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재벌총수 취미는 부동산 사재기?

이건희 전 회장 고가 주택 여러 채 보유… 신격호 회장은 토지 투자에 안목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최근 고가 부동산을 잇달아 매입하고 있어 그 의중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에 비하면 부동산 매입이 아마추어 수준이라는 평이 나온다. 왼쪽부터 최근 이 전 회장이 매입한 서울 청담동 청담빌딩 <김석구 기자>,삼성동 현대 아이파크 <경향신문>, 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신격호 회장의 계양산 골프장 부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주택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이다. 웬만큼 알려진 사실이다. 이 집은 2132㎡(646평) 대지에 지하 3층, 지상 2층 구조의 연건축면적 3414㎡(1035평형) 규모로, 공시지가가 발표된 2005년 이후 5년 연속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공시된 가격은 94억5000만 원으로, 지난해 95억9000만 원에서 1년 사이 1억4000만 원이 떨어졌지만 이는 다분히 서류상 금액일 뿐, 부동산 업계에선 150억 원 이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번째로 비싼 집은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주택으로 공시가격이 79억5000만 원, 세 번째로 비싼 집은 다시 이 전 회장이 차지했다. 서울 중구 장충동1가에 있는 이 전 회장의 또 다른 집이 공시가격 79억3000만 원으로 3위에 올랐다.

최근 부동산 매입으로 가장 눈길을 받고 있는 사람은 이건희 전 회장이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273.6㎡(83평형) 규모의 서울 서초동 최고급 아파트를 95억 원에, 146㎡(44평) 규모의 삼성동 현대 아이파크를 32억 원에 각각 매수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건희 전 회장, 부동산 구입 계속 “왜?”
주목되는 것은 이 두 아파트 모두 공시지가 기준으로 공동주택 부문 각각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서초동 아파트의 경우 273.6㎡의 공시가격이 지난해보다 2.1% 떨어진 49억3600만 원을 나타냈고, 삼성동의 아이파크의 경우 269.4㎡가 42억8800만 원을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이 전 회장이 개인주택 1, 3위 공동주택 1, 2위를 모두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의 부동산 매입은 주택을 넘어 건물로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서울 청담동 소재 청담빌딩을 사들인 것. 대지 483.8㎡(147평)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이 건물은 현재 미술경매회사인 K옥션에서 전체를 임대 중인데, 인근 부동산업소들에 따르면 매매가가 200억 원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변 건물에 비해 규모가 다소 작은 편이지만 갤러리아백화점, 현대백화점 등 명품관과 유명 갤러리, 고가 의류 매장, 고급 음식점 등이 즐비한 대로변에 자리하고 있어 비전문가가 보아도 큰 가치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이건희 전 회장의 연이은 부동산 매입에 대한 시선은 “왜?”이다. 이미 국내 최고가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이 전 회장이 거액의 부동산을 자꾸 사들이는 속내에 궁금증이 실려 있는 것이다.

우선 최근 구매한 청담동 빌딩은 미술품 경매 전문업체가 들어서 있는 곳이라 부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을 염두에 두고 매입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고가 미술품과 관련해 비자금 조성 의혹을 가져온 이른바 ‘행복한 눈물’ 파문 이후 리움 관장직과 문화재단 이사직에서 사임한 아내를 위해 이 전 회장이 활동무대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K옥션은 2007년 홍라희 전 관장이 소속된 비영리단체 ‘아름지기’가 개최한 자선 경매를 진행한 적이 있어 그동안 인연의 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궁금한 것은 최근 강남 일대 주택에 대한 매입 부분이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그룹 총수에서 물러난 이후 지극히 개인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그룹으로서도 그 의중을 알 수 없고, 알려 하지도 않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재계 한 인사는 “최고급 공동주택을 구입한 것은 부동산 차익보다 그 집의 가치와 명예를 얻기 위한 차원이 강하다”라며 “청담동 건물은 아내에게, 서초동과 삼성동 아파트는 자녀에게 물려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최고 땅 부자’를 꼽는다면 단연 신격호 롯데 회장이다. “신 회장은 기획부동산 수준이며 이에 비하면 이 전 회장은 아마추어인 셈”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신격호 회장은 부동산을 선택하고 투자하는 데 상당한 안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신 회장은 일본에서도 도쿄역 인근 부지를 사두었다가 도심이 확대되면서 큰 차익을 남겼고, 이 자금을 바탕으로 한국에 진출했다.

개인이 사서 회사에 되판다? 신격호 회장
신 회장의 면모는 1967년 롯데제과 설립과 함께 시작된 한국 진출 이후에도 이어졌다. “신 회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땅을 산 뒤 수십 년 동안 묻어뒀다가 값이 오르면 이를 롯데 계열사에 팔아 큰 이득을 보고 있다”는 게 부동산투자회사 대표들의 분석이다. 한마디로 ‘선 부지 확보, 후 여건 조성’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노하우로, 부동산투자전문회사에서도 놀랄 정도라는 평가다.

최근 지역 시민단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급물살을 타고 있는 인천시 계양구 목상동 계양산 골프장 부지 역시 1974년 무렵 신 회장이 개인 명의로 매입해둔 곳이다. 골프장 건설이 예정되면서 금싸라기 땅으로 돌변했고, 신 회장은 지난해 말 이 부지를 504억 원에 롯데상사에 매각하면서 엄청난 차익을 챙겼다. 이런 신 회장의 부동산 투자전략은 청주시 목행동 일대 땅(롯데제과·롯데칠성), 경기 오산시 부산동 농지(롯데칠성), 잠실 롯데월드, 영등포 롯데역사, 부산롯데 등에도 적용됐다.

신 회장의 진정한 대박은 역시 잠실 제2롯데월드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 29 일대 8만7770㎡(2만6550평) 제2롯데월드 부지는 롯데물산 롯데쇼핑 호텔롯데가 공유하고 있는데 모두 신 회장과 그의 아들딸인 신동빈 부회장, 신영자 부사장, 신동주 부사장 등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회사들이다.

하지만 엄청난 부동산은 롯데그룹 오너 일가 간 뼈아픈 분쟁을 불러오기도 했다. 신 회장은 막내동생인 당시 신준호 부회장(현 롯데우유 회장)과 양평동 롯데제과 부지 다툼으로 법정소송까지 벌였고, 이후 신 회장과 신 부회장의 관계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다. 1960년대 초에는 둘째동생인 신춘호 현 농심그룹 회장과 부동산소유권을 두고 심하게 다투었고, 신동빈 현 롯데그룹 부회장은 1980년대 초반 일본 국적자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송파구 문정동 일대 토지를 매입해 불법 소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서초동의 한 부동산업소 대표는 “자기 돈 가지고 개인적으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왜 나쁘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돈의 원천은 바로 기업에서 나온 이윤”이라며 “모범을 보여야 할 분들이 자칫하면 한낱 부동산 투기꾼으로 몰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