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베트남 전쟁의 목적과 원인, 그리고 교훈

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
▲<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 히가시 다이사쿠 지음·서각수 옮김 역사넷·1만3000원

‘모든 창조는 만남의 결과물’이라고 갈파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주장이 한반도에서 어떻게 입증될 것인지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역사적 남북정상회담 성과가 이 글이 활자화되는 시점에서는 나오겠지만 아무튼 대화는 문제를 푸는 실마리임이 분명하다.

조금만 속내를 털어놨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최악의 전쟁 가운데 하나가 베트남 전쟁이다. 그래서 전쟁을 치른 불구대천의 당사자들이 수십 년 만인 1997년 한자리에 모여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왜 우리는 전쟁을 막거나 빨리 못 끝내고 수백만 명을 희생시켰을까. 일본 NHK 방송의 제작자인 저자는 ‘기회를 놓쳤는가?’라는 주제로 성사된 양측의 역사적 대좌를 취재하고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당대 최고(best and brightest)의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나왔고, 응우엔 고탁 외무장관(전쟁 당시 북베트남 외무차관)이 파트너로 마주했다. 회고록에서 때늦은 후회와 반성을 표명한 맥나마라는 군사력 이외의 해결책을 경시한 역사적 과오를 반복하지 말자는 교훈을 미국이나 후대에 전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베트남은 왜 만남을 수용했을까? 맥나마라 회고록에 사죄의 진정성이 담겨 있고 또한 미국과의 경제협력이 필요해서다.

대화는 네 가지 영역에 집중됐다. 전쟁의 목적이 무엇이고, 전쟁을 피할 구상은 왜 사라졌고, 미국이 전면전에 돌입한 까닭, 그리고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판가름한 숙적과 나란히 말을 섞는다는 의미는 감상을 넘어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후에도 수차례 만난 양측은 ‘끝없는 논쟁’이라는 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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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간의 대화 내내 상호 책임을 주장하는 미국의 양비론에 맞서 독재정권을 군사적으로 지원한 원인 제공자가 누구냐는 베트남의 추궁이 매섭다. 무엇보다 강자의 ‘오만과 편견’이 오해를 키웠다. 실제 전쟁 책임자인 맥나마라조차 8년간의 국방장관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베트남 땅을 밟지 않았다. 베트남인의 마음과 가치관을 이해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이, 오로지 미국의 잣대로만 정책을 구사한 것이다. 반면 베트남 군인의 배낭에는 헤밍웨이나 포크너와 같은 미국 소설가들의 책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하노이 대화’를 마치고 미국 대표단을 만난 ‘붉은 나폴레옹’ 보응우옌잡 장군은 이미 전쟁은 끝났고 미래를 응시하자고 강조한다. 우리에게도 베트남은 목에 걸린 가시다. 전직 대법관 김영란과 시민들은 모의법정에서 한국 정부가 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 가지 유의할 역사적 교훈이 있다. 1968년 당시 대선을 앞둔 미국은 북베트남 폭격을 중단하고 협상을 재개하지만 이에 놀란 닉슨 후보가 남베트남에 비밀특사를 보내 방해공작에 나서면서 회담은 결렬된다. 닉슨은 워터게이트보다 더 큰 해악과 반역행위를 저지른 셈이다. 사욕과 당리를 위해 국익도 내팽개치는 추잡한 정치꾼들을 추적하고 심판하자는 여론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가동되어야 한다.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