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사람]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땜장이 의사’ 김용민 “의사라는 직업이 왜 필요할까요”

“빌딩이라도 있나 보군.” 지난해 정형외과 전문의 김용민씨(60)가 22년간 몸담은 충북대 의대를 떠날 때였다. 다들 교수 정년보다 6년 빠른 퇴직을 의아해했다. 그는 지금 ‘구호활동가’로 산다. 퇴직 무렵 국제의료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에 합류했다. 난민캠프가 있는 에티오피아 감벨라에 한 차례, 폭음이 끊이지 않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두 차례 다녀왔다. 갑자기 결원이 생겨 가게 된 소록도에서의 공중보건의 생활, 출발 나흘 전 긴급 합류한 2010년 아이티 대지진 구호활동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 김 활동가는 스스로를 ‘땜장이 의사’라 부른다.

“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삶이 유한하고, 내게 주어진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왔어요.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이들을 보면서 의료인이라면 남을 돕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티 지진 때는 나 정도 의사도 상당히 쓸모있다는 걸 경험했죠. 그렇게 구호활동가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3월 말 가자지구에서 반이스라엘 시위가 시작됐다. 이스라엘군이 최루탄과 실탄으로 대응하면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치료를 위해선 정형외과 전문의가 절실했다. 김 활동가는 그해 4월 처음 가자지구를 찾았다. 충돌이 계속된 탓에 지난 2월 또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작년에 봤던 총상 환자들이 잘 지낼까 궁금하더라고요. 일부는 완치돼서 병원을 찾지 않았지만, 다시 만난 이들도 있었어요. 매주 새로운 환자들이 이어졌습니다. 이곳의 고통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것인가, 안타까웠죠.”

3개월간 머무른 감벨라에서는 ‘포기’할 뻔한 적도 있다. 생활환경은 견딜 만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야전침대에서 잠을 청했던 아이티의 경험 때문이다. 문제는 열악한 의료환경이었다. 정형외과 수술장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장비조차 없었다. 소통도, 홀로 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좌절 끝에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마음먹었다. 병원을 나선 순간, 다친 팔을 부여잡고 방황하는 환자를 만났다.

“도움을 줄 사람이 저밖에 없더라고요. 치료를 끝내고 나니 환자를 어떻게든 돌보라는 뜻에서 내가 여기 파견된 거지, 미션(구호활동)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 뒤로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구호활동을 하지 않을 땐 백수나 다름없다. 그 덕에 에세이 <땜장이 의사의 국경없는 도전>을 썼다. 카메라에 담아온 구호활동 기록들로 사진전도 열었다. 지금은 다음 활동을 기다리며 의대생들을 위한 강의를 하고 있다. 이론·실기수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생생한 경험과 함께 ‘의사라는 직업이 왜 필요할까 생각해보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주목! 이 사람

“모든 직업이 먹고살고 성취하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요소도 잊지 말자는 거죠.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어디서든 땜장이 역할을 할 겁니다. 제가 하나의 선례를 제시하는 게 의미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려 합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