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그때 그 재판기록은 어디로 갔을까

민족일보 등 공안사건 기록 ‘실종’ 많아… 누가 없앴나, 허술한 관리체계 때문인가

언제 무슨 이유로 영장을 신청해 발부받았는지 등도 수사기록의 일부다. 수사기록이 담긴 재판기록은 판결을 되짚어보는 데 주요한 실마리가 된다. <경향신문>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재판해야 옳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법관이 된 것을 후회했다”.

과거 군사정권의 그늘 아래서 법은 공정하지 못했다. 일부 법관들은 퇴임 후 회한이 담긴 한 마디를 남겨 잘못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개의 판결을 놓고 ‘법률적’ 잘못을 가리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애초 누구를 어떻게 수사해 어떤 진술을 받았는지 수사과정부터 되짚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수학문제의 답이 맞는지 가리려면 풀이과정을 꼼꼼히 살펴봐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판결문만 있되 수사과정을 되짚을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이 없다면 제대로 잘잘못을 가릴 수 있을까? 그러나 수사·재판기록이 없는 사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

“비상계엄이 선포되어 있어 법관의 영장 없는 체포, 구금이 가능하였다고 하더라도… 계엄법상 ‘군사상 필요’가 인정되지 아니하면 집행될 수 없는 것이며… 피고인 조용수의 범죄 사실은 사회단체의 주요 간부가 신문기사를 통해 반국가단체를 찬양, 고무, 동조하였다는 것이므로 영장 없는 체포, 구금이 허용될 정도로 ‘군사상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수사기록도 없어 진실 규명 애로

지난 8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법정. 판사가 읽은 결정문에 변호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당시 수사가 불법적이었음이 밝혀졌으므로 1961년 사형당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에 대한 재심(다시 심판함)을 개시하겠다는 결정이었다.

법원의 재심 결정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당시 수사의 불법성을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민족일보 사건은 재판기록이 없어 재판부를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수사기록(및 재판기록)이 없으니 구속일자·장소조차 특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수사를 논해야 했다. 변호인단은 관련자들의 진술과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실위)의 보고서 등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재심 결정은 받아냈지만, 향후 재판과정에서 어려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현재 민족일보 사건의 재판기록이 어디 있는지 ‘공식적으로는’ 아무도 모른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은 5·16 쿠데타 이틀 뒤 영장 없이 체포돼 그해 8월 사형을 선고받고 12월 형이 집행되었다. 동생 조용준씨는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와 법무부에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찾아달라는 편지를 보내 ‘검찰에 있을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당시 ‘혁명재판소와 혁명검찰부가 해체되면서 이관된 다른 기록은 있지만 민족일보 사건의 재판기록은 없다’고 밝혔다. 이후 조사에 착수한 진실위도 국가기록원, 육군기록정보관리단, 국가정보원, 경찰청, 서울중앙지검 등을 통해 기록의 소재를 알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한편에서는 기록이 국정원에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오랜 기간 자료를 모아 평전 ‘조용수와 민족일보’를 펴낸 원희복(스포츠칸 종합뉴스부장) 기자는 “김대중 정부 때 중앙정보부가 내사기록의 일부를 민족일보사건진상규명위원회에 보내왔다, 페이지 숫자로 보아 앞뒤로 상당한 양의 기록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원 기자는 이어 “수년 전 월간조선이 조 사장의 사형집행 직전 사진을 공개했는데 원본이었고 뒷면에 KCIA, 즉 국가정보원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고 덧붙였다. 국가기록원의 한 관계자도 “이 사건과 관련, 국가정보원에서 (국가기록원으로) 일부 이관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뤄 (나머지도) 국정원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은 진실위의 기록 보존 확인 요청에 “보존돼 있지 않다”고 답한 바 있다.

기록 사라져 재심 추진 중단되기도

재판기록이 사라진 사례는 또 있다. 5·18광주민주화항쟁에 관한 진상규명운동을 벌였던 김난수씨 등 5명은 ‘아람회’라는 반국가단체를 구성했다는 이유로 1982년 기소돼 징역형을 받았다. ‘아람’은 피고인 중 한 명인 김난수씨의 딸 이름이다. 피고인이 모두 모인 날이 ‘아람이’의 백일잔칫날 딱 하루였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멋대로 붙인 이름이다.

사형집행 직전의 조용수 사장. <경향신문>

현재 법원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이들 중 김난수씨의 수사기록과 재판기록만 사라진 상황이다. 김난수씨는 당시 군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군법회의(군사재판)에서 재판을 받았다. 김승교 변호사는 “김씨의 기록을 찾기 위해 군검찰, 국가기록원, 법원에 확인 요청을 보냈지만 없다는 회신이 돌아왔다”며 “당시 수사상황을 자세히 논하기 힘들어 다른 피고인들에 비해 불리하다”고 말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장삼이사들의 공안사건 재판기록은 더 찾기 어렵다. 진실위는 올해 1월, 긴급조치 위반 판결문을 입수해 검찰에 수사기록 등 재판기록을 요청했다. 긴급조치가 위헌소지가 많은 법률이었던 만큼, 재심을 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검찰은 찾을 수 없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결국 재심 추진은 중단됐다. 그런 사건이 수십 건이다.

일부 재판기록이 사라진 이유는 뭘까. 먼저 누군가가 일부러 없앴거나 감추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민족일보 사건의 경우, 조 사장의 죄명은 그가 체포된 뒤에야 만들어진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의 위반. 무리한 법 집행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기록을 일부러 없애거나 감췄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다른 재판기록들은 허술한 관리체계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기록원의 이승억 연구원은 ‘현행 국가기록보존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 수록)이라는 글을 통해 “심문조서 등 사건처리과정 전말에 관한 자료는 (검찰에서) 한시보존문서로 분류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는 대상이 아니”라며 “(이런 자료들이) 기관의 임의적인 판단에 따라 경중을 가려 보존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검사의 판단에 따라 심문조서 등의 보존 여부가 결정됐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만 국가기록원은 최근 1969년 이전 공안·형사사건의 심문조서 등 기록을 일부 검찰청에서 가져왔다. 검찰청의 문서보존 상태가 열악해 (법적 이관대상은 아니지만) 국가기록원이 정리한 뒤 약품처리 작업을 하려는 것. 국가기록원은 “아직 일부 검찰청의 재판기록만 받았으며, 그 목록을 정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참고인 진술 확보에도 ‘장벽’

“참고인 진술은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있어 보여줄 수 없다.”
군사정권 시절 일어난 공안사건의 재심을 진행 중인 변호사들은 재판기록이 남아 있어도 상당부분은 보지 못한다. 참고인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검찰이 참고인 진술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불과 2~3년 새 생긴 현상이다. 이미 재심이 끝났거나 진행 중인 인혁당 재건위사건 등의 변호인들은 참고인 진술을 포함한 수사기록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검찰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김상겸 교수(동국대 법대)는 “개인신상을 유추할 수 있는 유형의 진술도 많을 것”이라며 “행정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도 개인정보보호 조건을 명시하고 있으므로 검찰의 주장은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송호창 변호사는 “법원에 제출되는 기록이므로 ‘개인정보 유출’이라고 볼 수 없다”며 “참고인들이 수사기관의 직·간접 협박, 고문 때문에 진술한 것을 당사자나 유족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진술 공개에 따른 갈등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