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산책]반상축제

바둑을 좋아하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참가해봄직하다.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그 무렵이면 금강산은 아직 한창 겨울일 테니 시기가 조금 아쉽기는 하다. 금강산은 1년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그래도 가을 풍광이 제일이라는 것 아닌가. 금강산의 겨울 이름은 개골산(皆骨山). 뼈만 앙상하다는 뜻인지.... 그러나 거추장스러운 녹음(綠陰) 장식 같은 건 모두 버린, 적나라한 본연의 모습 또한 장관일 것이다.

바둑관광 혹은 바둑여행은 참 좋은 여행상품이다. 왜 이런 상품이 아직 많지 않은지 이상하다. 일본에는 흔하고, 중국에도 꽤 많다. 바둑 크루즈도 있다. 유람선을 타고 명승지를 돌며 틈틈이 바둑을 즐기는 것이다. 우리도 한국기원이 여행사들과 머리를 맞대면 멋진 상품이 나올 것이다.

바둑여행으로 돋보이는 것은 유럽바둑선수권전이다. 현지에서는 '유로피안 고 콩그레스(Eropean GO Congress)'라고 부른다. '고(GO)'는 바둑이다. '기(棋)'와 '기(碁)'가 모두 '바둑 기'인데, 일본 발음으로 기(棋)는 비슷하게 '기'이고, 기(碁)는 '고'다. 그 '고'를 영문표기한 것이 GO다. 일본이 서양에 바둑을 먼저 전파했기 때문에 영어권에서는 GO가 바둑으로 통한다.

콩그레스는 올해로 48회째다. 유럽 바둑의 역사가 일천할 것이라고 깔볼 것이 아니다. 콩그레스는 그 명칭이 말해주듯, 하루 이틀에 끝내는 바둑대회가 아니다. 매년 7월 마지막 주에서 8월 첫째 주, 무려 2주일 동안 열리는 바둑축제다. 그때가 유럽에서는 여름 휴가철이다. 바둑꾼들은 1년 내내 이때만 기다리다가 모아놓은 돈을 털어 가족, 친구들과 함께 축제장을 찾아간다.

장소는 매년 다르다. 유명 도시일 수도 있고, 변방의 작은 마을일 수도 있다. 휴가를 겸해야 하므로 대도시냐 소도시냐 하는 것보다 문화적으로 풍성한가, 혹은 주변경관이 좋은가, 그런 것들이 전제조건이다. 지난 여름에는 평소 들어보지도 못했던 폴란드 북쪽의 인구 2만의 조그만 도시 투홀라에서 열렸다. 그러나 거리 불문, 800명이나 모였다. 우리 아마대회 참가 숫자가 보통 300명, 많아야 500명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굉장한 숫자다.

참가자격에 실력제한은 없다. 우리 식으로 최강부만 따로 있고 나머지는 치수를 적용한다. 바둑은 하루에 1판만 둔다. 제한시간은 각자 2시간 반이다. 아무리 봐도 그건 좀 웃긴다. 지들이 무슨 프로라고.... 10급 언저리의 하수들이 한수에 30분씩 장고를 하고, 자기가 둘 곳을 기보용지에 일단 적어 넣은 후,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착점을 한다. 30분 이상 장고해봤자 대개는 엉터리 수지만.

바둑대회 자체도 메인 토너먼트 외에 속기, 9줄바둑, 연기 등 종류가 다양하고 그밖에 오목, 장기, 주사위게임 같은 것도 있다. 또 바둑이 끝나고 오후에는 카페나 잔디밭에 삼삼오오 모여 자신이 둔 바둑을 복기도 하고, 수영도 하고, 편을 짜서 축구도 하고, 마라톤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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