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전성시대]작가와 품평

허점 지적? SF작가는 이렇게 대응한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에세이 <긍정적인 집착>에서 첫 작품을 팔고 다음 작품을 팔기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며, 그리 오래 걸릴 줄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아 천만다행이라 회고했다. 그러면서 몇 번 거절당하든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또 보내라고 말한다. 어슐러 K. 르 귄도 같은 말을 한다. 하긴 장르 차이를 불문하고 성공한 작가들은 죄다 같은 말을 한다. 이런 현실 탓에 피어스 앤서니는 진짜 대성하기 전에는 절대 전업작가가 될 엄두를 내지 말라고 경고한다. 누구나 하인라인처럼 생활비가 필요해 생전 처음 가볍게 투고한 첫 작품이 히트를 치면서 부침 없이 성공가도를 달리지는 않는다. 누구나 래리 니븐처럼 자신을 좋게 봐준 선배작가 겸 편집자의 눈에 띄어 단편 몇편이 잡지에 실리고 나서 그중 하나를 장편으로 다시 썼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지는 않는다.

제임스 블리시가 쓴 <하늘 가득 쏟아져 내리는 얼굴들> 표지 / Ace

이처럼 작가로서 자리 잡는 일이 만만치 않은 만큼 자기 작품에 대한 품평에 민감한 게 당연하다. 오죽하면 스티븐 킹 같은 뛰어난 이야기꾼조차 세간의 평판에 압박을 느낀 나머지 한동안 술독에 빠져 살았을까. 래리 니븐도 신인 시절에는 작가워크숍 평가회에 참가해봤자 배울 게 없다는 선입견이 있었나보다. 그의 술회에 따르면, 이런 편견을 넘어선 것은 데이먼 나잇과 케이트 윌헬름 나잇 부부가 운영하는 밀포드 워크숍에 제출한 세편의 단편 가운데 한편이 평가회를 통해 업그레이드되면서부터다. 이 모임에서 많은 선배작가와 부대끼며 그는 창작욕에 한층 더 불을 지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그조차 선배작가의 흠을 정곡으로 찌르는 데에는 주저하지 않았으니 아이러니하다.

제임스 블리시가 집필 중이던 장편 <하늘 가득 쏟아져 내리는 얼굴들>(1967)의 도입부 초고를 그에게 들고 왔다(블리시는 니븐보다 열일곱 살 연상으로 1960년대 <스타트랙> 오리지널 TV시리즈 에피소드 대본을 많이 썼다). 들어보니 1960~1970년대 영미 과학소설과 1970년대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할리우드 재난영화에서 인기를 끌었던 주제로, 이제까지 우리와 아무 상관 없는 존재로만 알았던 소행성이 지구를 들이받는 이야기였다. 실은 니븐 자신도 훗날 제리 퍼넬과 함께 같은 재난을 소재로 한 두툼한 장편 <루시퍼의 해머>(1977)를 발표한다. 블리시의 버전에서 인류는 폭탄을 발사해 소행성을 여러 조각으로 나눈 다음 달에서 레이저를 발사해 태워버리려 한다. 그러나 파편 가운데 대다수는 그럴 짬을 주지 않고 대지를 덮친다. 이제 니븐이 품평할 차례였다. “혹시 레이저로 파편을 한쪽만 겨누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요? 한쪽만 태우는 거죠. 그럼 얼음이 암석 사이에서 증발하면서 그 압력으로 앞에 있는 걸 밀어낼 겁니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 아시죠? 그러면 충돌하는 대신 비껴가게 할 수 있지 않겠어요?”

허를 찔린 블리시는 즉석에서 “그렇게까지 되려나” 했지만, 폭소를 터트리는 니븐의 표정에서 그의 지적이야말로 핵심 플롯을 날려버리는 한방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프로답게 대처했다. 레이저의 강도를 시카고로 향하던 파편이 그보다는 인구가 희박한 외곽지역으로 간신히 밀어낼 수 있는 정도로만 설정한 것이다. 기술적 한계는 인류를 구렁텅이로 내몰았지만, 덕분에 작가의 노고가 물거품이 될 뻔한 위기를 벗어나게 해줬다. 이러한 재간에는 니븐도 혀를 내두르며 자신도 배울 점이라 했다나.

<고장원 SF평론가>

장르물 전성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