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노동자는 민주주의의 예외인가

화물연대 파업이 개시된 다음 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민주노총이) 국민 혐오 대상이 됐고, 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는 말까지 생겼다.” 여기서 “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는 말은 지난해 부친의 부동산투기 의혹으로 의원직을 사퇴한 윤희숙 전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이다. 그는 같은 당 의원의 입에서 나온 주장을 시민 일반의 의견인 것처럼 날조해 인용했다. 노동자를 향한 공격성은 저 당 사람들의 정신적 습관이다. 지난 9월 주호영의 전임자였던 권성동 원내대표는 정의당이 발의한 노란봉투법에 대해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황건적 보호법”이라고 말했다. ‘황건적’이라는 비유가 재미있다. 어쩌다 남의 나라 역사까지 뒤져가며 저런 말을 가져온 걸까? 우리 역사에는 백성을 사회의 적으로 규정한 말이 없다. 한국 역사에서도 많은 민중 봉기가 있었고 왕조가 그들을 진압했지만, 봉기를 일으킨 백성을 가리켜 말살해야 할 사회의 적으로 규정한 말은 없다. 노동조합을 악마화할 비유를 찾아 헤매던 권성동 의원이 뒤지고 뒤지다 2000년 전 남의 나라 역사에서 ‘황건적’이란 비유를 찾아낸 거다. 그의 집념에 노력상이라도 주고 싶다. 이 비유 덕분에 정부·여당이 노동자들을 사회의 적으로 묘사하는 데 얼마나 골몰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황건적은 어떻게 황건적이 됐을까? 한나라 말, 머리에 노란띠를 두르고 다니던 시골 신도들은 극심한 수탈과 대기근으로 삶이 피폐해지자 조정에 맞서 집단 봉기에 나섰다. 현대 중국 역사는 이를 수탈당한 민중의 저항으로 기억한다. 안전운임제 일몰과 고유가 충격에 맞서 거리에 나선 화물노동자들의 운명을 보는 것 같다. 입법 공백 상태에서 갈등을 방치하던 윤석열 정부는 갈등의 조정자로 나서는 대신 노동자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형사처벌을 예고했다. 민중의 삶을 외면하다가 마침내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탄압했던 한나라 조정이 연상된다.

가만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위 발언에서 ‘민주노총’ 자리에 다른 시민의 이름을 넣어보자. 자국 시민을 향해 혐오를 쏟아낸 저 정치인들은 무사할 수 있을까? 이제 우리 정치는 특정 지역을 비하하거나 소수자를 향해 혐오를 투사하는 정치인을 용납지 않는다. 정치인이 어떤 시민을 혐오하고자 한다면 교묘한 선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에 비해 노동자는 날것의 거친 말로 당당하게 혐오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아무렇게나 날조한 말로 비난하고 남의 나라 역사까지 왜곡해 끌어와 비난해도 괜찮은, 우리 정치에 마지막 남은 혐오 대상이다.

권력이 시민을 적대할 때 우리는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노동자들의 요구에 동의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요구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해서 동료 시민을 혐오하는 권력 편에 서서는 안 된다는 것, 파업에 반대할 수 있지만 그들의 파업할 권리마저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 민주주의는 누구의 앞에서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주식 「토론의 즐거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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