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연중기획]이승만과 3·15부정선거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

정권연장 최후의 발악, 제 발등을 찍다

<Weekly 경향>은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라는 주제로 2010년 연중기획을 진행한다. 50년 전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 정부의 최후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부정불법 선거에 대한 민의 항거는 이후 4·19 민주혁명으로 이어졌다. 박태균 교수가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이화장을 찾아 정치인 이승만과 3·15 부정선거가 한국사회에 남긴 교훈을 되짚어 봤다. <편집자주>

3·15 부정선거에 성난 군중이 4월 서대문 이기붕의 집에 몰려가 집기류를 꺼내 불에 태우고 있다. |경향신문

오랜만에 찾은 이화장이다. 학생들과 현대사와 관련된 서울 시내 답사를 할 때 항상 출발 장소로 삼던 곳이 이화장이었다. 1945년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이 1948년 대통령으로 선출돼 경무대(청와대 이전에 대통령이 거처하던 장소)로 이사하기 전, 그리고 4·19 혁명으로 하야한 뒤 미국으로 망명하기 직전까지 머무른 곳이다. 지금은 대학로로 불리고 있는 혜화동에 위치하고 있는 이화장은 창경궁과 함춘원(현 서울대 의대 연건캠퍼스)을 옆에 두고 있으며, 옛 서울대 문리대 건물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이화장에 머문 것은 다 합쳐 2년도 채 되지 않지만 이화장에서 그의 체취를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승만 사후 대한민국의 첫 대통령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오랫동안 이화장을 지키고 거주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화장의 본채 외벽에는 이승만의 일대기를 느낄 수 있는 많은 사진이 전시돼 있었고, 내부에는 이승만의 일생 동안 행적을 보여 주는 유품이 전시돼 있었다. 서울 시내에 있는 많은 역사적 건물 가운데 이화장만큼 잘 보전돼 있는 곳도 없을 것이다. 김구의 경교장은 지금 병원의 본관으로 바뀌어 외벽만 그대로 보존돼 있고, 다른 곳들은 대부분 헐리고 터만 보전돼 있을 뿐이다.

그런데 본채에 있는 그의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한쪽에 걸려 있는 이승만의 자필 현판이 발걸음을 잡았다. ‘민위방본(民爲邦本).’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다. 한 지도자의 집무실에 걸려 있는 현판이라면 이는 바로 그의 인생 철학, 정치 철학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풀렸다. 수 차례에 걸쳐 학생들과 이화장을 방문했지만 왜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항상 받았는가에 대한 해답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이화장 자필 현판 “백성이 나라의 근본”
이승만은 범인(凡人)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다. 이를 잘 보여 주는 것이 그가 독립협회에서 활동하다가 쿠데타 혐의로 투옥돼 옥중에서 집필한 한국 최초의 영한사전이다. 그 사전의 일부가 이화장에 전시돼 있다.

지금도 영문으로 된 연구 성과물을 읽다가 수십 차례나 사전을 뒤져야 하는 필자로서는 그가 옥중에서 집필한 영한사전뿐만 아니라 영어로 된 이승만의 편지들을 볼 때마다 무언가 열등감에 휩싸이곤 했다.

박태균 교수가 이화장 건물 안에 전시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유품을 둘러보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그의 정치적 결단력과 판단력 또한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찍부터 미국을 자신의 정치적 근거지로 삼은 것이나 임시정부의 초대 집정관 총재로 선출된 뒤 도산 안창호와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자신의 직위를 손수 대통령으로 바꾸는 과정, 임시정부와의 결별 등은 1945년 이후 임시정부 요인들의 불행했던 궤적을 고려하면 뛰어난 정치적 판단이었다. 광복 직후 일본 도쿄에서 극동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및 주한미군사령관 존 하지와 먼저 회담을 한 뒤 귀국했고, 냉전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는 분단 정부의 수립을 일찍부터 추진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것 역시 그의 ‘혜안’과 정치적 결단력을 보여 준다.

1952년의 부산 정치파동과 1950년대 통치 과정에서 보여 준 미국과의 관계를 보면 더 놀랄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이나 이승만의 대통령 취임 역시 미국의 지원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결과였다. 그러나 그는 미국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졌다.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대한민국 정부를 구해 주기 위해 미국은 유엔의 깃발 아래 한국에 군대를 파견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계속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면서까지 개헌을 단행했다. 1953년에는 종전을 공약으로 당선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비웃는 듯 정전협정에 서명하기로 예정된 날에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함으로써 미국 정부를 당황하게 했다. 미국의 원조를 받아 군대와 행정부의 재정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저환율 정책을 유지하면서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원조를 받아내고자 했다.

1972년 주한미국 대사 필립 하비브가 박정희 정부와의 갈등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는 스스로 이승만 정부 시기 한·미 관계의 어려움을 떠올렸을 정도로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에 대한 대응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정책뿐만 아니라 대아시아 정책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당시의 세계 정세와 미국의 정책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미국이 그어 놓은 선을 넘지 않는 한 미국이 그에 대한 지원을 철회할 수 없다는 것을, 이승만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이 등장하지 않는 한 미국은 일정한 손해를 보면서라도 강력한 반공정부를 더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국과의 외교 관계를 풀어나가면서 그만한 결단력과 배짱을 발휘한 지도자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가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아니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측근의 장벽이 그로 하여금 깨닫지 못하도록 한 것일 수도 있다. 바로 그의 집무실에 걸려 있는 현판의 내용이다. ‘백성이 곧 나라의 근본’인 것이다. 백성의 뜻을 어긴다면 아무리 세계 최강의 미국이 그를 지지한다 하더라도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 미국조차도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있는 지도자를 무작정 지원하는 그런 도박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가 현판을 언제 썼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4·19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늦었지만 그때 가서야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이화장에는 그의 깨달음을 보여 주는 사진이 더 있어야 한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0년에 있었던 3·15 부정선거와 4·19혁명, 그리고 그의 하야와 망명. 그래서 항상 이화장의 전시물을 보면서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 지지 얻었으나 국민 지지 못 얻어
50년 전의 3·15 정부통령 선거는 이승만 정부의 최후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1952년, 1956년에 이어 4선에 도전하고 있었다. 당시 대중적 인지도에 있어 이승만을 능가할 수 있는 지도자는 없었다. ‘이박사’라는 그의 애칭은 지금도 식지 않은 그의 대중적 인기도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성난 군중들에 의해 이기붕의 집 안의 집기류가 밖으로 꺼내져 태워지는 모습

하늘도 그를 돕는 것처럼 보였다.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는 1956년과 1960년의 선거에서 야당의 대통령 후보인 신익희와 조병옥이 선거 직전에 급서했다. 아예 선거에서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었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당의 조봉암 후보가 200만 표가 넘는 득표로 간담을 서늘하게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국가 안보를 미끼로 하여 형장의 이슬로 보내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였으니까. ‘이박사’는 조봉암과 진보당 사건의 재판에 시간이 걸리자 국무회의에서 아직도 이 사건이 다 해결되지 않았느냐고 다그쳤다.

그런데 1960년의 정부통령 선거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조봉암의 처형과 조병옥의 급서로 더 이상 경쟁자가 없었지만 문제는 그의 나이였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자유당 사람들은 이승만이 재직 도중에 노환으로 서거할 경우 그의 후계에 대해 고민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독재정권을 뒷받침한 그들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최후의 ‘발악’을 자행했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50년 전의 3·15 정부통령 선거였다.

1959년 여적 필화사건으로 정간된 경향신문은 3·15선거 당시 소식을 전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60년이 저물어 가는 12월 22일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3·15선거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큰 사건이 연발했던 1960년.
그 중에서도 불법과 무법을 자행해 온 이승만 독재정치가 그의 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감행한 단말마의 발악. 그것은 3·15 정부통령 선거이었던 것이다.
이 끔찍스러운 죄악의 부정선거가 모사된 것은 지난해 6월 중순에 열린 자유당전당대회에서 정부통령 후보에 이승만, 이기붕 양씨를 전격적으로 지명한데서 비롯된다.
야당인 민주당이 신·구파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약빠른 자유당은 전국의 시·읍·면·리·동까지 당원배가운동과 공무원의 포섭 공작을 전개하였다. 통반원의 강제 입당과 공무원 친목회까지 조직시켜 선거공작을 벌인 그들은 일면으로 농번기를 피한다는 구실 하에 조기선거전략을 꾸며 응당 5월 중순경이 되어야 할 선거를 3월 15일로 당겨 실시함으로써 대통령 후보쟁탈에 휩쓸려 있는 민주당의 급소를 찔렀다.

정부통령 당선 위해 불법과 무법 자행
조박사 서거에 온 국민이 애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동안 자유당은 2월말까지 전국 총유권자의 약 과반수를 강제 입당시키는 한편 2월 27일 자유당 선거대책중앙기획위에서는 3인조, 9인조의 조직을 전국 당원에게 밀령함과 동시 신문기자들에게 당원총수가 5백만명이라고 공표하였다.

이러한 당의 9인조 작반 밀령과 때를 같이하여 당시의 선거주무장관인 최인규는 전국 각도를 순회하면서 공무원의 충성과 공공연한 선거운동을 강요하는 일방 전국 시장·군수·경찰서장 등을 내무부에 불러 일괄사표를 받아놓고 사전 4할 투표와 야당참관인 축출 책임득표수 할당이라는 전무후무한 부정지시를 내렸다. 이러한 질식상태에서 마침내 3월 15일은 닥쳐왔다.

살인 폭행 협박 야당참관인의 신고접수거부 참관인의 축출 등의 무시무시한 공포 속에서 3월 15일 상오 7시 전국에서 투표가 개시되었다. 물론 투표함 봉인 전에 4할 무더기 표는 지시대로 투입되었고 전국의 투표소 중 약 7할은 야당참관인이 없는 무감시 상태에서 완장부대와 반공청년들이 지시하는 대로 모든 불법이 멋대로 자행되었다.”

한국 역사에서 선거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거라고도 할 수 없지만 일정액 이상의 세금을 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선거권이 주어졌던 식민지 시기 지방의회 선거, 미군정기 과도입법의원 선거가 그 시발점이었다. 처음으로 보통선거가 실시된 것은 1948년 38선 이남에서만 실시된 총선거였고, 이후 1960년까지 네 차례의 총선거와 네 차례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공정한 선거가 이뤄지지 못했다. 물론 1987년 민주화가 제도화될 때까지 모든 선거에 부정선거의 딱지가 붙었다. 관권과 금권이 개입했고, 어떤 선거에서도 공정성을 보장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민주화가 이뤄질 때까지 선거는 항상 집권 여당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그 부정선거의 정점에는 1960년의 3·15 부정선거가 있었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 도중뿐만 아니라 선거 유세 기간에도 각종 부정의 개입 과정에서 사망사건이 발생했고,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을 통해 산업채권을 재할인하는 과정을 통해 불법 정치자금이 마련됐다.(경향신문 1960년 5월 18일자) 정경유착을 통해 대한양회와 동양시멘트를 비롯한 100여 개 기업을 통해 62억환(당시 환율로 950만달러)을 모금했으며, 치안국 경무협회와 전매창 출입업자들로부터도 선거자금을 거뒀다. 대한양회의 경우 융자받은 액수를 모두 선거자금으로 자유당에 헌납하기도 했다. 선거를 공정하게 단속해야 하는 검찰마저 공무원 가족 친목회라는 명분으로 선거 1개월 전 원각사에 모여 부정선거 시행방법을 학습했다.(경향신문 1960년 9월 17일자)

최악의 부정선거는 결국 민심 폭발로 독재정부의 몰락을 가져왔지만 부정선거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오히려 방법이 더욱 교묘해졌다.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 시기의 선거 때는 마을 조직이 정부 여당의 선거 조직으로 동원됐고, 심지어 정당의 추천 없이 대통령 선거인단을 뽑는 비정상적인 방안이 도입되기도 했다.

그러면 민주화 이후 선거는 공정해졌는가. 선거는 공정할지 몰라도 이제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유권자들의 공정한 선택을 가로막고 있다. 지역감정이 동원되고, 선거를 지역 개발 및 부동산 가격에 연결시켜 유권자들의 눈을 가로막고 있다. 그 최전선에는 바로 권력과 결탁한 언론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선거는 공정성 여부와 관계없이 끊임없이 다수에 포함되지 못한 소수를 소외시키고 있다.

우리는 50년 전 3·15 부정선거로부터 무슨 교훈을 얻었는가. 아니 교훈을 얻는 것 자체를 일부러 꺼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박태균<서울대 교수>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