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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역대 대통령 통치사료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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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노태우·김영삼 자의적 분류·소장… 박정희·김대중 비교적 기록 보존 충실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왼쪽)의 취임식에 참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통치사료는 극비문서, 집으로 가져가야 안심했다”
청와대 문서보관실에서 발굴된 역대 대통령들의 통치사료가 정리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들어서부터다. 2002년 1월 당시 대통령 비서실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개인 파일이 포함된, 총 1302점에 달하는 ‘역대 대통령 관련 자료’를 발굴해 공개한 바 있다. 그나마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문서가 제대로 보관된 것과 달리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의 통치사료는 상당부분 사라진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공개된 자료에는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 대통령 재임 시절의 서한철(書翰綴)과 공식 외교문서철 등 파일 123점,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의 공식행사 녹음테이프 719점, 김영삼 대통령 관련 기록물 460점 등이 포함돼 있었다.
1953년 3월부터 1960년까지 이승만 대통령과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사이에 오간 서한, 육영수 여사 서한철(1964~1971년), 밴 플리트 장군 서한철(1956~1958년), 최규하 대통령 의전일지 등도 발굴돼 역대 대통령들의 기본적인 통치사료의 일단을 볼 수 있었다.

현재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역대 대통령 기록은 모두 27만8000여 건이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이 남긴 기록은 박정희 대통령을 제외하곤 대부분 법률시행 재가문서나 시청각자료가 고작이다. 국가의 중요 정책을 추진, 결정하는 데 있어 그 배경을 알 수 있는 사료는 거의 없다. 대부분 임기 말에 자신에게 불리한 자료를 폐기했기 때문이다.

남다른 기록열로 유명했던 사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그는 청와대 비서실 역사상 최초로 공보수석 밑에 통치사료비서관을 두어 자신의 어록과 자료를 챙겼다. 당시 김성익 통치사료비서관은 전 전대통령의 술자리까지 쫓아다니며 대통령의 언행을 기록했다. 여기까지는 참으로 가상한 일이다.

1988년 초 청와대를 떠날 때 그는 트럭 서너대 분량의 통치기록을 집으로 가져갔다. 한때 부인 이순자씨가 회고록을 쓸 때도 전 전대통령의 공식, 비공식 자료들이 중요한 참고가 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 대통령 시절 민간인 측근으로 전 대통령과 독대를 자주했던 ㅇ씨는 “당시는 모든 정치 행위가 대통령의 밀실에서 나왔기 때문에 통치사료비서관 정도는 알 수 없는 사안이 책 수백권 분량에 이를 것”이라 말했다.

어쨌거나 전두환 시절의 통치사료비서관실의 기능과 역할은 청와대 역사상 대통령의 언행에 가장 근접한 공식 통로였다. 이와 같은 통로를 통해 수집한 공식 자료의 사유화는 분명 불법이지만 당시만 해도 관계 법령이 정비되지 않아 이를 차단할 방법이 없었다.

군사독재의 중요한 자취라 할 수 있는 1980년 당시 ‘삼청교육’과 ‘학원 정화’ ‘언론 통폐합’등의 추진 배경을 살필 수 있는 관련기록이 모두 사라졌다. 또 정권 창출의 기폭제였던 ‘국보위(80년)’ 관련자료도 고작 국보위 현판과 관인대장만 남아 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만난 전직 대통령들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전두환 육성증언’의 한계

김성익씨는 1992년 ‘전두환 육성 증언’이란 제목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600쪽이 넘는 분량의 이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됐지만 전직 통치사료비서관의 ‘선별적인’ 자료 분류의 결과란 점에서 전두환 시대의 전모를 드러내기에는 객관성이 결여돼 있다. 양적인 면에서도 연구의 기초가 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6·29 전야 자신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부분을 집중 부각, 정치적 목적의 홍보물에 불과하다는 ‘악평’을 받기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러시아 수교와 남북합의서 교환 등 공식문서는 더러 있었으나 청와대 수석실에서 올린 보고서는 드물었다. 심지어 199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관련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육사 22기 하나회 출신으로 최근까지도 노 전대통령과 자주 만나는 ㅅ 전 예비역 소장은 “현재 노대통령의 회고록이 거의 완료된 상태로 출간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 전대통령 역시 방대한 자료를 연희동으로 가져가 회고록 집필 등에 활용하고 있다는 정황을 짐작케 한다.

노태우 정권 퇴임 뒤 청와대에 들어간 김영삼 대통령의 측근들은 경악했다. 제대로 된 문건, 즉 후임자의 업무 수행에 참고가 될 만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YS 역시 남을 탓할 자격이 별로 없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비서관들 역시 김영삼 전 대통령 측의 무성의한 통치 기록에 ‘황당함’을 느껴야 했다. 당시 통치사료비서관은 공개된 공식 자료만 모았고 국무회의 발언 내용도 기록하지 않았다. 기록을 남기면 국무위원들이 소신껏 발언을 못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YS 시절 청와대 통치사료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ㄱ씨는 “나중에 기자들이 찾아와 같이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기껏 연설문 같은 공개 문서를 만지작거렸던 당시 업무 특성상 단행본 출간은 꿈도 꿀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통치사료비서관실의 위상과 역할은 임금의 탄식 소리까지 기록한 조선시대의 사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2004년 국가 기록 문서의 현황을 점검한 바 있는 감사원은 YS 시절 상당한 분량의 비서실 재가문건을 발견했다. 그러나 IMF 관련 사전 대책 보고서 등 실정(失政)의 핵심이라 할 만한 자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 당시 감사원의 감사 결과였다.

비교적 풍부한 자료가 남아 있다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재임 기간 정국을 뒤흔들었던 ‘국민방위군 사건(1951년)’과 ‘진보당 당수 조봉암 사건(1958년)’ ‘3·15 부정선거(1960년)’ 등 주요 사건의 관계기관 대책협의 기록물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경황이 없는 중에도 당시 관련자들이 자신들의 오점을 드러낼 자료들은 철저하게 ‘처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8년 퇴임하면서 길거리의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4만여 건에 가까운 기록을 남긴 박정희 전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국가재건최고회의’를 통해 권력을 움켜잡았지만 당시 회의록은 남아 있지 않고, 장기집권의 토대를 닦았던 ‘3선 개헌’(69년)과 ‘10월유신’(72년)도 단행 배경이 적힌 문서가 남아 있지 않다. 1969년부터 1979년까지는 사실상 ‘기록의 공백상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정희 시대사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베트남 파병 관련 서류도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이 때문에 국내 학자가 한국 정부의 베트남전 파병 결정 과정을 연구하려면 미국행 항공권부터 끊어야 한다. 박사 논문 정도를 쓰기 위해서는 베이스 캠프를 아예 미국에 세워야 할 정도다.

미 텍사스대학 안에 있는 린드 B. 존슨 대통령 도서관, 미국 메릴랜드의 국립문서보관소에서 1960년대 중·후반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관련 문서를 보기 위해서다. 국내에도 외교통상부나 외교안보연구원에 베트남전 관련 자료가 있지만, 체계적 연구를 하기에는 자료의 질과 양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자료의 빈곤’은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한국 대통령들이 대부분 재임시 통치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규하 전 대통령 취임사도 사라져

최규하 대통령의 경우는 1979년 당시 취임사도 남아 있지 않아 당시 대통령 관련 기록물들이 얼마나 허술하게 취급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최 전대통령 역시 자신의 민감했던 재임기를 의식해서인지 대부분 자료를 폐기했거나 사저로 가져간 것으로 전해진다.

국가기록원이 대통령 기록을 건국 이후 최초로 인수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2월부터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기록원이 인수한 통치자료는 모두 15만7580건이다. ‘대통령 기록을 정부기록보존소로 이관해야 한다’고 규정한 ‘정부공문서 규정(87년)’이 생긴 지 16년이 흐른 뒤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료가 소장된 김대중도서관의 전경.



그나마 김대중 전대통령이 통치 기간에 자신의 개인적인 기록물과 자료까지도 비교적 충실하게 보존하고 있는 편이다.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 1층 열람실에는 김 전 대통령이 소장해온 단행본이 가득하다. 그의 관심사를 반영한 듯 핵문제, 미국의 세계전략, 국제정세, 북한 관련 책이 서고 한쪽을 메우고 있다.

1층 열람실 한켠에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시계, 암살된 필리핀 아키노 상원의원으로부터 받은 수동타자기 등 세계 각국의 ‘민주화 동지’들로부터 받은 선물들이 놓여 있었다. 2층에는 비디오와 녹음테이프, 사진첩들이 주로 있는데,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때 김 전 대통령이 서명한 만년필도 전시돼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재임시 공보수석실 산하에 신설한 ‘통치사료비서관실’은 정권이 바뀐 후에도 계속 유지되다가 참여정부 들어서는 ‘국정기록비서관실’로 개편됐다. 이런 직제가 버젓이 있는데도 통치 관련 기록이 제대로 남지 않은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기록관리 책임자가 바뀌고 기록물 관리 전문요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 대통령직을 그만둔 대통령이 많아 재임 기간의 기록물들은 ‘보안을 지켜야 할 비밀문서’로 간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교적 충실하게 자료를 남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도 “모든 자료를 다 넘긴 것 같지 않다”는 것이 국가기록원 관련자들의 말이다. 여전히 대통령 재임 중의 자료와 기록물들이 대통령의 의지와 목적에 따라 자의적으로 분류, 소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 기록물 관리법령들이 개정되고 보완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기홍〈객원기자〉 glutton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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