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노래]‘푸른 돛’-고단한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

너무 많은 바람이 불었나봐
엉겅퀴 꽃씨가 저리도 날리니
우린 너무 숨차게 살아왔어
친구, 다시 꿈을 꿔야 할까봐
모두 억척스럽게도 살아왔어
솜처럼 지친 모습들
하지만 저 파도는 저리 드높으니
아무래도 친구, 푸른 돛을 올려야 할까봐
(시인과 촌장 정규 2집 <푸른 돛> 타이틀 곡 ‘푸른 돛’, 1986, 서라벌 레코드)

나는 이 짧은 노래가 좋다. 모든 고단한 이들에게 같은 처지의 누군가가 보내는 장황하지 않은 위로처럼 여겨져서다. 잔잔하게 흥얼거리는 단아한 멜로디도 좋고, 무엇보다도 이 짧은 노래가 주는 긴 여운과 울림이 말할 수 없이 맘에 든다. 노래는 2분, 전주와 후주를 빼고 간주없이 이어지는 노래는 딱 1분이다. 누군가 스치듯 지나가면서 던져주고 간 한마디가 밤새도록 생각나 고맙고 가슴 따뜻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이 짧은 노래엔 ‘너무 많은 바람’ 속에 서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기대할 수 있는 반전이 담겨져 있다. 시인이자 촌장인 가수 하덕규는 쫓기듯 숨 가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내게 엉겅퀴 꽃씨들에 대한 얘기를 시작한다. 세상에는 무언가로부터 낙오되었거나 삶의 일부가 무너져 내린 많은 이들이 있고, 그건 그들 탓이 아니라 너무 많은 바람 탓이라고. 그러고는 수고했다고, 쉬고 싶으면 쉬어도 된다고 다독인다. 숨을 고르고 꿈도 다시 꿔야 하지 않겠냐고 안심시킨다. 이 대목에서 노래는 약간 종교적인 위안마저도 선사한다. 꽃을 떠난 꽃씨는 꽃의 죽음이자 탄생인 셈이고, 잠이면서 꿈일 터이다. 그리고 시인은 다시 아주 편안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나를 부추긴다. 모두들 솜처럼 지쳤고 파도도 높지만, 돛을 올리기엔 좋지 않겠냐고. 바람 거칠어진 날에 다시 푸른 돛을 올리자고.

이 노래가 세상에 나온 1986년은 내가 대학에 들어간 해였다. 본디 우유부단하고 숫기도 없었던 나는 격동의 1980년대 내내 학생운동권의 언저리를 투지나 신념이라곤 전혀 없이 기약 없는 미래에 초조해하면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1990년 겨울, 나는 봉천동 달동네의 무너져 내릴 듯 낡은 월세방에 기거하고 있었다. 이른 새벽이면 찬 공기를 뚫고 ‘노가다’ 일터로 향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잰걸음으로 달동네의 골목길이 부산해지곤 했다. 모두 억척스럽게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새벽 술자리로 밤을 지새고 그 골목길을 오르다가 문득 불투명한 미래 앞에 좌고우면하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날로 ‘노가다’를 나가던 자치방 주인아저씨에게 부탁해 일자리를 얻었다. 그 즈음 자취방 한 구석에 친구가 두고간 카세트테이프에서 이 노래를 알게 되었다. 그 후 내 인생에서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고 어려운 고비도 더러 있었지만, 그 시절과 이 노래를 떠올리면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는 데 제법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내 인생의 노래

‘푸른 돛’은 시인과 촌장 정규 2집 음반(1986, 서라벌 레코드)의 제목이자 첫 수록곡이다. 시인과 촌장 3집(1988, 서라벌 레코드) 음반 <숲>과 더불어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이 음반에는 시대와 삶이 모든 실존들에게 안겨주는 상처와 통증을 예리하게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따뜻하게 감싸안는, 기름기 없는 명곡들이 가득하다. 기쁨보다는 슬픔에 눈을 돌리는 하덕규의 섬세한 마음씀씀이와 거품 없는 사색이 잘 녹아 있다. ‘가시나무’ 같은 몇몇 곡들은 실연당한 젊은 영혼들에게도 최고의 공감과 위안을 준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