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전성시대]소문의 여자-평범한 ‘소악당’ 사람들의 하찮은 욕망

기묘한 것은 갖가지 인간 군상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동안 미유키에 대한 소문이 결코 소문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허황된 풍문으로 취급할 법한 미유키의 배경은 에피소드가 바뀌면서 조금씩 새로운 실체에 다가간다.

<인 더 풀> <공중그네> <면장 선거>로 이어지는 ‘닥터 이라부’ 시리즈는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해학성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그의 이름을 알린 첨병 역할을 했다. 또 임순례 감독이 영화로도 제작한 <남쪽으로 튀어!>는 작가 특유의 냉소와 풍자가 빛나는 또 다른 대표작으로 기억된다.

오쿠다 히데오 작가의 <소문의 여자> 한국어판 표지 / 오후세시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의 진면목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중층 조망하는 작품에서 찾는 게 옳다. 주인공을 특정하기보다는 여러 명의 인간들을 나열하고, 그들 각자의 시선을 통해 평범한 소시민들의 너절한 욕망을 하나둘 들여다보는 일련의 작풍은 그의 가장 대표적인 서사 기법이니까. <최악> <방해자> <라라피포> <한밤중에 행진> <꿈의 도시> 등은 모두 주변의 흔한 생활인 혹은 밑바닥 인생들의 범죄와 그에 따른 몰락을 군상극(群像劇)으로 구현해 얄팍한 인간들의 치졸한 행태를 속속들이 파헤치는 작품이다. 줄곧 각자의 방식대로 움직이던 사람들이 마침내 한곳으로 귀결되며 만들어낸 파국이 늘 기억될 만한 한 수로 작용했던 것 역시 ‘군상 소설’이야말로 오쿠다 히데오의 인장이자 정수임을 방증한다.

<소문의 여자>는 이런 그의 주특기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일본 어느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 열 개의 에피소드는 주인공도 시점도 모두 다르며 각각의 이야기는 느슨하게 연결되어 점진적인 시간의 흐름만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열 가지 이야기를 한데 꿰는 인물은 이토이 미유키로, 뛰어난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육감적인 몸매로 남자를 홀리는 “페로몬이 줄줄 새는 여자”라는 게 주변 사람들의 일관된 평가다. 학생 때는 눈에 띄지 않는 수수하고 얌전한 아이였으나 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외모며 성격까지 딴사람이 된 탓에 더더욱 이 고장 사람들은 그를 안줏거리 삼아 수군거리기 일쑤다.

중고차 판매점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미유키는 이윽고 마작장과 요리교실 등에서도 나타나 눈에 띄는 외모와 노회한 처세술로 계속해서 사람들의 소문을 부풀린다. 그럼에도 정작 각 에피소드의 초점은 미유키보다는 온통 주변의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맞춰져 있다. 이들 모두는 때때로 그릇된 욕망에 휘둘리기도 하는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 중고차 판매점의 실수를 빌미 삼아 뭐라도 빼먹으려 혈안이 된 사람,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으려 안달복달하는 자식들, 오랜 유착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고심 끝에 누군가를 배신하기로 맘먹는 치 등 다소 맥빠지는 악한들 일색인 것. 가끔은 이기심 때문에 부정을 저지르고 탐욕과 색욕에 눈이 멀어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모두 잘 봐줘봤자 고작 ‘소악당’에 불과하다. <소문의 여자>는 그런 소악당들의 이야기를 빼곡히 나열함으로써 인간의 하찮은 욕망과 추악한 면면을 소도시 구석구석에 낱낱이 전시한다.

장르물 전성시대

기묘한 것은 갖가지 인간 군상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동안 미유키에 대한 소문이 결코 소문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허황된 풍문으로 취급할 법한 미유키의 배경은 에피소드가 바뀌면서 조금씩 새로운 실체에 다가서고, 더불어 미유키의 위치마저 의외의 국면을 향하면서 은밀한 소문은 곧 불온한 진실로 차츰 자리를 옮긴다. 온갖 약은 척은 다 하며 살아가는 소악당들 사이에서 마침내 악당 중의 악당, 아니 진짜 악마가 실체를 드러내는 마지막까지, 해학과 풍자의 달인이자 군상극의 장인인 오쿠다의 메스는 온갖 인간의 검은 속내를 역시나 절묘하게 해부한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