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애의 북위66.5도]⑦북극의 원시 “박물관이 살아있네”

좌충우돌 해외방랑기 ‘아이슬란드 민속박물관’

레이캬비크 메트로폴리탄 호텔 침대에 누워 리모컨을 이리 저리 돌리다 보면 영국 방송 스카이 뉴스가 나온다. 그러나 스카이 뉴스 세계 일기 예보에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가 나오지 않는다. 어차피 ‘흐렸다 개었다 때때로 비’이기 때문에 일기예보쯤은 나도 할 수 있다. 다만 좀 안됐다 싶었다. 아이슬란드가 하트를 날리며 영국 뉴스를 받아 보는데, 영국은 아이슬란드 방송은커녕 일기예보에 한 줄 넣어주는 것도 홀랑 잊고 있는 것이다. 스코가 민속박물관으로 가는 길엔 ‘대인배’의 심정으로 세계의 변방 국가 아이슬란드를 걱정했다. 물론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알았다면 “한국이야말로 도대체 어디 붙어 있느냐”고 되물었을 것이다. 지난번 아큐레이리 우체국에서 한국에 보낼 우표를 달라고 했더니, 직원이 5초쯤 지난 뒤 난감한 얼굴로 물어봤었다. “그거, 유럽에 있는 나라죠?” “그럼요. 터키와 몰도니아 사이의 산악 국가예요.” 엽서는 한달 뒤 무사히 도착했다.

바이킹 배를 형상화한 레이캬비크 해안의 조형물.

말 방광 습도계에 동물뼈 장난감도
스코가 민속박물관은 아이슬란드에 오기 전부터 가고 싶었다. 전통 가옥부터 옛 주방도구, 공구, 화석, 자동차, 버스표까지 ‘아이슬란딕 라이프’의 모든 것이 수집, 전시돼 있는 아이슬란드 최고의, 그리고 유일의 민속 박물관이다.

가이드북이 제작된 당시에 85살이던, 그러니 지금은 이미 90세가 넘었거나 저 세상으로 가셨을지도 모를 수집가 쏘르도르 토마슨이 평생 모든 걸 긁어모아 만들었다. 이 토마스 할아버지의 수집벽과 포부는 상상 이상이어서 교회, 학교, 창고, 옛날식 초가집, 나무주택까지 전통 아이슬란드 마을 하나를 박물관 콤플렉스에 구현했다. 이쯤 되면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골치 아픈 사람이다.

나는 전시물들이 꽤 마음에 들었다. 아이슬란드 자동차와 기차 객차, 헬기도 나쁘지 않았고, 유럽에서 수입해 썼다는 200년 전 찻잔과 가구도 흥미로웠다. 자동차만 10대가 넘어서 토마슨 할아버지는 얼마나 대단한 재력가인가라는 생각을 세 번은 했다. 그러나 안경까지 쓰고 들여다본 것은 전통 생활사 전시실이었다. 죄다 뼈였다! 고래 척추뼈는 한 마디를 떼어내 도끼 받침으로 썼고, 속을 파내 그릇으로도 썼다. 양뼈는 신발에 달아 스케이트로 썼고, 말 방광은 바람을 불어 넣어 습도계로 썼다. 이게 다 아이슬란드에 나무다운 나무가 없어서다. 절반은 툰드라에 절반은 화산 지형인 아이슬란드에는 나무랄 게 없었다. “아이슬란드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네, 일어서면 됩니다”라는 리얼리티가 번뜩이는 농담도 있다.

아이슬란드 어린이들 ‘농장세트’ 장난감.

가장 애틋한 것은 장난감이었다. 토마스 기차나 건담 로봇 대신 아이슬란드 아이들은 말뼈에 건초를 붙여놓은 말 인형을 갖고 놀았다. 레고세트 식의 ‘농장 세트’도 있었다. 말뼈는 말, 양뼈는 양, 개뼈는 개. 이렇게 뼈들을 죽 세워놓고 농장이라고 생각하면서 놀았다는 거다. 농장 세트를 갖추려면 엄청난 수의 말과 양과 개가 필요했기 때문에 부잣집 아이들이나 가질 수 있던 장난감이었다. 호두까기 인형으로 병정놀이를 하던 유럽 아이들이 아이슬란드의 친척을 찾아 왔다 으아앙 울음을 터트리지 않았을까.

먹을 건 더 심각했다. 풀이 자라지 못하니 곡식이 없고, 곡식이 없으니 빵이 없고, 나무가 없으니 과일이 없었다. 생선밖에 없었다. 큐레이터는 벽에 걸린 대구포를 통째 뜯는 시늉을 하며 “삼시 세끼 이것만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간식으로는 생선 머리의 뺨 부분을 뜯어 오물오물 씹었고, 상어를 삭혀 별미로 먹었으며, 생선의 눈알이나 양의 창자나 양의 뇌도 즐겼다고 한다. 독일, 영국, 프랑스에서 온 관광객들은 “으으”라며 고개를 돌렸다. 덩달아 혀를 내밀고 “으으” 하려고 했는데 잠깐, 그게 다 우리도 먹는 것 아니었던가. 홍어는 삭혀 먹고, 소의 창자는 볶아 먹고, 생선의 눈알은 눈에 좋다고 꼭꼭 씹어 먹으며 살아왔다. 호두까기 인형을 들고 놀던 유럽 어린이들이 나를 보고 으아앙 울며 엄마에게 달려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20세기 어업대국서 구제금융 굴욕
다음날 레이캬비크 사가 박물관에 갔더니 정말 대구포를 뜯어 먹는 여자가 있었다. 사가 박물관은 아이슬란드 역사의 주요 17 장면을 밀랍인형으로 만들어놓은 전시관인데, 유물 한 조각 없이 과거를 관광 어트랙션으로 만들어놓은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음성 가이드에서는 ‘으악!’ ‘푸시식!’ ‘챙강!’ ‘화르르!’ ‘퍽!’ ‘꺄악!’ 같은 단말마가 민망하게 터져나왔다. 눈 앞은 더 난감했다.

땟국물이 흐르는 치마를 입고 대구포를 뜯는 여자는 그렇다 치고, 그 옆은 막 화형을 당하려는 수녀였다. 흑사병으로 죽어 나가는 시체와 장렬하게 순교한 주교의 목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가장 화끈한 것은 동족을 살리기 위해 한몸 희생했다는, 말하자면 아이슬란드판 논개였는데, 자기 젖가슴을 잘라내기 위해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이 북국에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거친 정서가 있다.

아이슬란드가 먹고 살 만해진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동력선이 개발되면서 어업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 말 키우고 양 키워서 근근이 먹고 살던 이 작은 국가는 세계적 어업국가로 부상한다. 영국과 스페인에 생선을 수출하고, 멀리 일본으로도 보냈다. 우리집 앞 마트에서도 아이슬란드 날치알을 판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아이슬란드는 유럽 곳곳의 부동산을 사들였고, 세계 최고의 부자 국가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부동산 금융위기에 모래성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아이슬란드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다. 좀 살 만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곤두박질친 것이다.

최명애의 북위66.5도

박물관 밖엔 전방위로 우박이 쏟아지고 있었다. 영리하게도 스프링으로 매달아 놓은 피자집 간판이 바람 따라 삐걱거렸다. 피자와 음료 세트 550 코로나, 우리 돈으로 5000원쯤 된다. 우리나라 IMF 때 나왔던 ‘1000원 자장면’ 식인 모양이었다. 귀와 입술에 피어싱을 한 두 청년이 건들거리며 피자집에서 걸어 나왔다. 쟤들도 우리처럼 일자리 찾기가 어려울까. 영국 가수 트래비스 노래를 틀어놓고 소극적 헤드뱅잉을 멈추지 않다 결국 세 번이나 계산을 틀렸던 렌터카 회사 직원도 우리처럼 미래가 갑갑할까.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가, 하루 아침에 IMF에 긴급 금융을 지원받고, 이제 제어할 수 없는 속도로 세계 자본주의 속으로 편입되는 한국에서 온 나는 더 이상 아이슬란드가 낯설지가 않았다. 우리도 생선을 삭혀 먹고, 북어를 말려 뜯어먹으며 천년 넘게 살아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북극곰(여행동행자)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글·사진 최명애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glauk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