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프리뷰]실화 모티브로 한 <너를 위한 글자>

무대는 늘 환상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허황된 이야기만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 사실이나 실제 있었던 일을 근간으로 살을 붙여 더욱 그럴싸한 이야기로 관객들을 웃고 울리는 경우가 많다.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나치와 히틀러를 피해 실제 미국으로 망명한 가족 합창단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고, <엘리자벳>이나 <황태자 루돌프>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실제 사연을 극적으로 재구성한 경우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뮤지컬 <쓰릴 미>는 실제 떠들썩했던 사건인 리처드 로브와 네이슨 레오폴드의 1924년 아동 유괴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래서 원래 뮤지컬의 제목도 <쓰릴 미: 레오폴드와 로브의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실존 인물과 사건을 다룬 까닭에 실감나는 현실성이나 현장성을 담아낸다는 것은 이 부류의 작품이 지닌 섬뜩하면서도 소름 돋는 재미다. 대부분의 경우는 원래의 사실뿐 아니라 새롭게 극적 상상력을 더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이유로 더욱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는 매력이 크게 작용하게 마련이다.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도 그렇다. 맹인들의 점자 타자기를 발명한 19세기 초 이탈리아의 발명가 페레그리노 투리의 실화를 모티브로 창작을 했다. 투리는 앞을 보지 못했던 친구인 캐롤리나 만토니 다 피비차노 백작부인을 위해 맹인용 타자기와 종이에 잉크를 묻게 만드는 탄소 종이를 발명한 인물이다. 그러나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사실 타자기를 발명한 사람은 투리가 아닌 아고스티노 판토니였으며 투리는 단지 탄소 종이만을 발명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오늘날 이 타자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나 실물은 사라졌으며 단지 백작부인이 쓴 편지만이 남아있다. 그곳에는 ‘친애하는 나의 친구에게’라는 문구만 있고, 내용도 타자기를 쓰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는 사연만 담겨 있을 뿐이다. 투리와 캐롤리나 백작부인이 연인 관계였다는 설정은 2010년 이 기록을 보고 상상력을 더해 쓰인 캐리 월러스의 소설 <앞 못 보는 백작부인의 새 기계>였는데, 뮤지컬은 이 소설의 흥미로운 설정을 차용했다고 볼 수 있다.

작품에는 강필석과 정동화, 정욱진, 에녹, 정상윤, 이정화 등 요즘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대학로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하고 있다. 세 명만 무대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소극장 뮤지컬의 외형을 지니고 있지만, 인기 배우들의 출연과 연기는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관극 포인트 중 하나일 정도로 마니아 관객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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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삼각관계는 넌지시 캐롤리나의 첫사랑이 누군지에 대한 궁금증을 관객들에게 심어준다. 스포일러가 될까 모두 이야기할 수 없지만, 실화를 모티브로 한 것을 알려주는 멘트가 나온 뒤 캐롤리나의 첫사랑이 누구인지 그녀가 남긴 소설 속 작가의 글을 통해 전달된다. 기분 좋은 미소를 주는 이 뮤지컬 최고의 반전을 경험할 수 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