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홀대받는 NGO, 실종된 기후정의

칸쿤총회 풍경, 기후변화 피해 직접적 당사자 목소리 외면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는 공식 협상을 하는 정부 대표단 외에도 많은 참가자들이 있다. 이번 칸쿤 총회에도 194개국 정부 대표단과 국제기구 이외에 비정부기구 관계자 1만여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코펜하겐에 모인 10만명의 시위대가 느꼈던, ‘결국 모든 것이 말뿐이었다’는 실망감은 이번 칸쿤 회의장 곳곳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을 망설이는 정부 대표단과 달리 기후변화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절규의 목소리도 있다. 바로 기후변화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그리고 그것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민중의 목소리다.

맥시코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출발했던 국제 카라반이 멕시코시티에 모여 함께 행진을 진행 중이다. |CJN!(Climate Justice Now!)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의 절박한 목소리는 각국 정부 대표단에게 닿기에는 너무 멀리 있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애초부터 이번 당사국 총회는 협상 당사자인 정부 대표단과 기후변화의 피해 당사자인 민중의 목소리가 완전히 분리되도록 꾸며 놓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사전 등록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회의장 수용 인원을 이유로 NGO 참가자 수를 제한하고, 회의장 안에 모이지 못하는 사람이 밖에 모여 시위라도 할세라 수도인 멕시코시티가 아닌 휴양지로 유명한 칸쿤을 회의 장소로 잡은 것부터가 그런 의중을 보여준다.

칸쿤 회의장 안에 들어서도 이러한 거리감은 계속된다. 모든 참가자가 모이는 곳은 공항과 시내 중간 벌판에 새로 지어진 칸쿤 메세(Cancun Messe)이다. 정부 대표단들이 모여 실제 협상을 하는 곳은 해변을 끼고 골프장이 펼쳐져 있는 고급 리조트 문 팰리스다. 이 두 공간의 거리는 8㎞로 일반인이 함부로 이 요새를 덮치지 못할 만큼 떨어져 있다. 어렵사리 문 팰리스에 간다고 해도 참관인 자격을 가진 시민사회단체가 들어갈 수 있는 회의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올해는 모든 대표단이 모여 총회의 개막을 알리는 오프닝 플래너리에는 입장조차 불가능했다. 유례 없는 NGO 홀대에 지구의 벗 인터내셔널을 비롯하여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연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러한 행태를 비난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에 너무 높은 ‘문턱’
우리는 아직도 기후변화하면 녹는 빙하, 상승하는 해수면, 가라앉는 섬 정도로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만들어놓은 수많은 잘못된 시장주의적 해결방식으로 인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그러기에 기후변화로 피해를 받는 이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기후변화를 막는 것이며, 이를 위해 현재의 시장 중심과 기술 중심 시스템을 바꾸고 기후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곳 칸쿤에서도 그러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그 선두에는 ‘기후정의를 위한 국제 카라반’이 있다. 이들은 지난해 코펜하겐 총회와 올해 볼리비아에서 열린 코차밤바 민중총회 때 곳곳을 돌며 기후변화로 고통 받고 힘들어하는 현실을 담아내는 활동을 하면서 기후정의 운동을 확대해 왔다. 이번 국제 카라반은 국제 농민단체인 비아 캄페시나 등을 중심으로 하여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의 사회운동단체와 함께 꾸려졌다. 멕시코의 세 지역에서 출발한 이들은 11월 30일 멕시코시티에 모여 ‘생명과 사회 그리고 환경정의를 위한 행진’을 진행했다. 이들은 이제 또 다른 두 곳에서 출발한 카라반 그룹과 함께 이곳 칸쿤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곧 칸쿤에 입성하게 되는 그들은 남은 회의 기간 중 외곽 캠프장에서 기후정의와 사회정의, 생명의 정의를 위한 워크숍 등을 진행할 것이다. 특히 12월 7일에는 모든 총회 참가자들과 농민, 원주민과 함께 집회와 행진을 통해 협상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후변화의 ‘잘못된 해결책’들을 지적하고, 이로 인해 고통 받는 민중들의 목소리를 전할 것이다.

‘생명과 사회, 환경정의를 위한’ 행진
또한 멕시코 시민사회단체도 함께 하고 있다. 멕시코를 중심으로 라틴지역의 단체가 모여 만든 ‘디알로고 클리마티코-에스파치오 멕시카노’는 기후정의를 위한 민중포럼을 가지고, 카라반과 함께 기후정의 실현을 요구할 것이다. 이 외에도 작년 코펜하겐에서 시민사회단체의 소통 공간이었던 클리마포럼 역시 진행되고 있다.

지구의 온도는 더욱 올라가고 있지만 협상장의 온도는 계속 내려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 칸쿤으로 향하는 세계 NGO 활동가들은 작년에 이은 두 번의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또한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고, 기후정의에 대한 고려가 없는 협상 역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정부 협상단이 NGO의 목소리를 피해 있는 문 팰리스는 앞서 언급한 NGO 집결지 세 곳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협상단들은 이제 곧 그들을 둘러싼 NGO의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한국, 2012년 총회 유치 안간힘

한국의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부스는 가방과 이동식메모리를 받아가기 위해 모인 외국 참가자들로 가득하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한국 정부는 이번 총회에 참여하여 ‘녹색성장’을 알리고, 2012년 있을 18차 당사국총회(COP18)를 유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특히 녹색성장위원회는 칸쿤 메세 중앙부스에서 녹색성장 홍보영상과 함께 화려하게 장식된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다.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를 통해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 선진국과 개도국의 다리 역할을 하고, 저개발국가와 개발도상국의 친환경적 개발을 돕기 위한 활동들’을 소개하고 있다. 정부는 ‘기후변화 시대의 리더’인 대한민국을 광고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국내 사정은 어떠한가. 녹색뉴딜 사업이라 하여 국가예산 8%를 4대강 사업에 쏟아 붓고 있고, 2020년까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12개의 핵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겠다고 하는 나라다. 그럼에도 저개발국가의 친환경 개발을 운운하고 세계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리더임을 자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난해 코펜하겐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를 소개하면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겠다고 전 세계에 알렸다. 당시 정부는 국제사회로부터 그 제안에 극찬을 받았다며 자화자찬했지만, 그것을 지켜보던 많은 외국 NGO들은 “이제 제발 연구소 따위는 그만 이야기해”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지금 칸쿤의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부스 앞에는 연일 사람으로 가득하다. 언뜻 보면 한국 녹색성장에 대한 관심이 국제적으로 높다고 착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가까이서 지켜보니 대부분이 이름, 메일, 소속을 기재하면 얻을 수 있는 플래카드로 만든 가방과 이동식 메모리(USB) 때문에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방명록에 오른 사람들이 추후 한국의 녹색성장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들로 홍보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 정부가 2022년 월드컵 유치에 실패한 한을 풀려고 작정한 듯 카타르와 COP18 유치 경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총회를 연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갖는다. 우선 개최지가 안고 있는 기후변화 문제가 전 세계와 공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예로 13차 총회를 개최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직접적으로 피해 받고 있는 주민을 비롯하여 바이오연료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거주지를 잃게 된 원주민과 농민들이 처한 문제 등 이전에 심각하게 알지 못했던 사안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런 의미에서 4대강과 핵발전소가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라고 우기는 정부는 차라리 개최를 포기하는 것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나 대한민국의 국격을 위해서나 나을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은 4대강 사업 철회 없는 총회 유치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역시 공동으로 국제노총(ITUC)에 의견서를 전달하여 국제여론 형성에 나서고 있고,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칸쿤 현지에서 ‘한국의 녹색성장의 진실’ 영문보고서를 회의장 곳곳에서 배포하며 정부의 ‘녹색 분칠’과 기후변화 총회 의장국으로서의 자격 미달을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멕시코 칸쿤·조보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비상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