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연중기획]토지개혁은 이승만의 업적일까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

뉴라이트 진영 이승만 역할 강조… 학계 “여러 요인 중첩된 결과”

"이승만이 무엇 때문에 농지개혁에 그렇게 열심이었을까요. 가난한 소작농민을 위해서라고요? 너무 천진한 생각입니다. 어디까지나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농민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끌어 모으기 위한 정치적 계산에서 그랬을 뿐이지요. 토지를 분배받은 농민들의 입장에서 이승만은 이미 국부(國父)였습니다.…(중략)…이승만은 한때 지주세력의 정당인 한민당과 우호적인 관계였습니다만, 집권 후 자신의 대중정치를 위해 그들을 버렸습니다. 이승만은 그렇게 철저히 현실주의적 정치가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덕분에 대한민국이 살아났던 것이죠.”

1950년 농지개혁이 1960,1970년대의 압축적 성장의 동인이 됐다는 것은 학자 대부분이 동의한다. 그러나 농촌의 실질적인 삶이 나아졌는지와는 별도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이다. 사진은 1950년대 이농으로 폐허가 된 한 농가. |경향신문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쓴 <대한민국 이야기>에 언급돼 있는 ‘농지개혁’에 대한 설명이다. 이 교수는 ‘대안교과서’를 내놓은 교과서포럼의 공동대표다. 바꿔 말해 ‘뉴라이트 역사관’을 내놓은 핵심인사다. <대한민국 이야기>는 1980년대 386세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판하는 도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풀어 설명하는 형식으로 기술돼 있다.

“농지개혁으로 지주·농민 모두 몰락”
뉴라이트 진영의 논지는 단순하지 않다. 김일영 전 성균관대 교수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실린 ‘농지개혁을 둘러싼 신화의 해체’라는 논문에서 “한국전쟁 전에 농지개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기존 연구자들의 주장은 ‘신화’였다”라고 주장했다. 이승만이 농지 분배를 서두른 까닭은 1950년 5월 30일 선거에서 한민당과 남로당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김 전 교수에 따르면 농지개혁에서 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 기간에 정부는 지주에 대한 보상을 의도적으로 지연시켰고, 그 결과 지주 대부분이 피란처에서 생계비 조달을 위해 자신의 지가증권을 헐값으로 팔았다. 결론적으로 농지개혁과 전쟁이 겹치면서 지주가 몰락했고, 자본가는 정치 의존적이 됐다. 1960년대의 발전 국가는 바로 이러한 조건 위에서 등장했다는 것이 김 전 교수의 주장이다. 뉴라이트 역사관의 논지가 단순하지 않은 것은 이들의 주장이 실제 최근 학계의 연구 성과에 어느 정도 근거해 나온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과거 학계에서는 1950년의 농지개혁을 부정적으로 봤을까. 홍석률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는 이 농지개혁을 ‘지주도 농민도 동시에 몰락한 농지개혁’이라고 규정했다. “농지개혁이 원래 의도한 것은 농민을 중농부농으로 성장시켜 안정적으로 농사를 짓게 하자는 것이지만 그 목적은 이뤄지지 못했다. 실제 농지개혁 과정을 보면 광복 직후 소작지의 40% 정도만 분배됐고 농민들은 충분한 땅을 받을 수 없었다.” 홍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농민들은 자작농으로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만큼의 땅을 분배받은 게 아니기 때문에 토지가 부족한 일종의 ‘영세농’이 됐다. 게다가 여기에 한국전쟁이 겹친다. “농민 입장에서 볼 때 농지개혁의 요지는 소출의 150%를 농지가격으로 하고 30%씩 5년 동안 갚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쟁 통이다보니 임시 토지 수득세라는 것을 현물세로 걷어 갔다. 여기에 농지상환금까지 내니 실질적으로 갖고 있던 토지를 팔아치운 경우도 많았고, 농지상환이 5년이니 대충 끝날 때가 1950년대 중반인데 1954년부터 미국의 잉여농산물이 원조 물자로 들어오게 된다.” 원조경제시스템에서 가장 피해를 본 것이 농민이고, 그래서 농촌경제학자 등 과거 학계에서 농촌을 중심으로 놓고 사고할 때 농지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 홍 교수의 설명이다.

뉴라이트 진영은 토지개혁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역할을 강조한다. 1948년 8월 6일 이 대통령이 초대 내각을 구성하고 국회 동의를 받기에 앞서 첫 모임을 갖고 있다.

뉴라이트 입장의 학자들이 이승만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학계에서는 농지개혁의 성공 요인엔 적어도 넷에서 다섯, 즉 ①농민 ②냉전과 미군정 ③북한 ④이승만과 조봉암 등의 행위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명림 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 교수(정치학)는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게 농민”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탈식민 개혁에 대한 농민들의 요구와 저항이 없었다면 이승만과 미국이 과연 적극적인 농지개혁안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미군정 입장에서는 농민이 ‘좌파 급진주의’에 기울지 않도록 적극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에서 실시된 이른바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토지개혁을 적극적으로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한민당(1950년 선거에서는 민국당)으로 대표되는 지주 세력에 대한 견제라는 이승만의 정치적 의도가 덧붙여졌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에릭 홉스봄도 20세기를 돌아보는 책 <극단의 시대>에서 한국이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토지개혁과 교육 평등주의 덕분이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면서 “뉴라이트가 이승만의 정책에서 정말 배우려고 한다면 사회적 시장경제를 지향한 평등주의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홉스봄 “토지개혁은 한국 발전의 동인”
북한이 추진한 ‘무상몰수 무상분배’와 비교한다면 한국의 ‘농지개혁’은 진보적이었을까.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기존의 연구들은 당시 농민에게 유리했냐 불리했냐를 놓고 ‘계급적 관점’에서 평가하지만 이후 한국사회 발전에 어떤 역할을 했느냐를 놓고 봐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북한의 경우 자본주의적 틀 안에 머무를 수 없는 방식이고, 전쟁을 거치면서 집단농장화로 나갔다. 반면에 남한의 방식은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진행된 것이고, 일시적이지만 평등지권이 실현됐으며, 이후 한국에서 고도성장이 가능하게 했던 에너지였다”고 말했다. 1950년의 농지개혁이 이후 한국사회 발전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전 교수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사실 그것은 엄청난 일이다. 사유재산을 몰수해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줬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혁명적인 조치인데, 아직 미숙한 상태의 사회에서 단기간에 그렇게 비교적으로 철저하게 됐다는 것 자체가 한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 말하자면 그 타이밍에 우연적인 요소들이 결집해 나타난 것이다.
이런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전 교수는 대한민국이 성립된 이후 ‘평등지권’과 관련한 큰 사건이 바로 이 농지개혁과 노무현 정권 때의 보유세 강화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농지개혁 직후에는 일시적으로나마 우리나라가 아주 평등한 사회였다. 농민들이 작게나마 자기 땅을 갖게 된 것이 이후 자식에 대한 높은 교육열의 물적 토대가 됐고, 이것이 고도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그때에 비하면 우리사회가 많이 흐트러졌다. 점차 강화되는 토지불평등을 제압하려는 것이 다시 노무현 정부 때 시도된 종부세 정책이었지만 결국 힘이 없어 다 후퇴했다. 사실상 이명박 정부 들어와 종부세 부과 기준을 올림으로써 부과 대상도 줄어들었고, 세 부담도 줄어들면서 사실상 무력화된 것이 아니냐.” 토지개혁의 이상(理想)은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