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상생의 도시

예로부터 전주(全州)는 예향(藝鄕)으로 불렸습니다.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고, 내공이 깊은 예술가를 많이 배출한 고을이었습니다. 조선 후기에 대사습놀이가 시작됐고, 지금도 그 전통과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주는 역사의 고도(古都)입니다. 후백제의 도읍지이자, 조선 태조 이성계의 본향(本鄕)이 전주입니다. 조선은 건국 후 전주에 경기전을 짓고 태조의 어진(국보 317호)을 이곳에 모셨습니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태조의 초상화입니다.

음식과 맛을 얘기할 때면 결코 빠질 수 없는 도시가 바로 전주입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은 물론이고, 값싸고 푸짐한 전주백반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와 전주종이축제·전주세계소리축제 등 다양한 축제와 행사로도 유명합니다.

이처럼 전주는 ‘팔방미인’ 같은 도시입니다. 맛과 멋, 고즈넉한 풍류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다양한 매력을 지닌 곳입니다. 이런 전주가 올해 초부터 기승으로 부리고 있는 코로나19 확산의 와중에 새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보다 한발 앞서 상생을 위한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재난기본소득을 들 수 있습니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재난기본소득을 가장 먼저 도입해 지급 움직임에 불을 지핀 지자체가 전주시입니다. 지금이야 중앙정부는 물론 각 지자체에서 주고 있지만 지난 3월 전주시가 취약계층 5만여 명에게 각각 52만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할 때만 해도 재난기본소득은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이보다 한 달 전인 2월에는 전주 한옥마을 건물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임대료를 ‘3개월 이상, 10% 이상 인하’를 약속했습니다. ‘착한 임대인 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해고 없는 도시’ 역시 전주가 가장 먼저 시도한 모델입니다. 전주지역 175개 사업장 대표는 코로나19가 종식되는 날까지 한 한 명의 근로자도 해고하지 않기로 하는 ‘해고 없는 도시’ 만들기에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전주시도 여기에 참여하는 사업장에는 세제 혜택 등 재정지원을 하기로 화답했습니다.

이번 호 표지 이야기로 선정한 주제는 ‘전주의 힘’입니다. 인구 65만5000여 명의 그리 크지 않은 도시지만, 이곳에서 시작한 상생의 울림은 큰 반향을 얻고 있습니다. 사회적 연대를 넘어 ‘함께 살기’와 ‘지속 가능한 사회’로 가기 위한 담대한 실험들이 전주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획기적인 정책이 시행된다고 모든 문제가 단박에 해결되는 걸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좋은 정책을 선보이고 법률적으로 뒷받침하더라도 시민과 풀뿌리 공동체의 적극적 참여와 지지가 없다면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전주의 힘은 바로 시민의 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참신한 실험들은 ‘코로나19 이후’ 한국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줄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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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역사와 문화의 도시’, ‘맛의 도시’ 말고도 전주 앞에 붙을 수식어가 하나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바로 ‘상생의 도시’입니다.

<조홍민 에디터 겸 편집장 dury12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