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프리즘]다른 남자의 정자로 낳은 자녀도 친자?

얼마 전 언론에 ‘혼인 중 출산 자녀, 유전자 달라도 법적으로 친자식’이라는 기사가 보도됐다. 많은 남편들이 ‘아내가 바람 피워 낳은 자식도 키워야 되는 것이냐’는 공포에 빠졌고, 여성의 권익을 과잉 보호하는 정권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2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과 대법관들이 자리에 앉아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연합뉴스

해당 판결의 사실관계를 살펴보자. 남편이 무정자증이어서 아이를 가질 수 없자, 다른 남자의 정자로 인공수정을 해 첫째를 낳았다. 몇 년 뒤 아내는 외도를 해 둘째를 낳았다. 남편과 아내는 16년간 함께 아이를 키우다 이혼하게 됐다. 남편은 자녀들이 친자가 아니니 양육비 지급을 할 수 없다면서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했다. 법원은 남편의 패소를 판결했다. 남편 동의 하에 제3자의 정자로 수정된 자녀는 남편의 친자로 봐야 하고, 외도로 태어난 둘째 역시 남편이 이미 검사 등을 통해 친자가 아님을 확인하고도 2년 넘게 이의제기 없이 양육했다면 남편의 친자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민법은 1958년 제정될 때부터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남편의 친자가 아니라는 증거가 없다면, 남편의 친자로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남편이 친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알게 된 시점부터 2년 이내에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야 하고, 그 후에는 친생자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친자추정 규정(민법 제844조)은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한 과학적 친자관계의 확인이 불가능하던 시대의 산물이다. 동시에 자녀의 법적 지위의 안정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남편과 아내가 동의 하에 혼외자를 키우는 상황에서 갑자기 생부가 등장해 자신의 자녀임을 주장하면 가정은 파탄나고, 재판 기간 동안 자녀의 법적 지위가 모호해질 것이다. 남편이 만약 친자가 아님을 알면서도 오래 양육했다가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 친자가 아니라고 선언할 수 있다면, 자칫 자녀는 자신을 양육해줄 아버지가 아무도 없는 상태에 빠질 우려도 있다.

다만 이 규정은 친자 추정을 번복할 권한을 남편에게만 줘 아내나 생부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유전자 검사 등이 발전한 현대에 굳이 이런 추정규정이 필요하냐는 비판도 있다. 실제 프랑스 등에서는 요건을 갖추면 친자추정을 아내가 번복해 생부의 친자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법원은 여전히 자녀의 법적 지위의 안정성이 ‘친자가 아님을 알고도 2년 이상 양육한 남편의 친자부인권’이나 ‘외도로 자녀를 가진 아내, 또는 생부의 권리’보다 앞선다고 본 것이다.

법률 프리즘

세간에서 남편과 남자에게 부당한 것처럼 소비된 이 판결은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적 성 관념에 근거한 판결에 가깝다. 자녀가 친자인지 판단하고 결단할 권리를 남편에게만 부여하고, 정의 평온과 자녀 지위의 안정성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판결을 해석하는 일반의 시각과 판결의 근간이 되는 법철학적 배경이 정반대인 경우가 있고, 때로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판결 아래 쌓인 역사적·철학적 토대를 고찰하고 해석하는 언론과 사회의 모습을 그려본다.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소속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