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벌새> 친구의 최대치는 150명 정도 ‘던바의 법칙’

“아는 사람이 몇 명이에요?” 영지 선생님의 물음에 은희가 답한다. “한 50명?”

친구 지숙이 끼어든다. “바보, 50명은 더 되지. 우리 초등학교 6년에 중학교 1년만 더해도 거의 400명은 될걸?”

은희가 주억거리다 답을 바꾼다. “어 그럼 한 400명요?”

영지 선생님이 미소 짓는다. “그럼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영화 <벌새>는 14살 은희의 성장영화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 청소년이 느끼는 답답함과 삶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김보라 감독

영화 <벌새>는 은희의 성장영화다. 배경은 1994년. 북한 김일성 주석이 죽고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지독히 더웠던 그해다. 메가폰을 잡은 김보라 감독은 “<벌새>는 나의 기억·트라우마·상처 등 기억의 조각을 엮어 만든 작품”이라고 말했다.

여중생 은희는 상가 떡집 막내딸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 산다.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부모님이 택한 곳이다. 가부장적인 아빠는 공부를 잘하는 오빠에 대한 기대가 크다. 대원외고를 거쳐 서울대를 가는 것이 목표다. 둘째 언니와 자신은 별 존재감이 없다. 은희의 탈출구는 그림이지만 공부만 강요하는 학교에서는 별로 쓸모가 없다. 남자친구를 사귀고, 문구를 훔치며 일탈을 꿈꾸지만 거기까지다.

무기력한 일상에서 은희의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유일한 사람이 한문학원 선생님 영지다.

‘相識滿天下知心能幾人(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영지 선생님이 칠판에 <명심보감>의 ‘교우’편을 적는다. ‘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겠는가’라는 뜻이다.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등 마음만 먹으면 지구 저편에 있는 사람과도 친구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 세상이다. 그만큼 내 마음을 알 만한 진짜 친구의 숫자도 늘어났을까. 영국 옥스퍼드대의 로빈 던바 진화생물학 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친구의 수는 150명 정도”라고 말한다. 인간 뇌가 관리할 수 있는 관계의 수와 질이 딱 그 정도라는 것이다. 이를 ‘던바의 수’ 혹은 ‘던바의 법칙’이라고 한다. 던바는 저서 <한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친구가 필요할까(How many friends does one person need?)>를 통해 의식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 신피질과 영장류 집단의 상관관계를 연구해보면 한 개체가 동시에 계속 관리할 수 있는 관계의 수와 질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인구조사자료를 구할 수 있는 20개 부족사회를 조사해보니 씨족 집단 규모는 평균 153명이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연말에 카드를 우편으로 보내는 수는 평균적으로 68곳으로 그 구성원을 합하면 150명 정도였다고 한다. 로마시대 로마군의 보병중대는 약 130명이었고, 지금도 중대단위는 130~150명이다. 이 책은 <발칙한 진화론>으로 국내 번역·소개됐다.

150명은 술집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부담없이 동석할 수 있는 수준의 친구들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치다. 자신에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적극적으로 공감해줄 수 있는 친구들은 15명 정도로 줄어든다고 던바는 밝혔다. 사회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공감집단’이다. 던바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진짜 친한 관계”는 3~5명이라고 밝혔다. 상을 당했을 때 밤을 새워가면서 자리를 지켜줄 수 있는 친구의 숫자다.

영화 속 경제

은희는 “자신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는 영지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다. 이 질문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은 비단 은희뿐일까.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