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서울시민의 절묘한 선택 ‘분점정부’

시장과 의회간의 균형·견제로 효율적 지방정부 작동시켜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민의 선택은 절묘했다. 시장과 구청장, 시의원과 구의원, 교육감과 교육위원까지 직무의 범위에 따라 시민 자산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포트폴리오식 투자를 하듯이 당을 넘나드는 크로스 투표를 했다. 섬뜩할 정도로 절묘한 선택이었다. 서울시와 시의회의 건강한 긴장관계 형성을 주문하며 지방의회 본연의 역할을 다하라는 엄중한 경고였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6월 11일 서울시의원 당선자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여소야대 지형의 시험대에 오른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애정(?) 어린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오 시장과 구청 및 시의회 간의 정치·이념·정책의 갈등이 더 심화될 것이 우려된다는 호들갑을 떨고 있다. 서울시와 시의회의 다수당이 같은 당이 되어야 새로운 조례를 통과시키거나 시정을 펴는 것이 수월해진다는 논리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와서 선진 국가 가운데 단일 정당 경향이 매우 강한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지방행정의 장과 지방의회의 당색이 각각 다른 ‘좌우동거정부(cohabitation)’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 현상이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분점정부가 오히려 더 생산적이라는 시민의 판단에서다. 분점정부 아래에서는 시장과 소속이 다른 의회가 시장을 견제하면 예산을 더 알뜰하게 쓰게 된다는 것이다. ‘교통방해효과(grid lock effect)’다. 시장과 의회 모두 시민과 상시소통에 모든 노력을 다했고, 경제성장률도 더 높았다. 알뜰하고 효율적인 지방 정부 운영과 효과적인 공존의 정치가 작동했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서울시의 여소야대가 아니라 서울시민의 시각이 아닌 정치권 시각으로만 세상을 보는, 그래서 선거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그들의 어설픈 사고 체계다.

초강시장 효과적 견제 비토의회 선택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울시민은 좌우동거정부, 분점정부를 선택함으로써 서울시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야당의 정책연합·후보연합 등 선거연합(Election Coalition)에도, 대통령의 고정된 임기에 따른 안정적 수행을 뒷받침해 달라는 여당의 요구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40.83%, 민주당 41.41%의 서울시 광역의원 정당득표율을 보더라도 그 선택은 명확했다. 서울시장과 구청장, 서울시의회의 권한과 책임에 따른 각각의 좌우동거정부·분점정부를 선택함으로써 집행부와 지방의회의 정치적·정책적 경쟁이 가능한 구도로 전환시켰다.

두 번째 서울시의 모든 임면권과 자신을 견제하는 지방의회의 사무직원 임면권까지도 갖고 있는 막강한 권한의 초(超)강시장(strong mayor council form)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도록 비토의회를 선택했다. 이는 오 시장에게 재선을 허락함과 동시에 독주나 전횡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이중적인 선택이었다. 행정서비스를 세금으로 사 주는 시민고객으로 사고하는 잘못된 발상을 버리고 시민을 주인으로 생각하는 붉은 가슴으로 시정에 임하라는 것이다. 지방자치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지방의회와의 연합정치(Coalition Politics)에 적극 나서라는 주문이고, 경쟁과 협력·공존을 명령한 것이다.

세 번째 서울시민은 상대적으로 성장을 우선하는 시장과 분배 중시 시의회를 선택했다. 서울시의 주인은 서울시민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만을 주장하던 성장만능주의에 실망감을 나타내면서도 아직은 검증이 더 필요한 분배 중시의 분수효과(fountain effect) 주장에도 지나친 기대감을 보내지 않았다. 집권 세력의 북풍이라는 충격요법에는 역(逆)북풍을 선택함으로써 엄중히 경고했고, 지방자치의 기본인 분권과 생활복지의 중요성을 강하게 지적했다.

네 번째 지식정보화 사회를 위한 민주주의의 진보(Democracy Progress)를 요구했다. 시민들은 시장과 구청장, 시의원과 구의원,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권한과 직무에 따라 다르게 선택함으로써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종(種)다양성임을 강권했다. 갤럽 조사에서 후보자 지지 이유를 공약 33.0%, 소속 정당 32.6%, 인물 24.3% 순으로 밝힌 바와 같이 철학과 지향 가치 및 이에 따른 정책의 우선순위를 중요시하며 더 풍부하고 더 창의적인 자치와 그에 따른 응용력을 주문했다.

그럼에도 걱정은 남는다. 동거와 분점·공존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면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치킨게임, 제로섬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중앙정치가 지방자치를 자치로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정치로 치환함으로 빚어지는 문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정치적 갈등과 그에 따른 감독권 강화, 국가 사업 배제, 예산 편성상 소외 등 보이지 않은 불이익이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정치개혁 지체로 인해 자폐정당·수구정당 수준에서 벌이는, 분권작업의 순도를 떨어뜨리는 지방자치의 사보타주다. 지방자치의 철학과 비전, 그에 따른 권한 이양과 재정 확충에 대한 노력보다는 시장과 시의회 관계를 교착적 갈등 상황으로 형성하는 것이 총선과 대선에서 정치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소아병적인 착각에 빠질 위험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은 여소야대 상황이 거래의 장으로 변질되는 것에 대한 우려다. 시장과 시의회 사이에 견제만 있고 균형이 작동하지 않는 ‘대결적 정치문화’로 인해 교착적 갈등 상황을 보이는 것에 대한 걱정보다는 여소야대의 지형이 시민들의 삶은 뒷전이고 그들의 단순한 이익 교환을 위한 타협과 상호 정치적 이익의 교환 과정이 되는 것에 대한 우려다. 이 과정에는 그들을 위한 정치적 거래만 있고 시민들의 애달픈 삶의 모습이 치환되지 않기 때문에 가장 큰 걱정을 하고 있다.

정보사회를 위한 민주주의의 진보 요구
누구는 정치 해 먹기 힘들다고 한다. 정치가 3D업종이 됐다고도 한다. 시대착오적이며 어리석은 정치권을 늘 바로잡아야 하는 시민의 역할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 같다. 그들이 잘했으면, 더 따스하고 푸근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때려도 보았고 얼러도 보았고 무관심과 냉소로 거리를 두기도 했다. 그러나 또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정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 더하기 하나와 같은 보편적인 계산들은 시장에서 해결할 수 있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도 셋도 될 수 있어야 하는, 사회 난제로 인한 병목현상에 대한 해결책과 미래 비전을 결정하는 것이 안타깝게도 정치의 역영이다. 지방선거의 절묘한 선택으로 모든 것이 원활하게 작동할 것이라 믿는 것은 그들에 대한 실망을 넘어 우리 미래에 대한 실패의 위험을 안고 있다.

민주주의 제도가 기본적으로 화해와 협력이라는 단일 대오를 근간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경합과 논쟁 및 쟁의적인 요소로 구성된, 종다양성을 인정하며 보장하는 제도다. 참여(participatory)와 심의·토의(deliberative) 민주주의를 시민의 힘으로 일궈가야 하는 힘들고도 시끄러운 제도다. 우리 사회의 좀 더 나은 미래와 더 따스한 사회를 위해 실패 위험을 시민이 상시로 관리하며 바로잡는, 시민이 주인인 제도다. 지금부터는 더욱 복잡하게 포트폴리오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이에 따라 여소야대 지형에 따른 시험대에 오른 것은 오 시장도 서울시의회도 아닌 서울시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이광재<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