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대통령’을 바꿔야 한다

일본식 한자 ‘통령’에서 유래한 용어… 군사문화 청산 위해서도 변경 고려해야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바로 대통령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원래 군대 직위이고 일본의 정신과 혼(魂)이 깃든 용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함성득 고려대 교수는 그의 저서 ‘대통령학’에서 대통령이라는 말을 한국이 가장 먼저 사용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 중국에서는 대표적인 일본식 한자의 예로 드는 것이 바로 이 대통령이라는 용어이다.

우선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통령(統領)에서 비롯된 말이다. 통령이란 중국에서 “1894년 청일전쟁 때 북양함대의 해군 딩(丁) 통령과 육군 다이(戴) 통령이 뤼순에서…”라는 문장에서 보듯 청나라 후기 무관 벼슬의 명칭으로 오늘날의 여단장에 해당한다. 당시 통령은 여단장급이고, 통제(統制)는 사단장급이었으며, 통대(統帶)는 군단장급이었다. 갑신정변 당시 조선에 진주한 청나라 군대의 우두머리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직위가 바로 이 통령이었다.

고작 위안스카이가 쓰던 직위를

통령이라는 명칭이 비공식적으로 쓰인 예는 그 전에도 있었다. 고대 한나라 시대 북방 유목민족인 흉노 등 소수민족 군대의 장군을 통령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도 무협소설가 와룡생 등이 지은 대중적인 무협소설에서 통령이라는 말이 가끔 등장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호칭이다. 현재는 통령이 벼슬 명칭으로는 사용되는 예가 없다. 다만 “중국 여자축구가 세계 여자축구를 통령한다” 등과 같이 이끌어간다는 의미의 동사로만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통령이라는 벼슬은 있었다. 조선 시대에 조운선 10척을 거느리는 벼슬을 통령이라 불렀다. 우리나라 기록에서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에 다녀온 이헌영이 1881년 펴낸 ‘일사문집’이라는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일본 신문이 ‘미국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기록을 남긴 것이다. 1884년 ‘승정원일기’에서도 고종이 미국의 국가 원수를 대통령이라고 호칭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 뒤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당시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이래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통령이라는 용어를 고대부터 사용하였다. 일본에서는 통령이라는 명칭이 ‘무문(武門)의 통령’ ‘사무라이 무사단의 통령’ 등 사무라이를 통솔하는 우두머리라는 군사적 용어로 사용되었다. “아소(阿蘇)씨 무가(武家)의 통령이 되었다”는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군사적 수장이나 씨족의 족장을 의미하는 용어로 매우 흔하게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왕룡(女王龍)의 신화 등에서도 그 여왕룡을 수행하는 기사를 통령이라고 칭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요즘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참배 문제로 한국과 중국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문제의 신사(神社)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아스카(飛鳥) 신사를 설명할 때에도 대국주신 통령(大國主神統領)이라는 말이 출현하고 있다.

일본은 프레지던트(president)를 번역하면서 자신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통령이라는 용어에 큰 대(大)자를 붙여서 대통령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최소한 1860년대 초부터 일본에서는 이미 대통령이라는 용어가 출현하기 시작한다.

프레지던트는 원래 ‘회의를 주재하다, 의장으로 행하다(preside)’에서 유래한 것으로 단체의 장(長)을 가리키는 용어다. 당시 미국이 굳이 이 용어를 사용한 까닭이 있다. 시민혁명을 거쳐 유럽과 다른 신대륙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자긍심이 대단하던 미국으로서 권위적이고 군림하는 성격을 지닌 황제라든지 왕이라는 용어 대신 민주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중국, ‘노무현 총통’으로 불러

사정이 이러한데 프레지던트를 대통령으로 표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군사적 용어인 데다가 강력한 지배와 통솔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프레지던트라는 용어를 사용하려던 원래의 목적과 완전히 상반되는 번역어라 할 수 있다.

한편 중국에서는 프레지던트의 번역어로서 1817년 두인(頭人)이라는 비칭(卑稱)의 성격을 띤 호칭을 사용한 이래 총리(總理), 국주(國主), 추(酋), 추장(酋長), 방장(邦長),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옥새를 장악하고 천덕을 지닌 사람이란 뜻으로 천자의 의미와 상통) 등의 용어를 사용해 왔다. 통령이라는 용어는 1838년에 이미 나타났고 대통령이라는 용어도 1875년께 출현했지만 두 용어 모두 그 이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1870년에 이르면 총통이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지금도 프레지던트나 우리의 대통령을 중국에서는 모두 총통으로 번역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부시 총통’ ‘노무현 총통’ 등으로 표기한다.

군사문화와 일본문화라는 두 가지 요소는 현재 우리 한국사회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영역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군사적 성격과 봉건적인 일본문화의 성격을 그대로 담고 있는 대통령이라는 용어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 원수의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는 현실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지금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의 권력이 집중되고 있는 현상도 어쩌면 대통령이라는 용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역사적 ‘빚’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더구나 구한말 시기 위안스카이가 조선에 진주할 때의 직위가 통령이었다는 점에서 ‘치욕적’이며, 일본 무사단이나 신사와 관련 있는 용어로써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 원수의 직위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민주와 평화를 지향하는 시대정신과 민족적 자긍심의 관점, 그리고 국가이미지의 차원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최근 개헌 필요성이 정치권과 학계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개헌을 논의하게 된다면 권력구조뿐 아니라 국가 원수의 명칭도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소준섭〈국회도서관 해외자료관·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