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서울시장 후보 24시]요란하지 않게 사랑방 선거운동

야권단일후보 박원순, 시민들과의 악수 “아직 쑥스럽다”

10·26 재·보궐선거 공식선거운동 시작을 하루 앞둔 10월 12일, 박원순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는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홍은어린이집을 방문했다. 이날 공식일정의 시작이다. ‘경청 투어, 보육정책 해법을 모색한다’라는 프로그램으로 보육정책을 발표하기 위해 마련한 일정이다. 공식 일정은 오전 10시였지만, 1시간 전부터 취재진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박 후보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리고온 부모들이 취재진을 보고 놀랐다. 취재진 차량으로 어린이집 부근이 혼잡해지자, 불법주차 단속 차량이 왔다가 그냥 되돌아가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10월 12일 박원순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어린이집 방문을 시작으로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이날 손학규 민주당 대표(사진 왼쪽)와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오른쪽)이 함께 했다.

9시 40분,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이 박 후보를 맞이하기 위해 어린이집을 찾았다. 얼마 후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도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10시 즈음, 박 후보가 도착하자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어린이집은 박 후보와 정치인들, 그리고 20~30명의 취재진이 뒤엉켜 들썩이기 시작했다. 박 후보는 갑자기 나타난 어른들 때문에 놀란 아이들을 살포시 안아 진정시키기도 했다.

박 후보는 홍은어린이집 원장과 함께 어린이집을 둘러보면서 “아이들이 인사를 잘한다.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함께 어울려 교육을 받는 통합교육의 중요성을 느꼈다”는 소감을 전했다.

손학규 대표가 시민들 붙잡고 소개
어린이집을 나와 박 후보가 향한 곳은 서대문구보육정보센터였다. 어린이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곳이다. 손 대표와 박 후보는 구립보육시설연합회 김성희 회장과 함께 정보센터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박 후보에게 국·공립 보육시설의 확대를 요청했고, 박 후보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길을 걷던 손 대표가 갑자기 박 후보의 손을 이끌고 길에 서 있던 택시로 향했다. 손 대표가 “이분이 야권 단일후보 박원순 후보”라고 택시기사에게 소개를 했다. 박 후보는 택시기사의 손을 잡고 인사를 하면서 자신을 알렸다. 손 대표는 시민이 보이면 무조건 다가가서 박 후보를 소개했다. 택시기사, 빌딩 청소원, 학부모, 노인 등 어느 누구 가릴 것 없었다. 박 후보는 손 대표가 소개를 하면 시민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노련한 정치인과 신인 정치인의 차이였다.

“시민들과 악수하는 것이 어떤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박 후보는 얼굴이 빨개진 채 “아이고! 아직 쑥스럽다”며 웃었다. 박 후보는 “시민과 악수를 하면서 서울시의 변화를 바라는 것을 느꼈다. 서울시민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박 후보와 인사를 나눈 김민주씨(가명)는 “시민운동을 했을 때부터 지켜본 분이다. 지지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를 만난 병원 청소원들은 “나는 박원순, 우리는 무조건 고”라며 손을 흔들었다.

11시, 어린이집 원장·어린이집 교사 등 40여명이 기다리고 있는 서대문구보육정보센터에 도착했다. 박 후보는 이들에게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보육정책을 발표했다. ‘동마다 국·공립 보육시설 2개씩 설치’ ‘보육교사 급여 등 처우 개선’ 등을 내놓았다. “우리 사회는 보편적 복지시대다.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주택이 확대되어야 한다”면서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5%도 안 된다. 영국은 20%가 넘는다. 이젠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간담회에 참여한 보육교사 김은숙씨는 “보육교사의 낮은 급여가 문제다. 너무 심각한 수준”이라며 ‘보육교사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 ‘집에서 아이 양육하는 부모에게 지원’ ‘공동육아협동조합 운영’ 등의 다양한 요구가 쏟아졌다. 일정 때문에 다른 장소로 옮기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한 마디만 더 들어 달라”는 목소리들이 많이 나와 다시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서울시장이 되어도 이런 자리를 다시 마련하겠다. 소통 채널을 만들 것”이라는 약속을 한 후에야 이동할 수 있었다.

박 후보가 타고 다니는 카니발 차량은 회의실이자 쉬는 장소다. 후보가 시민들과 기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안히 쉴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서울 안국동에 있는 선거사무실도 후보가 맘대로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박 후보는 차량을 타고 다니면서 선거참모들과 함께 다음 일정인 언론사 인터뷰를 준비했다.

시민사회 지지모임에 웃음 가득
박 후보가 언론사 인터뷰를 마치고 오후 2시 20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서울 서소문의 환경재단 1층 레이첼 카슨홀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지지 시민사회 모임’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조성우 민화협 공동의장, 성유보 민언련 전 이사장,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전 상임대표, 최병모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등 전·현직 시민사회 대표자 3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 후보가 시민운동을 했을 때 함께 활동했던 시민사회 진영이 이번에는 박 후보를 지지한다는 기자회견을 마련한 것이다.

박 후보는 기자회견장에 들어설 때부터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반가움을 표시했다. 박 후보는 “이명박 정부를 겪으면서 정치가 바로서지 않고서는 좋은 삶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할 때 (여러분들과) 상의를 못해서 죄송스럽다. 뭔가 새로운 서울시장이 될 것이다. 당선시켜 달라(웃음)”고 호소했다.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이날 시민사회 대표자들은 박 후보가 떠난 후에 자리에 남아 향후 지지활동을 어떻게 하느냐를 두고 토론을 벌였다.

이후 박 후보는 오후 6시에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이 시대 필요한 정의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공식선거운동을 하루 앞둔 10월 12일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이날 박 후보는 안국동 선거사무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차를 타고 다니면서 참모들과 향후 선거운동에 대한 방향을 정했다.

박 후보와 선거참모가 정한 선거운동 콘셉트는 ‘조용하게 시민들과 이야기하는 선거운동’이다. 대규모 율동단이 나오지 않을 뿐더러 대형확성기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사랑방 형식으로 꾸며진 1톤 트럭이 서울 곳곳을 누비면서 시민들과 좌담회를 열기로 했다. 박 후보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선거운동이다. 박 후보는 공식일정이 끝난 후 쉬지도 못하고, 10월 13일 새벽 0시에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찾았다.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의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글·사진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