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통제할 수 없는 악의 존재 부각

리카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이선희 옮김 RHK·1만3800원

수많은 범죄들이 다 나쁘지만 그 중에 스토킹은 최악이라 할 만하다. 인간을 정신적으로 파괴하고, 살인과 폭력 등 다른 범죄와 중첩되어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더욱 악몽은 가해자가 누구인지 제대로 모르는 경우다. 피해망상이나 집착으로 가해지는 스토킹은 피해자의 모든 것을 파괴한다. 정신과 육체, 일, 가족 등등.

혼마 다카오는 아내와 딸을 사랑하는 중년의 회사원이다. 마흔이 넘고, 승진도 순조로우나 단조롭다. 바야흐로 중년의 위기를 맞은 혼마는 만남 사이트에 접속하기 시작한다. 모르는 여자와 메일을 주고받다가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 만난 간호사 리카. 메일을 주고받다가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통화를 한다. 그게 문제였다. 가까워졌다고 믿은 순간부터 스토킹이 시작된다. 회의에 들어갔다 오면 부재중 전화, 메시지가 수십 통이다. 두려움을 느낀 혼마는 휴대폰 번호를 바꾸지만 소용이 없다. 이름도, 직장도 가짜였지만 리카는 모든 것을 알아내고 그의 집까지 감시하기 시작한다.

이가라시 다카히사의 데뷔작 <리카>는 상상을 초월한 스토킹을 당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아니다. <리카>에서 남자는 중요하지 않다. 2002년 호러 서스펜스 대상을 수상한 <리카>의 핵심은 세상의 모든 악을 뛰어넘는 리카라는 존재다. 메일을 주고받던 PC방 근처에서 마주친 리카의 형상은 도저히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분명 이목구비는 예쁜데도 피부가 거무튀튀하고 아무 표정이 없어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가 몰려온다. 바짝 마른 장신인데도 움직임은 너무나 빠르다. 그리고 악취.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생각하며 소설을 썼다는 작가의 말처럼 <리카>는 살인마에게 쫓기는 장면에서 박력과 긴장감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캐릭터가 강렬하다. 혼마가 아니라 리카. 리카를 한 번이라도 마주한 사람이라면 능글능글한 탐정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형사도 두려움을 느끼며 얼어붙는다. <리카>를 보고 있으면 몇 편의 영화와 만화가 떠오른다. 존 카펜터가 <할로윈>에서 창조한 순수한 악의 결정체 마이클 마이어스. 미이케 다카시의 <오디션>에서 태연하게 남자의 발목을 자르던 여인.

가장 비슷한 이미지는 모치즈키 미네타로의 만화 <좌부녀>다. 마스크를 쓴 장신의 여인에게 스토킹을 당하는 남자는 그녀가 사람인지, 요괴인지 알 수가 없다. 일종의 도시전설처럼 군림하는 악의 존재다. 리카 역시 그렇다. 과거를 추적해보니 단서가 나온다. 하지만 아무것도 확증할 수 없다. 그녀에게 당한 사람들의 증언만이 있을 뿐이다. 그녀를 만난 이들은 모두 도망치려 할 뿐이다. 리카는 마치 일본 괴담에 등장하는 8척 여자귀신 같기도 하다. 그녀를 만나면 인근의 누군가 죽어나간다는 괴담.

북리뷰

<리카>는 지극히 현실적인 스토킹의 공포를 그리고 있어 섬뜩하고, 동시에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악의 존재를 부각시켜 혼돈에 빠트린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기에 더욱 두렵다. 그렇게 악 혹은 어둠이 모든 것을 삼켜버린 인간들이 현실에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도시전설이기도 한 리카는 더욱 더 현실적인 공포로, 읽는 순간 섬뜩해진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