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인물]IT업계 거물, 정치무대 서다

문용식은 누구인가, 인생 3막은 ‘상식과 정의’를 위해

만나고 보니 아무리 봐도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문용식 민주당 유비쿼터스위원회 위원장.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를 ‘제법 잘 쓴다’는 사람들은 기회를 잘 포착한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시선은 때때로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훑는다. 어디 행사장에서 영상을 상영하기 위해 불이라도 끌라치면, 고개를 푹 숙이고 열심히 트위터 팔로어들에게 현장중계하느라 열심이다. 때로는 스마트폰으로 앞에서 발언하는 사람의 사진을 찍는 것도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문 위원장은 그러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그는 가끔 자신의 휴대폰에 걸려오는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확인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이 사람, ‘멀티’에는 능하지 않다. 트위터는 바빠서 많이 못하고, 이동 중에 짬짬이 한다고 했다.

문용식 민주당 유비쿼터스위원회 위원장은 어떤 분야의 일을 하든 한 분야에서 10년을 최선을 다한다면 최고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나우콤 사장 시절 직원을 격려, 교육하는 문용식 위원장.

그의 인생사도 멀티가 아니다. 지독히 모든 것을 바쳐 한 우물을 판 인생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3막으로 구분했다. 1막은 20대의 10년이다. 민주화운동에 올인했다. 2막의 무대는 다시 나우콤이라는 인터넷 기업이다. 20년이다. 그는 “30~40대의 청춘을 바쳤다”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3막의 무대는 정치다. 그는 3막에도 20년을 투자할 예정이다.

20대 10년은 민주화운동에 바쳐
정치권이 그에게 준 첫 역할이 유비쿼터스위원회 위원장이다. 유비쿼터스(ubiquitious)를 문자 그대로 정의한다면 ‘어디든 편재(遍在)하는’이라는 뜻이다. IT기술과 접목시킨다면 ‘언제 어디서나, 디바이스, 예를 들면 PC나 휴대폰 또는 제3의 단말기에 상관없이, 심지어 사람이든 사물이든 가리지 않고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SNS와 같은 뉴미디어 기술이 진보개혁에 보다 친화적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다. 장덕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심지어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트위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까지 단언한 바 있다. 즉 트위터와 같은 SNS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관계 맺는 형식도 근본적으로 변했는데, 지난해 6·2 지방선거는 ‘소셜 선거의 탄생’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가오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은? 장 교수나 문 위원장의 진단은 엇비슷하다. SNS와 같은 뉴미디어가 결과를 판가름하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왜 잘 나가던 기업가가 굳이 정치에 뛰어드는가. 한국 현대사에 기업가에서 정치가로 변신한 사례는 꽤 된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그랬고, 이명박 현 대통령이 그랬다. 가까운 예로는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가 있다. 그 사람들이 정치에 뛰어든 건 결과적으로 잘한 일일까. 모르겠다. “조금 구별해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분들은 주로 기업만 했잖아요. 저는 20대에 국가나 사회, 민족을 위해 청춘을 바쳐 공공선을 위해 살아 본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기업을 20년 해서 중간매듭을 지었고 나름의 성과도 냈고요. 중간매듭을 짓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은 끈질기게 한 우물을 팠던 것이고요. 앞으로의 과제는 후배들의 몫으로 남겨둘 때가 온 거죠. 이 사회나 공동체가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봉사·희생하기 위해 정치에 뜻을 둔 겁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봉사와 희생’, 보다 숭고한 목적 혹은 타인을 위한 삶.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는 드라마틱한 부침이 거듭된 지난 20년을 IT업계에서 살아남았다. PC통신 ‘나우누리’로부터 시작해 도산 위기를 넘기면서 현재의 아프리카, 웹 스토리지 사업 PD박스까지 이제는 ‘그가 빠져도 굴러가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회사를 궤도에 올려놓았다.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다시 말해 IT 판도를 한눈에 읽을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경력’이 정치의 해인 2012년,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민주당이 헤쳐나갈 수 있는 뒷심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민주당이 할 수 있는 계산이다. 개인 문용식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첫 번째 열쇠 말은 ‘분노’다. 이 키워드를 끄집어낸 것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다. “이분, 분노가 참 많으시네요. 아무리 왼쪽에 서 계셔도 분노는 좀 줄이도록 하세요. 사회가 멍듭니다.”

분노한다, 고로 정치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포털 검색어를 달군 문용식-정용진 논쟁이다. 논쟁은 트위터 상에서 이뤄졌다. 문 위원장은 사회를 멍들게 하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대기업의 약탈이라고 응수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분노’를 부인하지 않았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프랑스의 노(老) 레지스탕스 투사의 책 제목이 뭡니까. <분노하라>이지 않습니까. 한국사회에서 기득권의 탐욕과 반칙이 도를 넘어섰습니다. 이래선 대한민국 공동체가 무너지기 때문에 분노하는 겁니다.” 문 위원장이 분노하는 대상엔 재벌 일가들, 전두환 전 대통령, 그리고 과거 운동권 출신으로 현재 한나라당에 들어간 인사들이 모두 망라된다. ‘분노’엔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이 덧붙여 있다. 80년대를 몸으로 관통해온 인사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멘탈리티다.

또 다른 열쇠 말들은 ‘상식과 정의’다. “정치해서 부귀영화 누릴 게 뭐가 있겠어요? 상장기업 대표이사를 하고 있는 게 훨씬 낫죠. 대한민국이 정말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정치에 뛰어든 겁니다. 모든 사회통계지표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쉽게 말하면 승자 독식 사회입니다. 상식, 정의, 공정이 바로서야 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정의와 상생의 양 수레바퀴가 제대로 굴러가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년은 꾸준히 바꿔야 그 흔적이 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 위원장은 상식과 정의를 담보하는 이상적인 정치구도를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경쟁하는 양당제 체제’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정치지형은 바뀌어야 한다.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개혁은 뭉쳐서 합리적인 진보세력이 되어야 하고, 한나라당은 크게 탈바꿈해서 극우적인 색채를 줄이고 건전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민주당에서 그의 역할을 스포츠 경기의 포지션으로 비유한다면? (애초에 구상한 이 기사의 가제는 ‘운동권 맏형, 민주당 구원투수로 나서다’였다) “축구로 치면 미드필더이지 않을까 싶네요. 앞에서 공격수들이, 대권후보가 득점을 해야 하잖아요. 그분들이 잘 득점하도록 돕는. 야구로 치면 포수일 것 같고. 유비쿼터스위원장을 맡았는데, 사실 그게 별거 아니에요. 기획과 전략은 전략위원회에서 만드는 건데 그것이 소통되도록 열심히 ‘몸빵’하는 겁니다. 꾸준하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죠.”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