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금민 한국사회당 대선 후보 “진보 정치세력 혁신해야”

보수를 표방하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 합계가 60%를 넘는 상황에서 진보 진영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선 후보 중 한국사회당의 금민 후보(46)가 눈길을 끈다. 한국사회당이 어떤 당인지, 그가 누군지 모르는 국민에게는 그가 ‘무모하게’ 대권에 도전하는 ‘독특한’ 후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10년 역사를 가진 정당의 공식적인 대통령 후보다. 사회당은 1998년 창당한 청년진보당에서 사회당-희망사회당-한국사회당으로 당명을 바꿔왔지만, 10년 동안 진보 진영의 한 축을 굳건히 지켜왔다.
금민 후보는 “민노당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정당”이라는 말로 민노당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사회당 당원의 대부분은 20대 후반∼30대 후반에 이르는, 순수한 샐러리 맨이다. 당원이 1만5000명에 이른다는 것이 금 후보의 답변이다.

“민주노동당이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제도 개혁을 중심으로, 원내 활동을 중심으로 활동한다면, 사회당은 서민과 장애인·노숙자·빈민 같은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활동에 중심을 두고 있다. 이념 문제가 아니라 준거 집단을 어디에 두느냐, 중심 활동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두 당을 구분할 수 있다.”

진보 진영에서는 우스개 말로 민노당을 ‘정규직당’, 사회당을 ‘비정규직당’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는 같은 진보 진영에 속한 민주노동당에 대해서 비판의 날을 세웠다.

“대선 후보 지지율 1, 2위가 보수 성향이라는 점에 대해 진보세력은 반성해야 한다. 민노당은 저항운동만 하고 있다. 저항만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비전과 미래상을 제시해야 진보정치가 살아난다. 국민들에게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민노당은 그걸 못하고 있다. 민노당은 더 이상 진보정당이 민노당밖에 없다는 식의 ‘묻지마 투표’를 강요해선 안 된다.”

여기에 덧붙여, 금 후보는 사회당이 가고자 하는 진보 정치의 방향을 내세웠다.
“진보 정치 세력은 이제 혁신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진보 정치의 ‘리셋(reset)’이라고 부른다. 사회당은 저항만으로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진보 정치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사회당의 목표다.”
2002년 대선 때 사회당에서는 김영규 후보가 출마해 전국에서 2만2000여 표를 얻는 데 그쳤다. 물론 5억 원의 기탁금을 내는 대가를 치렀다. 올해 대선에도 사회당은5억 원의 기탁금을 내고 끝까지 ‘완주할’계획이다. 금 후보는 선거운동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당의 재정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당원들로부터 모은 당비의 70∼80%를 기탁금으로 내야 한다. 대선에는 끝까지 간다. 2002년에는 선언에 그쳤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진보 정치의 내용을 담고자 한다. 몇%의 지지율을 얻겠다고 장담하지 않는다. 이번 선거에서 사회당의 목소리가 국민에게서 신뢰를 받아 의미 있는 득표 결과를 얻는다면, 내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금 후보가 대선 후보로 나선 것도 진보 정치의 미래와 관련이 깊다. 10년 뒤인 2017년 진보 세력의 집권을 계획하는 사회당으로서는 이번 대선이 진보 정치의 비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저항 운동만으로는 10년 후 진보 세력이 다수파가 될 수 없다. 새로운 다수를 구성할 수 있는 대안 정치를 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중산층도 동의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지적·사회적 헤게모니를 장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 세력이 집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 후보의 주장에는 후보 자신의 인생 이력이 뒷받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금 후보는 고려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10여 년 동안 독일에서 법철학을 전공했다. 전공과는 관계가 없지만 독일에서의 생활이 진보 정치에 눈을 뜨게 했다고 금 후보는 고백했다. 금 후보는 독일에서 귀국하자마자 사회당에서 활동했다. 그의 생각은 지난해 사회당 대표가 되면서 당내에서 구현되기 시작했다.

“사회당의 지향점은 독일의 좌파당(Die Linke)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민당이 영국 노동당식의 신(新)중도노선을 걷는 것에 반발해, 사민당 당수였던 라퐁텐이 좌파당을 만들었다. 우리는 1970∼80년대의 사회주의, 그리고 영국 노동당식의 대안에도 반대한다. 한국의 실정에 맞게, 스웨덴식 사회적 교육체제 모델과 독일 식 복지 모델을 조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독일에서 귀국한 후 그는 대학에서 시간강사조차 하지 않았다. 2남1녀 중 장남인 그는 아직 독신이다. 어디에도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그의 생각이 그를 진보 정당 활동에 참여하게 했고, 오늘에 이르게 했다. 괴팅엔 대학에서 박사논문까지 다 썼지만 종합시험을 치르지 못해, 그의 이력에는 박사과정 수료로 남아 있다. 금 후보는 “2개월만 주어진다면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문은 존 로크의 공동체적 자유주의를 다루고 있다.

거리의 지도자도 아니었고, 현장 노동운동의 경험도 없는 금 후보가 진보 정당의 대선 후보로 나선 것 자체가 주목받을 만하다.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그는 독특한 해결방식을 내세웠다. 삼성의 비자금 의혹 같은 경우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를 주장했다. 연기금으로 재벌의 주식을 사들여 투명한 경영을 하도록 감시한다는 것이다. 정·경유착의 조건과 원인을 근원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 금 후보의 주장이다. 한·미 FTA에 대해서도 진보정당의 생각이라고 할 수 없으리만치 전향적이다.

“한·미 FTA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투자자-국가소송제와 보건의료 부문에서 독소조항은 없애야 한다. FTA에 대해서 사회당은 반개방론이 아니라 통제된 개방론을 주장한다. 이런 점 때문에 진보 진영에서는 우리를 보고 우경화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금 후보는 “이미 신자유주의는 한국 사회에 들어와 있다”는 말로 국제화된 한국의 현실적 상황을 강조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도 “북한 정치·경제 제도는 정당성과 효율성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2002년까지 민주노동당의 ‘왼쪽’에 있던 사회당의 변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금 후보는 한국적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새로운 사회주의를 선언해야 한다. 이전의 사회주의 방식이 아니라 현재 한국의 구체적인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해결방식을 내놓고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글·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