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추적]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재계 인맥

전·현 대통령 최측근에 닿는 ‘문어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인맥은 재계에도 ‘광폭’이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 그룹은 물론이고, 심지어 정권의 경계를 넘어 이명박 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도 막역한 사이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금융계에선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튀어나왔고, 대기업 쪽으로는 이건희 전 삼성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등과도 ‘끈’이 닿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야를 넘어 신·구 정권을 넘어
‘박연차 리스트’에 이어 정치권과 관료 조직을 뒤흔들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는 ‘정대근 리스트’와 ‘강금원 리스트’의 두 주인공 모두 박연차 회장의 재계 인맥이다. 세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계 최측근이자 후원자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박연차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와 1970년대 초 김해에서 서른 안팎의 기업인과 세무공무원으로 만났다.

1975년부터 이웃 삼랑진에서 농협 조합장을 지낸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과 노씨, 박 회장의 인연도 그즈음 맺어졌다고 한다. 이후 박 회장은 농협으로부터 휴켐스를 헐값에 인수하면서 정 전 회장과 사업 관계도 형성했다.

현재 검찰은 박 회장의 비자금 창구로 알려진 홍콩의 APC 계좌를 통해 조성된 비자금 685억 원 중 500만 달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250만 달러는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30년 지기가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에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에 붙들린 꼴이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박 회장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 후원그룹의 쌍두마차로, 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할 당시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주변 친환경사업 등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봉화에 창신섬유와 시그너스 골프장에서 각각 50억 원과 20억 원을 투입한 강 회장은 박 회장에게도 50억 원을 투자하도록 권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박 회장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자 강 회장 측은 거리를 두려는 모양새가 역력하다. 강 회장은 최근 “박 회장이 나를 ‘심부름꾼’ 정도로 대하면서 정상적인 투자는 꺼리는 것 같아 화가 났다”고 불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강 회장 측근들도 “두 사람은 오래 전부터 소원한 사이”라며 “그전에도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실 두 사람의 최근 행보는 판이하다. 박 회장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각종 리스트를 토해내면서 노 전 대통령을 ‘털고 가기’로 작정했다면 강 회장은 최근 들어 노 전 대통령의 ‘대변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에게 500만 달러를 전달했다는 의혹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최근까지 몰랐다”며 해명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박연차 회장의 광폭 인맥의 정점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 61학번 동기로 ‘MB의 친구’로 불리는 천 회장은 2007년 대선 때 고대 교우회장을 맡아 동문의 지지를 모으는 데 앞장섰다. 포항에서 사업해온 천 회장은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도 친분이 두텁다고 한다. 그런 천 회장은 지난해 7월 국세청의 태광실업 세무조사가 실시되기 직전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정복 전 중부지방국세청장 등과 ‘박연차 대책회의’를 열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회장과 천 회장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살 터울인 두 사람은 밀양·부산 출신의 동향 선·후배 사이로, 박 회장의 친구인 천 회장의 동생이 죽은 뒤에는 의형제처럼 지냈다. 박 회장이 처음 공장을 차린 곳도 천 회장의 집 한쪽이었다고 한다. 이후 천 회장이 1997년 대한레슬링협회장을 맡으면서 박 회장을 부회장으로 영입해 함께 활동했고, 박 회장은 28년간이나 해외 출장을 세중나모여행을 통해서 다녔다. 특히 박 회장은 2003년 자신이 운영하던 정산개발을 통해 세중게임박스(현 세중아이앤씨)의 지분 2.09%를 인수하는 데 7억 원을 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세중아이앤씨는 천 회장과 그의 일가가 45.51%를 소유하고 있는 천 회장의 회사다. 또 박 회장은 2006년 농협 자회사인 휴켐스를 헐값에 인수한 뒤 다른 사외이사를 전격 해임하고 천 회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박 회장과 천 회장 모두 서로 상대방을 통해 여야를 넘어 신구 정권과의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이번 박연차 수사에서 불쑥 튀어나온 사람은 신한금융지주 라응찬 회장이다. 라 회장이 박연차 회장에 보낸 50억 원을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면서 라 회장의 신한지주와 박 회장 사이의 인연이 주목받고 있는 것. 박 회장은 태광실업을 운영하면서 신한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삼으며 박 회장과 20년 넘는 인연을 만들었다. 이런 인연으로 그룹사 중 신한은행과 신한캐피탈은 박 회장이 2006년 5월 농협 자회사인 휴켐스를 인수할 당시 박 회장 측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천신일 통해 그룹 회장에도 끈?
두 사람은 라 회장이 2007년 4월 경남 김해의 가야CC 지분 5%를 인수해달라며 박 회장에게 신한은행 수표로 50억 원을 전달할 정도로 신뢰하는 사이다. 하지만 이 돈의 용처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는 분위기다. 자금이 지분 투자에 사용되지 않고 박 회장 계좌에 그대로 남아 있어 애초 모종의 로비 대가나 다른 명목으로 건네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부 당시 신한지주의 조흥은행·LG카드 인수와 관련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이외에도 대한건설협회장을 맡고 있는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도 박 회장의 재계 인맥으로 분류된다. 노무현 정부 당시 안희정씨에게 2억 원의 불법 정치 자금을 건넨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벌금 2000만 원을 받기도 한 권 회장 또한 노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인물. 그는 노 대통령이 변호사로 일할 때 반도건설 고문 변호사로 영입했다.

대기업 총수와 인연도 발견된다. 2007년 박 회장의 셋째딸 결혼식이 열린 서울 신라호텔엔 당시 해외순방 중인 노 대통령의 화환과 함께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의 화환도 있었다. 이 중에서도 삼성과 연줄은 천신일 회장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천 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은 물론이고 이건희 전 회장과도 친분이 두터워 현 정권과 삼성을 잇는 채널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는 주로 삼성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여행사를 키웠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