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시한부 소녀와 은둔 소년의 사랑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스미노 요루 저·양윤옥 역·소미미디어·1만3800원

처음 제목을 듣고는 좀비 소설이라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가 되어가며, 네 뇌를 먹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 좀비영화에 종종 나온다. 하지만 아니다. 지극히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이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소녀와 폐쇄적인 일상을 보내던 소년의 짧고 간절한 사랑 이야기. 그런데 제목이 왜 저모양이냐고? 보면 알게 된다. 저 낯설고, 누군가는 끔찍하다고 생각할 제목에 너무나도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음을.

그는 병원에서 노트를 줍는다. ‘공병일기’라는 제목의 노트에는 불치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여고생 사쿠라의 기록이 쓰여 있다. 사쿠라는 노트를 주운 그에게 말한다. “비밀을 알고 있는 클래스메이트”인 “너는 분명 나한테 진실과 일상을 부여해줄 단 한 사람일 거야.” 사쿠라와 그는 함께 숯불구이를 먹고, 후쿠오카까지 여행을 가기도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쿠라의 부탁 혹은 명령으로 따라 간다. 친구들에게 병 이야기를 하면 모든 시간이 슬프고 우울해질 것이기에, 사쿠라는 비밀을 알고 있는 그에게만 마음을 조금씩 내비친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사쿠라가 말했을 때, 그것은 그저 농담일까. 사쿠라는 췌장이 아프다. 눈이 좋아지려면 생선의 눈을 먹는 것처럼 아픈 부위를 먹으면 좋아진다는 속설이 있다. 식인의 풍습 중에는 노인의 영혼과 지혜 등을 내 몸 안에 간직하기 위해 그를 먹는 경우도 있다. 어른이 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사쿠라는 매순간을 열심히 긍정적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보인다. 자신의 병과 죽음을 놓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도 농담으로 받으며 따라가지만 늘 무언가 걸린다.

당연히 독자는 알고 있다. 사쿠라가 감춘 거대한 두려움과 슬픔을. 그녀가 죽고, 어떤 추억을 남기는지 보고 싶을 뿐 결말은 이미 알고 있다. 소설은 사쿠라의 장례식으로 시작해서 과거로 돌아간다. 기적은 없고, 반전도 없을 것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전형적인 로맨스의 길을 따라가면서도 대단히 사려 깊은 언어로 사쿠라와 그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연인이 아니지만, 연인 이상이었던 두 사람의 1년. 그에게 남은 사쿠라의 유산에 대해서.

그는 혼자였다. 친구도 없고, 타인에 대해 믿음도 기대도 없이, 소설의 세계에만 파묻혔던 소년. 사쿠라는 모두에게 호감을 사고, 다정하고, 웃음을 주는 소녀였다. 우연히 병을 알게 되어, 곁에 있게 된 그에게 사쿠라는 말해준다. “우연이 아냐. 우리는 모두 스스로 선택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네가 여태껏 해온 선택과 내가 여태껏 해온 선택이 우리를 만나게 했어.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만난 거야.” 은둔형만 아니었을 뿐 외톨이로 “자기 완결을 관철해 온 나”는 사쿠라를 만나고, 그녀의 죽음을 겪으며 변화한다. 우연이 아니라 선택에 의해서.

북리뷰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전형적이지만 의외의 감흥을 준다. 한 소년이 한 소녀를 만나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톡톡 튀는 대사와 절실한 감정으로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쿠라를 만난 그는 말한다. “분명하게 선택했어. 너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을. 타인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이 말조차 너무나 전형적이지만, 뛰어난 소설은 익숙한 것들을 지극히 새롭게 변주하여 다른 풍경과 감동을 전해준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그런 매력적인 소설이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