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등유값·전기료에 저소득층 ‘덜덜덜’

석유값 폭등·전기요금 누진제로 난방비 부담 치솟아 ‘혹독한 겨울’

지난 겨울 저소득층에게 겨울바람은 더 매서웠다. ‘등유값 폭등’ ‘전기요금 폭탄’으로 난방에 큰 어려움을 겪은 것. 수입이라고 해봐야 뻔한 그들은 반찬 대신 온기를 선택했다. 둘 다 기본적인 생존권이지만 추위는 보다 더 날카롭고 혹독했다. 지난해 에너지 빈곤층 실태 취재차 만났던 서울 신림동 미림여고 아래 무허가촌 황모 할머니를 3월 초 다시 찾았다. 3개월 만에 만난 황씨 할머니는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저소득층 ‘한파 체감온도’는 두 배

유난히 추웠던 이번 겨울 한파는 지났지만, 등유값 폭등·전기요금 폭탄으로 저소득층의 후유증이 크다. 서울 신림동 무허촌의 황모 할머니가 보일러 기름의 잔량을 점검하고 있다. | 조득진 기자

“겨울 동안 제일 무서운 건 보일러 기름통이 비는 것이었다. 보일러 한 번 때고 나면 이렇게 기름이 얼마나 남아있나 재어보는 게 습관이 됐다.”

마침 황씨 할머니는 긴 막대기를 보일러 기름통에 넣었다 빼어 기름 잔량을 재는 중이었다. 지난 2월 23일, 백내장 수술을 하기 전날 두 말을 넣었다고 하는데 어느새 막대기에 묻어나는 기름은 바닥 수준이다. “겨울철엔 먹는 거보다 등 따스운 게 최곤데 그게 힘들다. 또 사다가 넣어야 할 판이다.” 황씨 할머니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일흔 넷의 황씨 할머니는 6년 전 이곳으로 이사했다. 방 하나에 주방 겸 거실이 딸린 실평수 8평 남짓한 집. 몸이 아픈 조카와 그의 두 딸 등 네 식구가 살기엔 턱없이 좁지만 그나마 화장실이 내부에 있어 선택했다. 이 집의 난방시설은 석유보일러와 전기장판이다. 지난 11월 방문했을 때처럼 이날도 바닥에 불을 넣지 않아 전기장판을 벗어나면 엉덩이가 시렸다. 무허가촌이라 단열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 외풍도 세고 바닥은 냉골이었다.

황씨 할머니는 “올 겨울 하도 추워서 기름값이 배는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보통은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실내등유 한 드럼에다가 몇 말 더 사다가 부으면 날 풀릴 때까지 근근이 버텼다”는 황씨 할머니는 “지난 겨울엔 두 드럼 넣고도 모자랐다”고 말했다.

황씨 할머니의 겨울철(전년 12월~2월) 월 평균 광열비는 31만6000원 수준. 기름보일러에 넣는 실내등유값 25만원, 전등과 전기장판 등 전기요금 3만원, 가스레인지에 연결된 LPG 가격 3만6000원이 세부 내역이다. 그러나 이번 겨울은 확연히 달랐다. 실내등유값 30만원, 전기료 6만원, LPG 3만원으로 모두 합치면 39만원에 달한다.

실내등유값이 늘어난 것은 국제유가 상승 탓이다. 그나마 기름값이 무서워 낮에는 보일러를 돌리지 않고 세수하고 머리 감을 때나 온수를 쓰며 버틴 것이 30만원 수준이다. 대신 전기장판을 켜놓는 시간이 많았고, 그 결과 누진세가 적용되어 전기요금이 6만원까지 올랐다. “난방비 대느라 먹을 것을 아껴서인지 가스값은 덜 나왔다”는 게 황씨 할머니의 말이다. 수치상 난방비 지출이 두 배까지는 아니지만 예년보다 보일러를 덜 때고, 식료품 구입을 포기해야만 했던 처지에서 체감지수는 더 했을 것으로 보인다.

황씨 할머니는 “가을만 해도 4만원이면 주유소에서 등유 두 통(두 말)을 샀는데 겨울부터 올라서 요즘엔 5만원 가져가도 두 통을 다 채워주지 않더라”며 “없이 사는 노인네니 기름통 좀 더 채워달라고 했더니 ‘우린 줄 게 이것밖에 없다’며 곽휴지 몇 개 주더라”고 말했다. ‘누구네가 기름을 더 받았다더라’는 소리를 듣고 주민센터에 쫓아갔지만 “후원이 적어 독거노인 우선”이라는 말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황씨 할머니는 현재 뇌 관련 장애를 가진 조카와 그의 두 딸을 ‘건사하고’ 산다. 호적엔 혼자지만 네 식구가 사는 것. 할머니와 조카 모두 기초생활수급자로 각각 23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황씨 할머니 또한 청각장애 3급 판정을 받아 두 사람이 받는 기초장애연금도 각각 3만원. 여기에 황씨 할머니 노령연금 9만원과 폐지 수거로 번 돈을 합치면 한달 수익이 70만원 정도다.

수입이 적다보니 황씨 할머니 가구의 월 지출 대비 광열비 비중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연평균 10%를 넘어서고 겨울철이면 40%를 넘어선다. 이번 겨울엔 50%를 훌쩍 넘어섰다. “기름값이 오른 데다 눈도 오고 추운 날이 많아 폐지수거를 많이 못해 수익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게 황씨 할머니의 분석이다.

가난할수록 비싼 난방연료 쓴다
황씨 할머니는 최근 백내장 수술을 했다. “없이 살면 몸이라도 건강해야 하는데…, 백내장 수술하느라 또 돈을 까먹었다”는 할머니는 “날 풀리면 폐지 수거하러 나가려 했는데 당분간은 힘들 듯하다”고 말했다.

최근 할머니의 시름은 조카 손녀들이다. 한창 먹어야 할 청소년 시기이지만 제대로 해먹이질 못하기 때문에 늘 미안하고 안쓰럽다. “조카며느리가 이혼을 하며 조카손녀들을 데리고 갔다가 더 키우지 못하고 돌려보냈다”는 할머니는 “수급자라 등록금이나 급식비는 안 내는데 얼마 전 둘째 교복을 장만해 주느라 애먹었다”고 말했다.

에너지 빈곤이 단지 추위를 감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의식주 비용의 감소, 영양섭취 부족, 육체적 또는 심리적 질환, 가계부채의 증가, 사회적 소외 등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진상현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에너지 빈곤에 처한 가구 중 상당수는 적절한 냉난방과 건강한 식생활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며 “이는 두 가지 선택을 모두 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소득 수준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관악지역의 저소득층 가구를 연구하고 있는 관악정책연구소 ‘오늘’은 지난 1월 27일 “1월 3~14일 혹한기 2주간 재활용품 수거 노인 가정 39가구의 소득과 에너지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저소득층 노인은 소득 대비 난방비 부담이 지나치게 무거운 것으로 나타났으며, 광열비 지출에 비해 실내온도가 턱없이 낮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 가구의 겨울철 평균 광열비는 월소득의 25% 수준. 그럼에도 이들의 평균 실내온도는 16.5도로 겨울철 권장 실내기온인 18~20도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가난할수록 더 비싼 난방연료를 쓴다는 것이다. 최근 추장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의 발표에 따르면 저소득층이 주로 사용하는 등유 가격이 도시가스보다 3.5배 비싸 에너지 빈곤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 연구위원이 지식경제부 자료를 분석한 ‘저소득계층의 기후변화 적응역량 강화를 위한 정책방안 연구’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실내등유는 난방용으로 쓸 때 단위열량(㎉)당 가격이 122.1원으로 도시가스의 34.8원보다 3.5배나 더 비싸다. 하지만 무허가촌이나 노후주택의 저소득층에게 도시가스나 지역난방은 먼 나라 이야기. 반면 월 600만원 이상 고소득층은 도시가스(36.0%)와 지역난방(25.7%)을 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난한 계층일수록 혹한기를 버텨내기 힘들 뿐더러 난방을 할수록 빈부격차가 더 커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광열비(전기료·연료비)를 기준으로 했을 때도 같은 결과다. 지식경제부가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의 경우 50만원 미만 소득계층의 소득 대비 광열비 비중은 38.2%, 50만~100만원 미만 계층은 10.4%였다. 반면 300만~350만원 미만 계층은 광열비 비중이 3.2%, 600만원 이상 계층은 1.6%에 불과했다.

‘원가주의 요금체계 도입’은 빈곤 악화
지난 2월 17일 국내 4개 정유사는 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130일 만에 등유값 인하를 단행했다. 그러나 가격 인하에도 불구하고 주유소 등유값이 최고가격을 넘어서면서 가격 인하를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에 비해 4.5% 상승했다. 특히 석유류 가격은 등유(19.3%), 경유(14.6%), 휘발유(11.1%)가 높은 상승세를 나타냈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국제유가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유가 상승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등유값도 오를 수밖에 없다” “국제 제품이 올라 인하분을 상쇄해버린 측면이 있다”는 게 정유업계의 이야기지만 “한겨울 다 지나고 생색내기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전기요금 폭탄’도 저소득가구에는 큰 문제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지난 1월 주택용 전기요금은 총 7781억원으로 지난해보다 8.0% 증가했다. 겨울철 난방용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누진세가 적용돼 최대 기록을 경신한 것. 특히 저소득·서민층일수록 가스 난방 대신 전기장판과 전기난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전기요금 부담이 급증했다.

그러나 정부는 고유가 시대를 맞아 전기와 가스 등 에너지 가격에 원가를 그대로 반영하는 요금체계를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추장민 연구위원은 “저소득층은 유가 변동에 취약한 데다 원가주의 요금체계 도입에 따라 전기 난방비마저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에너지 빈곤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며 “저소득층에게 상대적으로 값 싸고 깨끗한 도시가스를 공급하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매우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강세진 한국석유일반판매소협회 사무국장 역시 “실내등유 보일러를 쓰는 가구는 전국적으로 약 200만 가구로 집계되는데, 이들 대부분이 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라며 “등유 사용 가구들에게도 ‘연탄 쿠폰제’처럼 ‘등유 쿠폰제’를 실시하는 방안, 등유에 붙은 특소세를 조정하는 방안 등을 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