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다리]레고의 부활?

최근 레고 해리 포터 세트를 꽤 사들였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오랜 팬으로서 20주년 레고가 줄줄이 나오고 있는데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20년이 지나는 사이, ‘장난감’이라 사달라고 하기에 눈치를 봤던 어린아이는 스스로 번 돈으로 망설임 없이 결제하는 어른이 됐다. 어릴 적 결핍과 동경, 현재의 소비력이 맞물려 집착적인 소유욕이 발동해버렸다. 한쪽에 쌓인 레고 박스를 보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른 심정이다.

레고 해리 포터 / 김서영 기자

레고 마니아 사이 격언이 있다. ‘모든 레고는 단종된다.’ 한정판 딱지가 안 붙었다 해도 사실상 한정판이라는 뜻이다. 레고는 상품별로 전부 고유번호가 붙어 나오는데,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생산이 중단된다. 단종 이후 고유번호를 검색해보면 프리미엄은 예사다. 가뜩이나 비싼 편인 레고는 점점 더 장난감이 아니라 수집품이 돼가는 것 같다. 애들보다는 나 같은 어른들이 더 난리인 것만 봐도 ‘키덜트’ 문화의 대표답다.

언젠가 넷플릭스는 자신의 경쟁상대가 인간의 ‘수면시간’이라고 했다. 단순한 상품(영상 콘텐츠)이 아니라 시간을 팔겠다는 선언이다. 한정된 자원인 ‘시간’을 붙잡아두는 능력이 기업 성패와 직결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1932년 설립된 기업 레고는 현대인의 시간을 뺏어오는 데 얼마나 성공하고 있을까. 부품수가 많아 조립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말고, 순수한 희열로 사람을 붙드는 재미 말이다.

2000년대부터 레고는 위기에 몰렸다. 비디오게임, 컴퓨터의 등장이 애 어른 할 것 없이 인간의 시간을 너무도 강력하게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일하고 공부하고 먹고 자고 나면 남는 시간은 뻔하기 때문에 게임을 많이 할수록 레고를 맞출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임의 중독성은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강력했고, ‘건전한’ 놀잇거리인 레고의 설자리는 좁아졌다. 여기에 더해 중국발 ‘짝퉁’이 우후죽순 생긴 것도 영향을 미쳤다. 스마트폰의 등장 역시 레고엔 악몽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반전의 기회는 의외로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레고는 올해 상반기 역대 최대 매출(230억덴마크크로네·4조2900억원)을 기록했다. 순이익도 전년 동기보다 140% 늘었다. 팬데믹으로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덕분이란 분석이 뒤따랐다. 레고 자체적으로는 온오프라인 판매 통로를 동시에 강화한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소황제’의 나라 중국에 신규매장을 확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서도 지난 1년 반 동안 레고 매장이 7곳에서 15곳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레고코리아의 지난해 매출 역시 전년 대비 25% 증가한 1521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새로 개장한 백화점에는 전부 레고 매장이 입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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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레고의 부활’로 읽어도 될까. 최근 보도를 보면 장난감 업계는 출생률 저하, 스토리텔링 부족 등으로 고전 중이다. 반면 레고는 성인층을 겨냥하고 해리 포터나 디즈니 같은 보증된 콘텐츠와 협업을 하며 치고나갔다. 그럼에도 내가 최근 레고에 ‘꽂힌’ 이유가 블록을 좋아해서인지 해리 포터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시간을 사로잡는 놀거리가 넘치는 시대, ‘재밌는 일 뭐 없나’란 질문에 레고가 가장 먼저 떠오를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