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6골 손흥민, 월드컵도 부탁해

손흥민은 올해 EPL에서 14골, FA컵에서 6골, 챔피언스리그에서 3골 등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23골을 터뜨렸다. 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국가대표 대항전(A매치)에서 3골을 뽑아냈다.

한국 축구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 이름을 알린 것에는 차범근(65)이라는 ‘특급 골잡이’가 있었다. 다소 투박해도 과감하게 골문을 꿰뚫는 골 결정력은 분명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유럽 생활 11년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만 98골을 넣었던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은 언제나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3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차 감독의 이름을 넘을 것으로 기대되는 선수가 등장했다. 손흥민(26·토트넘)이 그 주인공이다.

손흥민이 지난 11월 경기도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과 콜롬비아의 경기에서 선취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12월 4골 3어시스트로 화려한 마무리

차 감독의 흔적을 따르는 듯 분데스리가를 호령하던 손흥민은 이제 축구선수들의 꿈의 무대라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최고의 별이 됐다. EPL 2년차인 2016~2017 시즌 21골을 터뜨려 차 감독이 갖고 있던 한국인 유럽파 한 시즌 최다골 기록(19골)을 넘어선 것이다. 차 감독이 “손흥민은 내 기록을 깰 후계자”라고 공언했던 모습 그대로다. 그리고 2017년 그는 또 한 뼘 성장했다. 어느 위치, 어떤 상황에서든 골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하며 1년간 26골을 쏟아낸 것이다. 손흥민은 올해 EPL에서 14골,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에서 6골,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3골 등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23골을 터뜨렸다. 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국가대표 대항전(A매치)에서 3골을 뽑아냈다.

출발과 끝이 모두 좋았다. 2017년 1월에만 4골을 넣으며 기분 좋게 출발한 손흥민은 꾸준히 득점포를 가동하다 지난 6월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카타르전에서 오른팔 골절상을 입으며 주춤했다. 그러나 지난 9월 도르트문트(독일)를 상대로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2017~2018 시즌 첫 골을 신고한 뒤 득점 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12월은 4골·3어시스트로 역대 월간 최다인 7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2017년을 마무리했다. 영국 방송 ‘BBC’가 손흥민을 일컬어 “토트넘이 발굴한 최고의 역작”이라고 호평했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손흥민은 EPL에서 가장 저평가된 선수였다”고 찬사를 보낼 정도다. 손흥민의 활약상은 그에게 쏟아진 상에도 잘 드러난다. 2017년 4월 통산 두 번째 EPL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11월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시상식에서 2015년에 이어 두 번째로 ‘아시아 국제 선수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대한축구협회의 ‘올해의 선수상’을 세 번째로 받았다. 손흥민은 “점수를 매긴다면 2017년은 100점 만점에 50점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 50점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겸손한 태도를 보여 더욱 찬사를 받았다.

손흥민이 언급한 나머지 50점은 아직 자신의 약점을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축구전문가들은 최근까지 그를 ‘양날의 칼’이라 불렀다. 한쪽 날은 날카롭기 짝이 없다. 발 빠른 골잡이로 강력한 슈팅으로 골 폭죽을 터뜨린다. 독일을 넘어 영국에서도 그 잠재력은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손흥민은 득점력에서 EPL 최고의 특급 선수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2017년 최고의 윙포워드로 꼽을 수 있는 모하메드 살라(31골·리버풀), 로렌조 인시네(25골·나폴리), 에당 아자르(16골·첼시)가 한 해 동안 넣은 골이 그가 기록한 23골과 큰 차이가 없다. 손흥민은 페널티박스 정면을 선호하는 이 선수들과 비교해 페널티박스 좌·우 45도에서 때리는 슈팅이 탁월한 것도 강점이다. 이른바 ‘손흥민 존’으로 불리는 이 곳에서 반대편 골문 구석을 향해 강하게 감아차 골을 터뜨린다. 손흥민이 어린 시절부터 갈고 닦아 만들어낸 작품이다. 손흥민은 8살부터 중2 때까지 강원도 춘천에서 프로선수 출신 아버지 손웅정씨의 개인지도를 받으면서 슈팅과 패스 등 기본기를 연마했다. 어린 시절에는 하루에 1000개가 넘는 슈팅 훈련을 했고, 성인 무대에 진출한 2010년부터는 여름 휴식기마다 페널티박스 좌·우측 부근에서 각각 250개씩, 총 500개의 슈팅을 때렸다. 손웅정씨는 “이 위치에선 경기당 한두 번씩은 꼭 기회가 오게 마련”이라며 “어릴 때부터 양발을 모두 쓰게 했기 때문에 양쪽 측면에서 모두 슈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손흥민도 “페널티박스 좌·우측면은 어릴 때 아버지와 많이 훈련했던 곳이라 언제나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토트넘이 2015년 그에게 아시아 선수로는 역대 최고 이적료인 3000만 유로(약 383억원)를 기꺼이 지불하면서 데려간 이유다.

그런데 반대편 날도 치명적이었다. 기본기 습득에 매진한 대가로 경기 경험이 많지 않아 전방에서 안정적으로 볼을 다루는 재주가 부족했다. 적극적인 수비를 보여주거나 동료를 활용하는 연계도 능숙하지 못했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손흥민은 프로 무대에서 경험을 쌓으며 이 혹평을 환호성으로 바꿔가고 있다. 토트넘과 대표팀에서 모두 주포지션인 왼쪽 날개에서 최전방 골잡이까지 활동반경을 넓혔고, 볼 없는 상황에서의 움직임이 좋아지면서 동료들과의 매끄러운 연계까지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손흥민이 2017년 10개의 어시스트를 올려 데뷔 후 연간 최다 도움을 기록한 것이 그 증거다.

약점이던 패스와 볼 처리도 더 좋아져

손흥민의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한 것은 세부 지표에서도 잘 드러난다. EPL 데뷔 첫해 패스 성공률 79.6%에 그쳤던 손흥민은 지난 시즌 81.2%, 이번 시즌에는 86.2%로 수직 상승하고 있다. 볼 처리 능력도 점차 능숙해지고 있다. 2015~2016시즌 한 경기 평균 4.3개의 볼을 뺏겼던 손흥민은 지난 시즌 2.7개로 줄더니, 이번 시즌 2개로 확 줄었다. 더 이상 손흥민을 양날의 칼로 부를 수 없을 수준이다.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48)은 손흥민이 2018년 어떤 활약을 펼칠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는 2018년 신년 연휴를 다 포기한 채 현장에서 손흥민의 활약을 직접 눈으로 점검한다. 2018년이 축구를 넘어 전세계 잔치인 러시아월드컵이 열리는 해이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는 손흥민이 유럽 무대에서 보여주고 있는 활약을 월드컵에서도 이어가야 2010년 남아공월드컵 이후 첫 16강 진출을 노릴 수 있다. 한국은 러시아월드컵 본선에서 유럽의 독일과 스웨덴, 북중미의 멕시코 등과 F조에 묶였다. ‘‘전차 군단’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독일은 FIFA 랭킹 1위이자 2014년 브라질월드컵 우승팀이고, ‘북중미의 맹주’ 멕시코(16위)는 월드컵 본선에서 6회 연속 16강에 진출한 강자다. ‘바이킹 군단’ 스웨덴(18위)도 유럽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이탈리아를 누르고 본선에 오르는 저력을 발휘했다. 세 나라 모두 한국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강호들이다.

손흥민도 러시아월드컵을 잔뜩 벼르고 있다. 손흥민은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0경기에서는 단 1골에 그쳤지만 2017년 11월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에선 2골을 기록해 국제무대에서 약하다는 이미지를 지웠다. 그는 4년 전인 브라질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탈락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을 반복하지 않겠다며 이를 악물고 있다. 손흥민은 “공은 둥글다. 우리가 부족한 부분을 얼마나 잘 준비하느냐에 따라 2014년 브라질의 눈물이 웃음으로 바뀔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우리 선수들과 대한민국의 모든 축구인과 축구팬들이 하나가 되어서 후회하지 않는 월드컵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황민국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