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농인 가정서 태어난 청인의 갈등

데프 보이스
마루야마 마사키 저·최은지 역 황금가지·1만3000원

세상을 살다 보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편인가에 서야 할 때가 있다. 중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야. 그들과 함께 하다니, 당신은 적이네.

아라이는 농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와 형은 모두 소리를 듣지 못한다. 듣고 말할 수 있는 아라이는 수화를 배웠고, 가족이 세상과 교류하는 통로가 되었다. 하지만 너무나 무거웠다. 길을 걷다 넘어져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지만 앞서가던 어머니는 듣지 못했다. 아라이가 함께 있으면 청인(들리는 사람)과의 대화는 늘 그에게 맡겨졌다. 10살 무렵부터 아라이는 생각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돼.’

경계에서 성장한 아라이는 공무원시험을 보고 경찰관이 된다. 형사는 아니고 사무직. 눈에 띄지 않게, 평온하게 살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농인 교육시설인 해마의 집 이사장이 살해당하고 농인 용의자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아라이가 수화 통역을 위해 차출된다. 부당한 신문 과정을 알게 되었지만 일개 사무직인 아라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용의자의 딸이 묻는다. ‘아저씨는 우리 편? 아니면 적?’

그로부터 17년이 흘렀고, 고지식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왔던 아라이는 직장에서 밀려났다. 수화 통역사가 된 아라이는 운명처럼 17년 전의 사건과 조우한다. 살해당했던 이사장의 아들이 다시 사체로 발견되었고 용의자로 같은 농인이 지목된다. 아라이는 다시 미묘한 위치에서 농인과 청인 사이에 서게 된다.

아라이는 어느 한 편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될 수가 없었다. 농인 가족의 일원인 동시에 들리는 청인이 왜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가. 농인들은 아라이가 들린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 들리는구나, 라는 시선으로 멀어져 갔다. 청인들은 수화를 하지만 듣고 말할 수 있는 아라이가 당연히 그들의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아라이는 어디에서도 편안하지 않았고, 결국은 경찰에서도 밀려났다. 당연한 부조리에 동참할 수 없었기에.

<데프 보이스>는 미스터리 소설로 읽을 수도 있고, 농인 가정에서 자라난 청인을 말하는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인 아라이의 성장을 그린 소설로도 볼 수 있다. 어느 쪽이건 좋다. <데프 보이스>에서 범죄의 이유와 수수께끼는 ‘농인’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들리지 않는다는 조건 때문에 사건의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다. 농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범죄가 흥미 요소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고뇌와 갈등을 통해서 농인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게 만든다. 농인을 단지 장애인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집단’으로 파악하고 바이링구얼, 바이컬처럴한 존재로 정의해야 하는 이유를 <데프 보이스>는 강력하게 발언한다.

북리뷰

<데프 보이스>를 읽고 나면 장애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이라는 말이 어떻게 소위 ‘정상인’들의 시선에서 나온 것인지도 알게 된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름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모든 것을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스스로 농인이고, 당신들을 청인이라고 부르는 <데프 보이스>는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한 편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를 이해하는 경계가 더 넓어지고 다양해져야 한다고.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