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인물]교과부·서울시 ‘사사건건 반기’

곽노현 교육감의 무상급식·체벌금지·혁신학교 등 정책 ‘브레이크’

2월 23일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부형 교장 공모를 통해 선출된 서울 영림중, 강원도 호반초등학교 교장의 임용 제청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다. “교장 공모 과정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교과부의 설명. 그렇지만 공모제를 통해 선출된 교장을 교과부가 거부한 일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서울시교육청과 강원도교육청은 내부형 공모제를 다시 추진할 계획이다. 일선 학교 교장 선출을 두고 교과부와 교육청이 갈등을 빚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교과부가 진보교육감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1월 18일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오른쪽)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왼쪽)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날 협의회에서 전국 6개 시·도 진보성향 교육감들은 교과부가 최근 경기와 강원지역 고교평준화를 유보하려는 것과 관련해 법령 개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지난해 7월 1일 취임 이후 지금까지 줄곧 교과부 및 서울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 곽 교육감의 핵심 정책인 무상급식, 체벌 없는 학교, 서울형 혁신학교에 대해 교과부와 서울시가 사사건건 반대하고, 딴죽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을 놓고 곽 교육감과 갈등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시의회는 서울지역의 모든 초·중학생에게 무상급식을 지원하도록 하는 조례를 의결했고, 695억원의 무상급식비 지원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오 시장은 “무상급식은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며 예산 집행을 거부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예산집행 거부
오 시장의 예산 집행 거부로 서울시내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 대신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만 무상급식을 받게 됐다. 특히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거부한 강남 3구(서초구, 강남구, 송파구)와 중랑구에서는 1학년부터 3학년까지만 무상급식을 받게 되면서 어느 구에 사느냐에 따라 무상급식 혜택의 대상이 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자체 학부모들은 불만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서울과 기초지자체의 도움 없이는 전면 무상급식이 불가능하다. 무상급식을 지원하지 않은 지자체장은 학부모들의 불만이 나오면 이를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김명신 서울시의원(민주당)도 “예전에 서초구와 강남구는 친환경 무상급식 지원을 해줬는데, 이제는 그 지원도 안 한다. 쓰던 돈도 안쓰는 것”이라면서 “오세훈 시장은 의회에 출석도 하지 않고 있다. 의회와 서울시가 서로 양보하고 협의를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여론의 압박인 것 같다. 오 시장이 빨리 현실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교과부도 무상급식 대신 ‘저소득층 지원 확대’를 주장한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지자체와 교육청이 무상급식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전국 229개 시·군·구 중 181 곳에서 무상급식(전면+부분)을 실시할 예정이다. ‘무상급식 vs 저소득층 지원 확대’ 논란이 일고 있지만 무상급식 주장이 좀 더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체벌 없는 학교’ 역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왔다. 곽 교육감이 체벌 전면 금지를 내놓았을 때 학교 현장에서는 “체벌을 전면 금지하는 것이 옳다” “학교 현장을 모르는 소리다”라는 목소리가 팽팽하게 대립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체벌 금지는 자연스럽게 학교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교과부는 ‘간접체벌 허용’으로 곽 교육감의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1월 17일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학교문화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일부 교육청의 체벌 금지조치 이후 학교 현장에 혼란이 많았다”면서 “균형된 시각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학교의 자율과 책임을 중시하는 체벌의 대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교과부는 신체적인 체벌은 전면 금지하되 ‘교실 뒤에 서있기’ ‘운동장 걷기’ ‘팔굽혀펴기’ 등의 간접체벌을 가능하게 했다. 교과부는 새학기부터 이 방안이 적용되도록 3월까지 대통령령을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과부 간접체벌 허용 갈등 빚어
이는 곽 교육감을 비롯한 진보교육감이 내세운 학생인권 조례를 무력화하고, 교육청의 학칙 인가권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체벌을 전면금지하려고 하는데, 교과부는 대통령령으로 간접체벌을 허용하는 것으로 조례를 무력화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방향이 맞다. 사회의 흐름은 전면 체벌 금지로 가고 있다”고 자신감을 표현했다.

2월 19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서울형 복지정책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오 시장은 무상급식을 두고 곽 교육감과 마찰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곽 교육감은 체벌 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시스템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문상담인력을 각 학교에 배치하는 것이다.

2010년 전문상담 인턴교사, 전문상담원, 전문상담교사 등 510명이 서울시 초·중·고등학교에 배치됐다. 올해는 이 숫자를 566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서울시 초·중·고교의 75%에 전문상담원이 배치되는 것이다. 체벌 대신 상담을 통해 학교 부적응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서다.

서울 강동고등학교에서 전문상담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민아씨는 “체벌이 일시적인 효과는 있다. 하지만 학생에게는 분노의 감정이나 상처가 영원히 남게 된다. 문제가 있는 학생들도 대부분 전문상담원의 도움을 받으면 변한다”면서 “전면 체벌 금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히 있지만, 시기의 문제일 뿐이지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 학교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체벌이 아니라 전문상담원이다”라고 꼬집었다.

전문상담원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학생을 위해서 ‘집중상담 캠프’와 ‘대안교육 위탁기관’도 마련했다. 집중상담 캠프는 학교생활 부적응 학생과 징계대상 학생의 인성교육을 위해 연중 매월 둘째, 넷째 주마다 학생교육원에서 전문상담가와 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이 캠프에는 한국상담학회와 한국상담심리학회 소속의 상담전문가들 200여명이 재능기부로 참여하게 된다. 2박 3일 캠프 기간 중 전문상담가로부터 1대 1 개별 상담을 3시간씩 받게 된다. 대안교육 위탁기관은 학교생활 부적응 학생이나 미혼모 학생, 학교폭력 피해 학생 등 학교에 적응하기 힘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할 수 있는 기관이다. 서울시교육청은 19개의 대안교육 위탁기관을 마련해 둔 상태다.

올해 23개 서울형 혁신학교(초등학교 10곳, 중학교 10곳, 고등학교 3곳)가 선을 보이게 된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2014년까지 학교 여건 및 프로그램에 따라 학교 운영비를 최대 2억원까지 지원받고,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권이 부여된다. 교장 공모제, 교사 초빙제 실시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경기도에서 시작된 혁신학교 바람이 서울에도 이어질지 주목받고 있다. 교과부는 이에 맞서 ‘창의경영학교 지원사업’을 들고 나왔다. 2월 22일 교과부는 2600여개 학교를 지정해 1500억원가량의 재정을 투입, 창의·인성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 내에서는 “혁신학교 실시를 앞두고 교과부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창의경영학교를 내세우는 것 같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