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기억이 사라지면 무엇이 남을까

기억술사
오리가미 교야 저·서혜영, 민지희, 유가영 역 아르테·4만1000원(전3권)

누구에게나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 있다. 주로 실수나 잘못을 하여 창피한 기억이다. 하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소중한 기억임에도 잊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연인은 너무 사랑했기에 이별의 고통을 견딜 수 없어 기억을 지워버린다. 만약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지우고 싶을까. 아니 과연 지워버리고 싶을까?

료이치는 짝사랑하는 대학 선배 교코의 기억이 지워진 것을 알게 된다. 트라우마 때문에 밤길을 전혀 걷지 못하는 교코를 위해 함께 집에 가고, 충격요법도 써 보며 그녀와 가까워졌다. 그런데 어느 날, 교코는 아예 료이치를 기억조차 못한다. 료이치는 도시전설로 전해지는 기억술사가 기억을 지운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이웃에 사는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인 마키도 갑작스럽게 기억을 잃었고 기억술사의 짓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기억술사는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료이치는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기억술사의 정보를 모으고, 그와 연관된 사람들을 찾아간다.

22회 호러소설 대상 독자상을 받은 <기억술사>의 표지는 쓸쓸한 느낌의 라이트노벨 같다. 10대의 취향과 정서를 반영한 호러 소설인가? 맞다. 하지만 무섭다기보다 측은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는 것은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인간은 복잡한 존재다. 너무나 좋았던 기억이 현재는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소년과 소녀가 있다. 성년이 되어갈 무렵 친구가 아니라 이성으로 사랑한다고 느낀다. 고백을 하면 지금까지 좋았던 관계마저 깨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어색한 관계보다는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그렇게 믿고 누군가는 기억술사를 찾는다. 하지만 지워진 것은 단지 기억만이 아니다. 기억에 연루된 모든 이들도 함께 지워진다.

<기억술사>는 료이치가 기억술사를 찾아가는 미스터리 구성으로 흘러간다. 그러다 자신도 기억을 잃은 것이 있음을 알게 된다. 왜 나의 기억이 지워진 것일까. 기억술사는 지워달라는 의뢰를 받은 것만이 아니라 자의로 누군가의 기억을 지우기도 하는 것일까? 겨우 찾아낸 기억술사는 전혀 의외의 인물이다. 동시에 왜 료이치가 그렇게 기억술사를 찾아 헤맸는지 납득이 간다. 기억은 사라져도 무엇인가 남는 것일까? <이터널 선샤인>에서 기억이 지워진 남녀는 다시 만난다. 기억은 사라졌지만 무엇인가가 분명 있다. 어쩌면 기억은 두뇌가 아니라 마음에서도 작용하는 것일지도.

<기억술사>를 쓴 오리가미 교야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소설을 쓰고 있다. 근래 일본에서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소설가로 데뷔하거나 겸업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작가와 독자의 경계가 희미해진 게타이소설(한국으로는 웹소설)과 라이트노벨의 특징이기도 하다.

북리뷰

구체적인 사회 경험을 가진 다양한 작가들이 써내는, 다소 가벼운 느낌도 있지만 개성적이고 흥미로운 감각의 소설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한국도 의사와 판사 등이 소설을 쓰는 경우가 있고, 웹소설에는 다양한 경험의 작가들이 뛰어들고 있다. 더욱 다양한, 새로운 소설의 등장을 기대하는 이유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