을 할 생각입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민혁당 조직을 재건하려 했다는데….
“기사 내용은 민혁당을 재건했다죠?(웃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떤 부분이 오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이 사태를 겪으면서 적어놓은 글이 있습니다. 제가 답변드릴 수 있는 처지나 상황이 거기에 한정되어 있어요. 먼저 읽어보고 물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씨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5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글을 ‘기사 작성에 참조하라’며 메일로 보내왔다.

“나는 출소 후 일신상의 어려운 문제들이 있어, 아무런 사회적 활동도 못하고 생업에 종사하면서 살아왔고 살고 있다. … (중략) …지금 나는 묵묵히 열심히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 나라의 자주화와 민주화 통일을 위해 애쓰시는 많은 분들께는 늘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장차 때가 되면 나도 이분들의 노고에 함께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니 반드시 그리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런 마음이라 하여 보수언론들이 허위와 날조 속에 소설을 써가며, 나를 함부로 매도할 권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억울하지만 통합진보당에는 미안하다’는 말씀을 했는데 어떤 맥락입니까.
“나를 도구로 이용해서 북과 연결시키는 수단으로 쓰고 있잖아요. 사실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지만 내가 그 수단으로 쓰이고 있으니까.”

통합진보당 가입은 개인적으로 한 겁니까.
“그렇죠.”

당의 지역 활동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고요?
“예. 나가본 적은 없는데, 휴대폰으로 문자들이 계속 오는데, 못가니까 문자 올 때마다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혹시 본인이 개입하면 오해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까.
“그런 생각보다도 내 처지가 그렇게 할 상황이 못 되니까. 이런 식으로 언론들이 계속 떠들고 나올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그래도 평당원이라도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인데, 여건이 못되니까 안 했죠.”

NL이 결국 야권연대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진보개혁진영 내에서도 나옵니다.
“친미보수세력이나 수구세력이 집요하게 원하는 것이겠지요. 저쪽이 어떤 의도에서 그런 선동을 하는지 알 겁니다. 결국 분열시켜 진보운동 전체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것이 목적이지요. 그런 의도를 알면서도 동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진짜 민주나 진보를 원하는 사람인지 생각해봐야겠지요.”

결국 북한 정권을 위한 활동이 아니냐는 의심인데….
“먼저 명확히 해야 할 게 있어요. 예전 입장이라는 것도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역사 발전과정을 거쳐 왔잖아요. 우리가 하던 운동은 같은 형태의 국가를 만들자고 하는 운동이 아니라 남한의 모순을 해결하자는 거였잖아요. 남쪽 사회에서 살아온 지 벌써 50년을 넘어 70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변화된 상황에 맞는 운동이 필요하죠.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민족 간의 화합이나 단결하고 통일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고. 남과 북이 단결하고 미국에 의해 예속된 상황을 벗어나자는 것인데, 이것을 북한에 나라를 팔아먹자, 예속해 들어가자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몰아붙이면서 종북좌파라는 표현이 나왔어요.”

하영옥씨가 통합진보당 경기동부의 배후에 있다는 언론 보도들.

종북이라는 네이밍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거네요.
“예.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했고, 이제 북이 어려워졌으니까 우리 생각도 바꿔야 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애당초 그런 생각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마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처럼 기정사실화시켜놓고 이제 시대가 바뀌었으니 기존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몰아가는 거예요. 설령 통일이 되더라도 남북 사회의 운영방식은 상당한 변화가 있겠지만, 남쪽은 남쪽에 맞게, 북쪽은 북쪽에 맞게 해야 하는 건데 어느 일방에 예속되는 것처럼….”

과거 출소했을 때 민혁당 사건에 대해 언급했던 것이 있습니다. “민혁당은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단체였고 다만 당시 국가보안법에 의한 부당한 탄압 때문에 불가피하게 비밀활동으로 진행됐을 뿐인데, 그 결과 불법조직으로 탄압을 받았다. 국정원과 검찰 측에 의한 사건 내용은 기본적으로 모략이다.” 이렇게 말씀했는데….
“지금도 기본적인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말씀한 것에 기초한다면 통합진보당 쪽에 미안해 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과거 운동이 남한의 자주적 운동이었고, 북한정권을 추종하는 운동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자주적인 원칙을 지켜내면서 그런 관점에서 투쟁해온 대중적 명분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단죄되었고 공격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전력으로 덤터기를 씌운 셈이니까. 또 하나를 더한다면 어찌되었든 과거에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 중에서 ‘뉴라이트’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것도 책임이라면 책임져야 할 부분입니다. 그 사람들이 끊임없이 통합진보당을 음모세력에 의해 조종되는 조직처럼 매도하는 구실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도 미안한 부분이고….”

통합진보당 사태는 어떻게 봅니까.
“구체적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말씀드리기는 그렇습니다. 뭐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지는 모르지만 ‘당권파’라는 사람들이 스스로가 반성할 일이 있으면 해야겠지요. 내부 계파가 어떻게 되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단결하고 단합하는 기풍을 만드는 것이 약하다면, 그분들이 내부적으로 반성할 일인데, 외부에서 넘겨짚어 비판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석기 당선자와는 원래 알던 사이 아닙니까. 이상규 당선자도 학교 후배이고…. 출소 이후에 교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당권파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 몇몇은 알던 사람 아닙니까.
“이석기 당선자는 지난해 저희 아버님 상 당했을 때 문상 온 것 말고는 10여년 동안 만난 적도 없습니다. 당 내부사정은 잘 몰라요. 언론에서 떠드니까 그렇게 그룹 지어 있나보다라고 생각하는 정도예요. 구체적인 사안은 일이 진행되는 중이고 그분들이 현명하게 판단하시겠죠.”

왜 언론들이 하 선생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고 생각하나요.
“아마 저들의 주된 목적은 대선 공신(功臣)이 되고 싶은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도구로 이용해서 통합진보당의 배후조종세력이 있는 것으로 매도해서 타격을 가하고, 그것에 힘입어서 야권연대를 깨고…. 핵심 목적은 야권연대를 깨서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사람을 매도하고 희생양으로 삼으니까 많이 황당한 거죠.”

덧붙이고 싶은 말은?
“사람들이 내가 생업에 종사하고 살았다고 하니까 이런 기사가 터진 후 정말 생업에 종사했냐고 묻는데, 진짜입니다. 통합진보당이나 다른 영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았지만 생업에 종사하면서 그 속에서도 제 나름대로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활동을 할 때 혼자서 편하게 지낸 것이지만 제 나름대로 일상 속에서도 얻은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생각해보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입니다.”

<글·사진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