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프리뷰]국가대표급 창작 뮤지컬 <베르테르>

‘회전문 관객’이라는 말이 있다. 뮤지컬 보러 공연장을 들리는 사람이 아니라 다음 공연까지 잠시 쉬러 집에 들르는 사람들이다.

국내 뮤지컬계에 이런 충성스러운 관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20여년쯤 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열정을 다해 만들고, 신이 나 객석에 모여들던 이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수십 번에서 수백 번 공연장을 찾았음에도 여전히 기회만 있다면 기꺼이 다시 보겠다는 의욕 충만한 존재들이란 점이다. 무대 위 배우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비슷한 관심과 정보를 나누며, 각자의 해석을 덧붙여 특정 회차의 공연이 전달했던 의미를 되새김질한다. 의미의 재생산과 공감, 개인적 체험으로의 수용을 보다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함이다. 영상과 다른 무대만의 매력이자 즐거움이다.

CJ ENM 제공

창작 뮤지컬에서 ‘회전문 관객’을 처음 불러모은 것은 단연 <베르테르>다. 독일 문단의 거장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1774년 발표했던 서간체 소설을 한국 창작진이 무대용 뮤지컬로 탈바꿈시켰다. 초연 당시 공연 제목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지만, 줄여서 부르는 것을 선호하는 요즘 관객들의 취향에 맞춰 지금은 그냥 <베르테르>라고 부른다. 소설 집필 당시 괴테는 친구인 요한 캐스트너의 약혼자인 샤를로테 부프에게 첫눈에 반해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비슷한 처지의 고향친구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슬픔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를 접하고 자신의 경험과 친구 이야기를 적절히 뒤섞은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 소설을 읽은 당시 젊은이들이 베르테르의 옷차림을 흉내내고 심지어 모방 자살까지 유행하면서 20대 중반의 괴테는 일약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요즘도 유명 연예인이 명을 달리하는 사건이 보도될 때면 뒤따르는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우려는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뮤지컬이 초연된 것은 2000년의 일이다. 올해로 꼭 20주년을 맞았다. <베르테르>는 창작 뮤지컬이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에 이미 벨칸토 창법의 성악적 발성이 가능한 배우들을 대거 기용하고 실내악을 연상케 하는 현악 라이브 연주를 선보여 ‘음악이 좋은 뮤지컬’이라는 자자한 명성을 누렸다. <오페라의 유령> 우리말 공연의 초대 히로인이었던 크리스틴 역의 이혜경이나 중저음이 매력적인 김법래, 예민하고 서정성이 풍부한 연기로 심금을 울렸던 서영주 등은 초연 무대를 통해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이 작품의 오리지널 캐스트들이다. 지금은 중견급 배우로 성장해 안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지만, 당시 무대에서의 풋풋한 모습을 기억하는 애호가들에게는 영원한 베르테르의 상징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올해 막을 올린 20주년 기념 공연에선 엄기준과 카이, 유연석, 규현, 나현우의 다섯 배우가 메인 롤을 맡았다.

문화프리뷰

초연 당시 뮤지컬 <베르테르>를 좋아했던 충성스러운 관객들은 스스로를 ‘베사모’라 불렀다. ‘베르테르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코로나19로 얼어붙은 2020년 대한민국 공연계가 <베르테르>를 향한 관심으로 해빙기를 맞게 될지가 자못 궁금하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