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STX그룹 초고속 성장의 비밀

선박 관련 기업 집중 인수해 수직계열화… 올해 들어 ‘균형성장’에 초점 ‘숨고르기’

STX그룹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STX조선.

‘2의 김우중, 제2의 신선호.’
최근 행보가 눈부신 STX그룹 강덕수 회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한때 재계 1, 2위를 다투던 대우그룹을 일으켰고, 신선호 전 율산그룹 회장은 1970년대 율산실업이란 오퍼상으로 출발해 불과 4년7개월 만에 14개 계열사에 8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시켰던 인물이다.

강 회장도 STX그룹을 2001년 출범 이후 불과 5년 만에 재계 24위권(공기업과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으로 올려놨다. 5년 간 STX그룹은 4개의 회사를 설립하고, 3개의 회사를 인수했다. 강 회장의 손이 닿으면 법정관리에 있던 기업들도 회생했다.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릴 정도다. 매출은 28배, 자산규모는 12배 각각 성장했다. 출범할 당시만 해도 매출 2600억 원의 중견기업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8조1000억 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STX 중심 순환출자로 그룹 지배

이러한 놀라운 성장에는 강 회장의 속도경영이 가장 큰 몫을 했다. 강 회장의 지론은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기업경영에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뒤처지다가는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면서 “대내외 환경이 너무나도 빨리 변하기 때문에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속도경영의 대표적 사례는 대동조선과 범양상선이다. 법정관리 중이던 대동조선(현 STX조선)을 2001년 인수해 경영정상화를 조기에 이루어내고 불과 2년만에 증권선물거래소에 상장시켰다. 17년간의 법정관리를 끝낸 범양상선(현 STX팬오션)도 인수한 뒤 국내 기업 최초로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상장시켰다.

현재 STX그룹은 지주회사인 ㈜STX를 중심으로 계열사를 장악하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우선 ㈜STX는 STX조선·STX엔진·STX에너지를 거느린다. 그리고 STX조선은 다시 STX팬오션과 STX중공업을 장악하고 있다. 강 회장은 바로 이 ㈜STX와 함께 포스텍 대주주로 올라 있다. 강 회장은 자신의 지분 14.53%와 포스텍이 보유한 지분 22.89%로 지주회사인 ㈜STX를 장악하고 있다. 포스텍은 강 회장이 75.34%의 지분을 보유한 사실상 개인회사다.

이러한 놀라운 성장에는 강 회장의 탁월한 리더십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 시금석은 쌍용그룹에서 분리된 쌍용중공업. 쌍용중공업의 경영권이 한누리컨소시엄으로 넘어갔을 때 사장직을 맡았다가 한누리컨소시엄의 권유로 사재 20억 원으로 경영권을 인수했다. 쌍용중공업을 2001년 5월 ㈜STX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출범시킨 강 회장은 출범 직후 엔진 부품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 형식으로 떼어내 엔파코(현 STX엔파코)라는 회사를 만들었고, 같은 해 ㈜STX가 갖고 있던 매출채권을 담보로 ABS(자산유동화증권)를 발행해 마련한 자금으로 당시 법정관리 기업이었던 대동조선(현 STX조선)을 인수했다.

하늘이 도와준 ‘M&A 퍼즐맞추기’

강덕수 회장은 지난해 말 올해의 CEO로 선정돼 창원전시컨벤션센터의 ‘기업명예의 전당’ 에 헌정됐다.

강 회장은 선박건조 특성상 선박용 메인 엔진의 안정적 조달과 경쟁력 확보는 신조선 수주와 선박 건조일정 결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국내 엔진 메이커는 현대중공업과 HSD엔진이 오랫동안 군림하고 있었다. 현대중공업 엔진사업 부문의 경우 모기업인 현대중공업과 계열사 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에서 주문이 많아 중소기업이나 마찬가지인 대동조선으로는 필요한 시기에 엔진을 납품받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HSD엔진도 마찬가지. 주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한진중공업 등 대형 조선소의 주문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줬다. 이에 따라 엔진메이커인 ㈜STX가 대동조선을 인수함으로써 선박 메인 엔진 시장에서도 안정적인 고객을 확보해 시장을 확대할 수 있었고 대동조선은 안정적으로 엔진을 납품받아 배를 만들 수 있었다. 시너지효과를 거둔 것이다. ㈜STX는 대동조선을 인수하기 전까지는 메인 엔진이 아닌 보조엔진을 주로 제작해 납품했다.

강 회장은 또 이듬해인 2002년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 2003년에는 범양상선(현 STX팬오션)을 각각 인수했다. 범양상선의 경우 인수 당시 매출 규모가 기존 STX그룹과 맞먹는 회사였는데, 이 M&A로 강 회장은 재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STX팬오션의 경우 선박을 STX조선으로부터 사들이면서 안정적인 매출처가 됐다. 또 STX에너지는 STX건설 플랜트사업 부문의 매출처가 되고 있다. 이런 M&A는 문어발식 확장과 대비된다. 무차별적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한 것이 아니라 수직계열화를 이뤘다는 강점이 있다. 철저하게 연관산업 위주로 영역을 넓혀간 것이다. 이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STX그룹 수직계열화의 최상층에는 STX팬오션이 있다. 그 아래가 STX조선(선박 제조)이다. 그 다음은 STX엔진·STX중공업(엔진 제조), STX엔파코(엔진부품 제조) 순이다. 이 가운데 STX팬오션을 뺀 나머지 회사들은 그룹의 조선·기계 부문 핵심을 이루고 있다. STX팬오션은 해운·물류 부문의 기둥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문어발식 확장에만 급급하다 사라져간 것과 비교하면 자신만의 전문분야에서 국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셈이다. STX그룹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강 회장은 천운(?)도 따랐다. 대동조선을 인수할 때는 조선시장이 좋았고, 범양상선 인수 후에는 해운시장이 엄청난 활황을 보였다. 강 회장 자신도 운이 따랐음을 인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강 회장의 ‘M&A 퍼즐맞추기’는 현재까지 기가막히게 딱딱 맞고 있다”고 놀라워했다.

‘야심작’ 대한통운 인수도 난항

물론 강 회장이 매번 성공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8월 인천정유 인수전에 참여했다가 SK㈜에 고배를 들은 것. 한국종합에너지 인수전에서는 포스코에 밀렸다. 무려 1700여억 원을 들여 21.3%의 지분을 사들인 대한통운도 M&A에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대한통운은 비록 STX팬오션이 최대주주지만 CJ 등이 눈독을 들이고 있어 인수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강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그룹 운영방향을 ‘균형성장’으로 정했다. 급속한 성장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에너지, 물류회사를 추가로 인수하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2010년 매출 15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그 증거다. 올해 목표치 8조원의 무려 2배다. STX그룹 관계자도 “인천정유는 SK㈜에 뺏겼지만 에너지 분야에 매물이 나오면 다시 도전할 생각”이라며 “이는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한통운도 채권단에서 구체적으로 매각 밑그림을 제시하면 경영권 인수에 나설 방침이다. 강덕수 회장을 ‘제2의 김우중·신선호’로 부르는 것은 그룹의 성장기 때만을 놓고 본 것이다. 김우중·신선호 전 회장은 비록 재계에서 돌풍을 일으켰지만, 결국 그룹이 분해되는 비운을 맞았다. 과연 시작이 비슷한 강 회장이 두 사람의 전철을 밟지 않고, 계속 성장해 나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 후계구도는?

강덕수 회장과 STX그룹의 또 하나 관전포인트는 경영권 승계다. 현재 강덕수 회장의 나이(55세)로 볼 때 경영권 승계를 논하기는 이르다. 빨라도 10여 년이나 지나야 가시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1남2녀인 자녀가 20대 초·중반이어서 아직 공부를 더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두 딸에게 STX건설 유상증자 참여를 통해 20억 원씩을 증여한 것이 눈에 띈다. 외동아들에게는 증여가 아직 없었다.

현재 그룹 현안은 계열사 대표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에서 협의하고 있다. 지주회사인 ㈜STX는 지원업무를 하는 데 그치고 있다. 또 ㈜STX와 STX팬오션을 제외하고 전문경영인에게 상당한 권한을 일임하는 경영체제다. 게다가 강 회장도 태생적으로 오너보다는 전문경영인에 가까워 강 회장이 자녀에게 그룹 경영권을 승계시킬지는 아직 미지수다. STX그룹 관계자는 “강 회장이 계열사의 임원 등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주겠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면서 “자녀들에게 물려주지는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조명

STX그룹은 일반인에게 인지도가 낮다. 주로 조선 등 중공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고 또 강 회장 역시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등 매스컴 노출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1일 북한산 단체등반 때 옷에 STX 로고가 있는 STX 직원과 마추진 등산객들이 “STX가 뭐 하는 곳이야?”라고 물었을 정도다. 그래도 참여연대가 강 회장의 증여문제를 지적하면서 예전보다는 지명도(?)가 많이 올라갔다.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등 최근 재벌 후계자의 경영권 승계 문제가 재계의 핫이슈여서 화제가 됐던 것. 비록 먼 훗날이지만 STX그룹의 후계구도에 재계를 비롯한 곳곳에서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완제 기자 jw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