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DJ·盧 보이지 않는 손 움직인다

친노 ‘참여정부평가포럼’출범… DJ는 호남, 충청, 경기 서부벨트 구축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10일 청와대 초청모임에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대선출마 포기는 범여권에 패닉(심리적 공황상태)을 몰고 왔다. 여기다가 정동영·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탈당을 시사하면서 정계개편은 한층 가속도가 붙은 상태다. 이로써 제3지대에서 후보들이 모여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자는 ‘후보중심론’은 탄력을 잃어가고 있다.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은 “‘제3지대론’은 힘든 게 아니라 물 건너 갔다”라고 단언했다. 물론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김근태 전 의장의 박우섭 정무특보는 “제3지대론 이외의 방법이 없다”면서 “후보중심론을 후보자 연석회의로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정치학)도 이에 동의한다. 열린우리당엔 대선캠프만 있지 당의 기능이 없다는 게 그 근거다. 서동만 교수는 “열린우리당엔 난국을 헤쳐나갈 리더십이 없다”고 강조했다.

어떻든 후보중심론의 대칭적 개념은 ‘세력연대론’이다. 이는 정파와 정파, 세력과 세력끼리 이합집산하는 행태다. 그러나 ‘전부 합쳐도 지지율 10%’인 범여권 후보들에겐 고정적 지지기반이 취약하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DJ)만이 그런 세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5~17% 정도가 적극적 친노지지세력임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다. DJ 역시 무안·신안 4·25재보선에서 그의 ‘건재’를 과시했다.

“난국 헤쳐나갈 리더십 없다”

두 사람이 여권의 킹메이커로 부상할 수 있는 필요조건은 이미 형성되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은 “정치세력화를 위해서 고정지지층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노 대통령, DJ 그리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외에는 지지표가 매우 유동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정당이 재편성되는 과정에서 지역 이외의 변수는 없었다”면서 “그러나 노 대통령은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정책 정체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 게 이런 분석의 근거다. 사실상 지역구도가 아닌 이슈 중심의 재편에 역점을 두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노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도 “정권 못 잡아도 좋다. 철학과 노선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은 이를 “노 대통령은 영남정서에 맞는 목소리를 내서 비호남 탈지역주의 세력을 결집해 범여권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 대선 예비후보에 대한 ‘비토발언’을 통해 차기대선에 사실상 개입해왔다.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총장도 노 대통령의 정책 정체성이라는 ‘덫’에 걸려 좌초했다. 고 전 총리를 향해선 “인선을 잘못했다”고 말했고 정운찬 전 총장에겐 “경제 좀 안다고”라고 비판했다. 고 전 총리는 조세 중심의 부동산 정책에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정운찬 전 총장도 한때 한·미 FTA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고 전 총리와 정 전 총장은 모두 호남·충청을 잇는 ‘서부벨트’에 기대를 걸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서부벨트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구도에 안주하는 대권후보에 대한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인 셈이다. 이는 사실상 노 대통령에 대한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는 범여권 후보에 대해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열린우리당 의원은 “노 대통령은 결코 ‘나를 밟고 넘어가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관건은 노 대통령이 주도하는 정치권 재편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친노그룹의 한 인사는 “과거처럼 전직 대통령이 후임자 선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후계구도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라고 전제하고 “그렇지만 판을 깨는 데는 일조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영달 원내대표도 “노 대통령은 대통합 과정에서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주자들이 참여정부의 정책과 노선을 승계하도록 정치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DJ, 4·25 재보선서 건재 과시

그런 측면에서 친노그룹의 세력화 작업인 ‘참여정부평가포럼’ 출범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포럼은 창립선언문에서 “참여정부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정당한 평가가 다음 시대의 비전을 세우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이화영 의원은 “이곳에서 공약작업 등도 이뤄질 것”이라면서 “사실상의 정치예비군”이라고 규정했다. 참여정부의 정책을 공유하는 그룹을 중심으로 다음 대선에서 모종의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다. 서동만 교수는 “범여권의 행보가 지지부진해서 노 대통령의 역할이 커보이는 것”이라면서 “여권의 정비 미숙으로 현직 대통령의 권한이 커보이는 것은 향후 대권경쟁에서 긍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 지지세력의 이중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내에서 “이번 4·25재보선 화성선거구도 친여권 무소속 후보를 지원했어야 한다”는 얘기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서동만 교수는 “노 대통령의 지지세력이 곧 범여권의 지지기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킨 선거결과”라고 말했다. 현재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전통적 지지기반이 아니라는 얘기다. 열린우리당 산하 열린정책원의 한 선임연구위원도 “한·미 FTA 타결로 보수층이 일시적으로 지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슈를 중심의 재편 역시 쉽지 않을 것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김형준 교수도 “한·미 FTA에 대한 범여권 후보의 시각 차이가 엄존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이게 노 대통령이 대선 개입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친노그룹의 딜레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보완하고 대선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세력이 필요하다. 최재천 의원도 “정책은 결국 실용주의적 대파격이 있어야 한다”면서 “적어도 지난 대선과 같은 1대1의 후보단일화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6·29선언,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통합, 김대중 전 대통령의 DJP연대, 노 대통령의 정몽준 의원과의 후보단일화에 비견되는 ‘파격적 제안’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최 의원은 “세대교체와 세력교체를 동시에 충족시키면서 새로운 분권과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방안이 그것이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통치철학과 국정운영의 목표는 다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라면 노 대통령은 주류세력의 교체와 지역대결구도 해체다(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이런 이유에서 차기 대선에 개입하는 이유와 방법도 차이가 나는 게 당연하다. 홍형식 소장은 “DJ는 자신이 수행했던 한반도 평화정책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싶어한다”면서 “그것은 대통령이 되려는 것보다 더 강해 보인다”고 말했다. 남북정책에서 자신의 햇볕정책을 승계하는 사람에 대한 지원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서동만 교수도 “노 대통령이 대북정책에서 상당히 헤맸다”라면서 “그래서 DJ의 역할이 커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비토발언 통해 사실상 개입

DJ가 자신의 둘째아들을 4·25재보선에 출마시킨 것 역시 대선개입의 모티브가 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홍업 의원의 지원을 요청하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벌써 감지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은 “민주당은 DJ의 젖줄”이라고 전제하고 “김홍업 의원이 범여권 대통합 과정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웅 의원은 “궁극적인 목표는 노 대통령과 DJ 지지표를 모으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노그룹인 이화영 의원도 “DJ의 해법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DJ+노무현 연대’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지역(호남)과 이슈(남북문제)를 정점으로 한 DJ의 지원과 2008년 총선까지 반한나라당 구도를 끌고 가는 데 주력하는 노 대통령의 현실적 파워가 부각돼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DJ의 대선개입 방식은 전혀 딴판이다. DJ는 지역변수를 상수로 두고 있는 듯하다. 지역적 기반 위에 이념적·계급적 이슈를 덮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그게 바로 호남과 충청 그리고 경기지역을 잇는 ‘서부벨트’다.

최근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만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 이후 박상천 대표가 ‘제3지대에서 만나자’는 제안을 했다. 통합 동교동에서 독자생존에 방점을 뒀던 박상천 민주당 대표에게 통합압력을 행사했다는 설명도 따라붙었다. 통합신당모임의 한 인사는 “동교동이 나선 결과”라고 말했다. 이런 소문이 돌자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옥두 전 의원 등은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계의 역할론에 대한 실체가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도 있다. 신국환 의원의 ‘당적이동’(국민중심당 → 통합신당모임)이 그것이다. 이욱렬 국민중심당 사무부총장은 “신국환 의원이 두 달여 전 DJ를 만난 게 탈당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서부연대’에 국민중심당이 들어와야 한다며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욱렬 사무부총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두 번(산업자원부 장관)이나 신세를 졌는데 그 뜻을 저버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의원교섭단체(의석 20석)를 달성한다면 DJ의 힘은 더욱 크게 느껴질 것으로 보인다. 선(先)교섭단체 후(後)통합논의로 가닥을 잡은 민주당은 문학진·전병헌·이강래·이종걸·노웅래·제종길,·우윤근·송영길·김덕규 의원 등과 민주당의 입장을 탐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대선 영향력은 대선주자들의 지지율과 함수관계가 있다. 서동만 교수는 “열린우리당이 중심을 세워 한나라당과 맞섰다면 두 사람이 이런 식으로 정치과정에 개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인터뷰/동교동계 배기선 의원

“DJ-노 대북정책 차이 없다”

- 4·25재보선에서 김홍업 의원의 당선이 주는 의미는.

“김홍업 의원의 당선은 한반도 평화번영 정책의 결실을 맺으려는 유권자의 기대를 담고 있다. 또 통합의 상징이라는 의미도 있다. 김홍업 개인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또 민주당 핵심당원 800여 명이 탈당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통합을 위해 열린우리당이 주도해서 당선시킨 것이다. 김홍업 의원도 선거과정에서 대통합을 주장했다.”

- 대선과정에 동교동계의 배후설 실체가 있는 것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배후에서 무엇을 하겠는가. 김 전 대통령의 특별한 역할은 없다. 변화 없이 한반도의 평화번영을 위해 뭉쳐서 역사에 좋은 흐름을 유지하길 바라는 것이다.”

- 노 대통령과 대북정책의 이견이 선거개입 의지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두 사람 사이에 대북정책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본다. 김 전 대통령은 남북문제 해결을 위해 목숨 걸고 주도해왔다. 경륜과 철학을 바탕을오 정책적인 대안을 국민과 미국에 펴온 전문가다. 김 전 대통령이 ‘클린턴’ 이라는 좋은 파트너를 만났다면 노 대통령은 ‘부시’라는 어려운 파트너를 만나 고전했을 뿐이다. 근본적인 대북문제의 철학과 전략에 차이가 없다.”

- 한반도 평화정책에 동조하는 후보를 지원할 가능성은.

“당연히 평화번영 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며 이를 정치적으로 잘 소화하는 후보를 기대한다. 누가 되는 마찬가지다.”

- 거론되는 후보 중 누가 DJ의 햇볕정책 승계 가능성이 높은가.

“아직 검증도 안 됐는데…. 개인적으로는 ‘한반도 평화 리더십’ ‘글로벌경제 리더십’ ‘양극화 해소 리더십’ 이라는 세가지 덕목은 필수적이라고 본다.”

인터뷰/친노그룹 이화영 의원

범여권 대통합 DJ해법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