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대학은 이젠 취업준비의 전당

달라진 풍경, 상경계 복수전공 열풍·학점 인플레이션 씁쓸

대학가를 몰아친 취업 한파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수년 동안 지속된 취업난으로 대학가에는 ‘상경계열 복수전공 열풍’ ‘학점 인플레이션’ 등의 현상이 들불처럼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때로는 부작용으로 대학가 곳곳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취업난으로 인해 취업 관련 학원가에는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다. 사진은 서울 신림동 주변 고시학원 모습. | 김석구 기자

경영학 복수 전공은 스펙
취업 한파가 대학가에 몰아친 이후 가장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한 가지는 경영학·경제학 등 상경계열 복수전공자의 증가다. 대학생이 상경계열을 복수전공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입사 지원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는 대학생 사이의 풍문도 상경계열 복수전공 증가에 한몫 거들었다.

“전공 강의인데 들을 수가 없어요. 수강신청 경쟁이 전쟁같아요.” 2010학년도 1학기 수강과목을 신청하는 김민정씨(22·ㅅ대학 경영학부 3년)의 하소연이다.

수강신청 기간만 되면 대부분의 대학생은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모든 강의는 수강인원이 정해져 있지만 학생들이 몰리는 특정 과목의 수강신청은 경쟁이 치열하다. 취업난이 심각해진 2000년 이후 경영학 복수전공자가 늘어나면서 경영학 수강신청 경쟁은 특히 더하다. 원하는 경영학 강의를 듣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란 말도 있다. 심지어 김씨처럼 제1전공자가 강의를 듣지 못해 애태우는 웃지 못할 경우도 발생한다.

취업포털 사이트 커리어가 지난해 6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복수전공을 하고 있거나 할 예정인 대학생 912명 가운데 경제·경영학 등 상경계열을 선택한 이들이 50%를 차지했다. 상경계열을 선택한 이유로는 ‘취업에 유리할 것 같다’라는 응답이 35.5%로 가장 높았다. 즉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경영학 등 상경계열 과목을 복수전공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설문조사 결과 복수전공자의 50%가 상경계열을 선택한다고 나타났지만 대학생의 체감 정도는 더욱 강하다. 특히 대다수의 인문·사회과학 계열 전공자들은 경영학을 복수전공하는 것이 일반적 추세라고 입을 모은다.

김태욱씨(25·국민대·언론학 4년)는 경영학을 복수전공하기 위해 졸업을 연기하고 9학기를 준비하고 있다. 졸업을 미뤄서라도 경영학을 전공하는 것이 취업에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기업 입장에서는 복수전공자를 더 선호할 것이며, 경영학 전공자가 지원할 수 있는 분야는 더 넓다”면서 “경영학 복수전공도 스펙인 시대”라고 말했다.

중문학을 전공하는 서유란씨(25·숙명여대·4년)도 경영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다. 서씨는 “이공계나 예체능 분야가 아니라면 누구나 한 번은 고민하는 사안”이라면서 “강의시간에 제1전공자보다 복수전공자 수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대학생이 경쟁적으로 경영학을 복수전공하는 이유는 취업난의 영향이 크다. 기업이 대졸자 채용 때 상경계열을 우대하는 경우가 많으며, 채용인원도 타 전공에 비해 많은 편이다. 심지어 인턴 채용 때도 상경계열을 우대하는 경우가 있다. 또 복수전공 자체가 타 스펙에 비해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며, 큰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학생에게 부담도 적다.

결국 취업난으로 인해 벌어진 치열한 입사경쟁에서 조금이라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학생의 상경계열 복수전공 이수는 당연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경계열 복수전공 추세로 인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경영학 시간강사 임인규씨(가명)는 “기초가 약한 복수전공자들이 강의를 제대로 못 쫓아오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필수기초 강의, 즉 경영학의 기초인 회계나 통계 등 기초강의를 건너뛰고 응용강의를 수강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학교가 직접 나서 부작용을 차단하기에 이르렀다. 국민대의 경우 상경계열 복수전공자 수가 크게 늘어 제1전공자가 수강신청을 못해 학생과 교수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수강제도를 변경했다. 상경계열에 한해 제1전공자가 수강을 마친 뒤 복수전공자의 수강을 시작하는 순차적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학점 인플레도 심해져

국민대 교무처 관계자는 “상경계열 복수전공자 증가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라면서 “취업만을 위한 복수전공으로 대학교육의 본질이 흐려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취업난이 부른 상경계열 복수전공 열풍이 대학교육의 다양성마저 흔들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다.

박웅서씨(26·ㄱ대학 언론학과 4년)의 지난 학기 학점은 4.2점이었다. 4.5점이 만점임을 감안하면 높은 학점이지만 장학금은 기대도 못했다. 학과생 33명 가운데 12등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A학점대를 받은 인원만도 절반이 넘었다. 박씨는 “학점 인플레이션이 심한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고 쓸씁해 했다.

학점 인플레도 취업난으로 인해 발생한 현상이다. 취업난에서는 고학점이 필수 스펙이기 때문이다. 고학점을 위한 대학생들의 행동은 다양하게 표출된다. 지난해 서울대·연세대 등 다수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에서 학생들의 고학점 취득을 위한 제도 개선이 공약으로 나왔다. ‘학점포기제(학생이 임의로 성적을 지우는 제도)’나 ‘재수강 요건 완화’ ‘절대평가 강의 확대’ 등 총학생회 수준의 요구가 그 예다.

고학점을 위한 개인적인 노력도 활발하다. 김경아씨(22·ㅇ대학 4년)는 “가능하면 A학점을 받기 쉬운 절대평가 강의를 듣는다”면서 “학점이 낮게 나오면 교수를 찾아가 학점을 올려달라고 애걸하거나 재수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 팔은 안으로 굽게 마련이다. 절대평가 강의를 개설하거나 교수 재량껏 최대한 좋은 성적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소재 대학교 교무처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학점 인플레 현상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따른다. 지난해 9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박영아 의원(한나라당)이 전국 239개 대학의 2008학년도 전공과목 학점 분포를 분석한 결과 A학점(A+ A0 A-)을 받은 수강생 비율이 50%가 넘는 대학은 64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 강의에서 절반 이상의 학생이 A학점을 받은 셈이다. 박 의원은 “과도한 성적 인플레로 인해 학점이 취업시장 등에서 객관적 자료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상은 2009년도에도 이어졌다. 대학정보공시 사이트에 공개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 소재 4년제 45개 대학교의 전공과목 A학점 수강생 비율은 39%였다. 학교마다 편차가 크지만 대부분 40%를 웃돌았다.<표참조> 대부분의 학교에서 A학점 비율을 20~35%로 자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자체 규정이 무시된 채 A학점이 높은 이유는 절대평가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이르자 대학교 자체에서 변화가 일었다. 연세대가 2010학년도 1학기부터 원어 강의를 제외한 모든 전공 과목에서 절대평가를 폐지키로 한 것이다. 연세대 관계자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절대평가가 학점을 쉽게 따는 취지로 변질돼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서 제도 변경 이유를 밝혔다.

20만원이 넘는 ‘취업’ 사교육비
대학생이 대학 강의보다 학원 수업에 치중하는 것도 취업난으로 생긴 변화다. 김진수씨(25·ㅇ대 4년)는 올 9월 졸업예정자로,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취업준비에 한창이다. 김씨가 졸업까지 남은 이수학점은 9학점이다. 그러나 학교에는 나가지 않아도 된다. 모두 인터넷 강의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오전에는 영어학원, 오후에는 취업 스터디에 참여해야 한다”면서 “취업 준비만으로도 빠듯한데 학교에 가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말했다.

4학년 2학기는 취업을 위한 학기로, 김씨처럼 취업에 ‘올인’하는 대학생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강의에 빠지고 학원으로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교에서도 면접 등 이유로 취업준비 학생을 강의에서 ‘열외’시키는 것이 관례가 된 지 오래다.

이처럼 취업을 위해 학교가 아닌 학원으로 대학생이 몰리면서 자연스레 사교육비 부담도 늘어나고 있다. 취업포털 파인드잡이 ‘지난 겨울방학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 현황’을 설문조사한 결과 1인당 27만원이 나왔다. 취업난은 대학생에게 취업을 위한 사교육비 증가라는 현상까지 만들어 낸 셈이다.

통계청이 2월 10일 발표한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 실업자 수는 41만명이다. 실업률로 따지면 9.3%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12월보다는 1.7% 높아진 수치다. 노동부는 “졸업 철이 다가오면서 구직활동을 하는 청년층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실업자로 집계되지 않는 취업준비생이 59만명 수준임을 감안하면 ‘실질적’ 청년 실업자는 100만명을 넘어선 셈이다. 게다가 대학은 해마다 50만명 이상의 대졸자를 쏟아낸다. 결국 대학가에 불어 닥친 취업난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경계열 복수전공이나 학점 인플레 등 현상은 취업난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대학생의 당연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스펙은 돈이다

대졸 취업준비자에게 스펙은 필수다. 스펙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기업이 기본으로 요구하는 스펙도 있다. 바로 공인 영어 성적과 각종 자격증 등이다. 문제는 그 ‘기본’을 갖추기 위해서는 공부뿐만 아니라 높은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취업준비자의 어깨를 더욱 짓누르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기업이 요구하는 그 ‘기본’의 가격을 알아보자.

대졸 취업준비자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스펙은 공인 영어 성적이다. 대부분의 취업준비자는 토익을 준비한다. 토익 강좌는 대개 대학교가 주관하는 강좌와 사설 학원 강좌로 나뉜다. 강원 소재 ㅅ대학은 한 달에 6만원, 서울 소재 ㄱ대학은 7만원으로 보통 6만~7만원 수준이다.

사설 학원의 경우 서울 소재 ㅇ어학원 16만원, ㄱ학원 17만원으로 16만~17만원 수준이다. 여기에 교재비와 시험전형료까지 더하면 한 달에 적게는 13만원, 많게는 24만원의 비용이 든다. 물론 독학을 한다면 비용은 낮아질 것이다. 문제는 해외 어학연수 등을 다녀오지 않은 ‘국내파’라면 단기간에 스스로 공부해 원하는 수준의 점수를 얻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최근에는 영어 말하기 점수를 요구하는 대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점까지 감안하면 100만원 이상의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공인 영어 성적만으로는 ‘기본’적이지 않다. 각종 자격증이 필요하다. 컴퓨터 자격증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활용 자격증(MOS)이나 한자 자격증 정도는 따야 한다. MOS는 시험전형료만 6만9000원이고, 사설 학원의 수강료는 10만원이 훌쩍 넘는다. 공인 영어 성적과 각종 자격증 취득을 생각한다면 스펙은 또 다른 등록금인 셈이다. 취업에 필요한 ‘기본’을 쌓아갈수록 주머니는 비는 것이 취업준비생이 처한 서글픈 현실이다.

임석빈·조혜미 인턴기자 zomby011@hanmail.net

<임석빈 인턴기자 zomby01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