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보통사람들의 우연한 범죄들

희망장
미야베 미유키 저·김소연 역 북스피어·1만5800원

<희망장>은 <누군가> <이름 없는 독> <반지와 십자가의 초상>에 이어 탐정이 된 스기무라 사부로가 나오는 네 번째 책이다. 이전 작들에서 스기무라는 회사원이었다. 재벌가의 딸과 결혼하여 권력을 쥘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너무나 안온하게 살아가는 남자. 미야베 미유키는 미스터리 세계에서 희귀한 존재인 ‘평범하고 이렇다 할 장점도 없지만 일상생활은 안정되어 있어 안락하고 행복한 사람’을 탐정으로 내세우고 싶었다고 한다. 다만 그에게는 사건을 끌어들이는 운명이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개입하다 보면 도저히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오지랖이 넓어서가 아니라 속이 후련해지지 않아 파고들어가다가, 진실을 만난다.

운명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우리 일상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 평범하고 행복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택했지만, 마침내 그는 추락한다. 그가 만나는 일상들은, 또한 그가 존재하는 일상도 결코 안정되거나 튼튼하지 않았다. <희망장>의 책 뒤표지에 쓰인 말처럼 ‘사건은 작지만 고뇌는 깊은’ 것이다.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교통사고나 불륜, 가족 간의 다툼 같은 작은 사건들이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고통과 번민은 작지 않다. 사소한 감정이나 어긋남이 일생을 좌우할 수 있다. 한 인간을 끝내 파멸시킬 수도 있다. <이름 없는 독>에서 도저히 근원을 알 수 없는 악을 만난 스기무라는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서 인간의 사소한 소망을 노리는 범죄집단을 접하게 된다.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만인의 행복은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안온함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자신의 책임은 아니지만, 그가 짊어져야 할 고통을 얻게 된다.

<희망장>은 전작에서 이혼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도쿄에 돌아와 탐정사무소를 차린 스기무라의 이야기다. 성역, 희망장, 모래 남자, 도플갱어 4개의 연작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독거노인의 행방을 찾거나 돌아가신 아버지가 범죄를 저질렀는지 확인하고 싶다거나, 3·11 대지진 때 행방불명된 남자를 찾아달라는 정도의 작은 사건들. 작은 사건들을 쫓아가면서 스기무라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평범하고 착한 사람부터 타인의 감정과 내면을 박살내는 사이코패스까지. 세상은 그 모든 이들이 어쨌거나 어울려 살고 있다. 악인을 만나지 않고 살아간다면 좋겠지만 세상도, 운명도 내 바람과 노력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북리뷰

‘희망장’은 과거의 사건에 얽힌 남자가 살던 공동주택의 이름이다. 그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하지만 여자를 죽이고, 감옥에 갔다.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있다. 평범하게 살던 이가 어느 순간 뭣에 씐 것처럼 사람을 죽이거나 악행을 저지르는 것. <희망장>은 보통의 사람들이 연루되는 범죄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심하고 나약한 이들이 우연히 저지르는 범죄들. 그러고도 그들은 자신의 꿈만을 생각한다. 내일의 즐거움과 행복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려 한다. 평범한 이들이 하나의 잘못을 저지르고 슬쩍 넘어가버리면 또다시 그런 짓을 한다. 그래도 스기무라는 희망을 찾으려 한다.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래서 <희망장>의 단편은 완벽하게 결말이 나지 않는다. 이야기도, 그들도 계속 나아가고 있으니까.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