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운명처럼 이끌려 보게 되는 진실

야행
모리미 도히미코 저·김해용 역·예담·1만3000원

밤열차를 타고 멀리 떠나본 적이 있다면 공감할 것이다. 밤의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깊은 산속을 끝없이 달릴 때면 이 어둠이 영원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야행>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새벽이 올 것 같지 않아요.’

10년 전, 교토의 밤 축제인 진화제에서 영어학원 동료인 하세가와가 사라졌다. 그들은 10년 후, 같은 축제에 다시 모인다. 약속장소에 가던 오하시는 하세가와를 닮은 여인을 보고 따라가다가 작은 화랑에 들어간다. 그리고 기시다 미츠오라는 작가의 연작 동판화 ‘야행’을 보게 된다. 숙소에서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오하시는 모두에게 ‘야행’이라는 동판화와 얽힌 사건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야행>은 그들이 기이하게 사로잡힌 ‘야행’을 하나씩 펼쳐 보이는 소설이다.

집을 나간 아내를 찾아 나선 나카이는 오노미치에서 그녀와 닮은 여자를 만나게 된다. 밤열차를 탄 후지무라는 처음 간 쓰가루에서 어린 시절의 친구가 살았던 집을 발견한다. 다나베는 기시다의 화실에서 만났던 남자를 덴류코의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맞닥뜨린다.
그들은 모두 ‘야행’이라는 그림을 보았고, 잃어버린 무엇인가가 있다. 그림에 이끌려, 혹은 그림 속의 여인을 찾아 어디론가 떠나간 그들은 모두 ‘밤의 세계’로 들어간다. ‘야행열차(夜行列車)의 야행이거나 아니면 백귀야행(百鬼夜行)의 야행일지도 모르죠.’

2003년 <태양의 탑>으로 데뷔한 모리미 도미히코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유쾌하게 거니는 작가다. 대표작은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야행>은 전작들과 비슷하면서도 질감이 다르다. 기시다 미츠오가 그렸던 48편의 연작 <야행>에 대비되는 <서광>의 느낌이랄까. 기존의 작품들이 벚꽃이 휘날리는 교토의 밤을 그린 유쾌한 춘몽이라면, <야행>은 기나긴 어둠을 달려 막 도착한 설국의 풍경처럼 느껴진다. 한없이 어둡기는 하지만 결코 냉정하지 않다. 우리에게 밤의 세계가 단지 암흑이 아니라 포근하고 부드러운 누군가의 품일 수도 있는 것처럼.

<야행>의 그들은 운명처럼 이끌린다. 그리고 다른 세계로 넘어가 외면하고 있던, 혹은 잊어버렸던 진실을 보게 된다. 그러나 무엇이 진실인지는 분명하게 알 수 없다. 다만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의 진실을 위해 살고 있을 뿐이다.

‘진실의 세계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세계라는 것은 인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무한히 확대되어가는 마경의 총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광대한 마경의 밤에 둘러싸여 있다.’ 다나베가 말하는 마경은 곧 예술이고, 예술가가 포착하려는 진실 역시 또 하나의 마경이다. 언제나 낮의 화사한 풍경만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보여주는 광대한 밤의 세계.

북리뷰

<야행>은 끝없이 속삭인다. ‘세계는 언제나 밤이야’라고.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각자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것이 아름답고 행복하다면 그것 또한 좋다. 뒤편에 뚫려 있는 어둠을 직면하더라도 좋다. 그 어둠은 결국 스스로 외면했던 또 하나의 진실일 뿐이니까.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