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TV]‘아재’들의 예능 약진

‘아재’란 말 들어보셨나요? 경상도 지방을 중심으로 ‘아저씨’라는 말 대신에 많이 쓰이곤 합니다. 삼촌뻘 되는 사람들에게 두루 쓰는 표현이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을 보더라도 약간 낮잡는 느낌의 말로 쓰기도 합니다. 이 단어가 어느새 무럭무럭 TV 안에서 존재감을 키워 드디어 2017년 예능 정서의 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이제는 아예 대놓고 ‘아재’라는 단어를 기획의도에 넣는 예능 프로그램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유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이러한 캐릭터의 출연자 하나 없이는 성공을 도모하기 쉽지 않은 상황도 됐죠.

먼저 tvN의 새 프로그램을 살펴봅시다. 지난달 31일 첫 방송된 <시간을 달리는 남자>(이하 시달남)는 ‘오빠가 되고 싶은 아재들의 분투기’를 다룹니다. 50세가 넘어 ‘반백살 형님’으로 불리는 배우 신현준을 중심으로 1990년대와 2000년대 각각 청춘의 ‘아이콘’ 역할을 한 가수 조성모와 배우 최민용이 예능에 처음 도전했습니다. 거기에 비교적 20대의 문화를 잘 안다고 자부하는 개그맨 정형돈과 가수 데프콘 그리고 나이로는 39세 막내지만 가장 ‘아재’의 느낌을 주는 화법을 구사하는 배우 송재희가 합류했습니다. 이들은 20대 초반 세대가 즐기는 문화를 제시받고 이 정체를 알아맞히는 일에 나섭니다. 가끔 이 나이 또래의 연예인들이 출연해 힌트를 주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는 의지는 있지만 자꾸만 어두워져가는 젊은 세대의 물정에 좌절하는 모습을 담는 게 중점이죠.

「아는 형님」 / JTBC

「시간을 달리는 남자」 / tvN

JTBC의 <아는 형님>에도 ‘아재’들이 무더기로 등장합니다. 여기 출연하는 방송인 강호동이나 가수 이상민, 방송인 서장훈 등은 ‘아재’의 기준이라 볼 수 있는 40대 중반의 나이를 훌쩍 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학교 설정을 갖고 있고 모두 같은 나이로 분해 극중 반말을 하는 사이지만 불쑥불쑥 나오는 옛날 감성은 숨길 수 없습니다. 이들이 젊은 층 출연자들이나 김희철 등 어린 멤버들에게 구박을 받는 게 프로그램의 주요 골자입니다. 이 외에도 MBC <무한도전>은 7주 휴식 이후 첫 방송으로 PC 게임 회원 가입을 어려워하는 40대 중후반의 유재석, 정준하, 박명수의 모습을 보여주며 ‘아재’들의 적응기가 험난하다는 사실을 보였고, JTBC의 <뭉쳐야 뜬다> 김용만, 안정환, 김성주, 정형돈, 그리고 SBS <미운 우리 새끼>의 김건모, 박수홍, 토니안 등의 모습도 이러한 성향의 ‘아재’로 포장돼 보이고 있습니다.

‘아재’ 세대로 구분되는 1970년대 중후반 이전 출생자들의 특징은 모두 1990년대 빛나는 20대를 보냈다는 점입니다. 당시는 거듭된 경제성장으로 생활수준이 크게 개선됐고, 문화적으로도 융성하던 시대였습니다. 한 광고에서는 이들의 성향을 집대성해 ‘규정할 수 없다’는 뜻의 ‘X세대’로 표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세월은 밀어닥쳐 신세대를 자처했던 이들이 구세대로 밀려나는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예전 즐기던 ‘가락’은 그대로라 함께 하고 싶은데 영 그 감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다 해도 ‘아재 개그’로 몰리고, 소통의 의지는 있지만 그 실현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 TV 속의 아재들은 이러한 이유로 ‘권위적인 구세대’를 일컫는 ‘꼰대’와는 또 다릅니다.

클릭TV

결국 ‘아재’들이 각광받고, TV에서 소비되는 이유는 그만큼 세대 간의 소통이 절실하다는 방증이기도 할 겁니다. 어느 세대든 다른 세대와 소통하길 원하는 이들이 있고 지금 당장은 이들이 예능에서 우스꽝스럽게 포장되고 있다는 사실은 다른 의미에서 보면 다소 비극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경헌 스포츠경향 엔터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