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탁월한 기억력도 못 찾는 범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황소연 옮김 북로드·1만3800원

보고 들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과연 좋을까? 공부를 하거나 형사가 된다면 최적의 능력이다. 한 번 책을 읽으면 모두 기억하고, 보고 들은 단서를 모두 기억하고 퍼즐을 맞출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개인으로 본다면 단점도 있다. 인간에게는 잊어버리고 싶은 순간도 무수하니까.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들 역시.

에이머스 데커도 그랬을 것이다.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데커는 아내와 딸이 살해된 현장을 목격한다. 자살하려고 했지만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데커는 죽은 것처럼 살아간다. 경찰을 그만두고 노숙자로 지내다가 그나마 정신을 차려 여관에 기거하며 탐정 일을 하고 있다. 아내와 딸을 죽인 범인의 단서는 전혀 없고, 삶의 목적을 모두 잃어버린 채로. 2년 후, 세바스찬 레오폴드라는 남자가 자수를 한다. 편의점에서 만난 데커가 무시했기에 뒤를 따라가 가족을 죽였다고. 다음 날, 데커가 다닌 맨스필드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여 학생 네 명과 교직원 세 명이 죽는다.

어쩌면 운명이 존재할 지도 모른다. 데커에게는 지독한 운명의 순간이 두 번 찾아왔다. 미식축구 선수였던 데커는 경기 중에 사고를 당해 후천성 서번트증후군을 갖게 된다. 과잉기억증후군.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할 수 없게 된 데커는 경찰에 지원한다. 보고 들은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된 덕분에 무난히 시험을 통과하고 형사가 되었다. 하지만 가족이 살해당했다. 순식간에 데커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기억한다. 그날 밤, 그 순간의 모든 것이 데커는 지금 눈앞에서 보듯이 생생하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매력은 캐릭터에 있다. 데커를 비롯한 모든 조연들도 개성적이고 데커와의 조화가 뛰어나다. <레인맨> 등 영화와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서번트증후군을 가진 이들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대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 데커는 후천적이기 때문에 자폐적이지는 않다. 그래도 생각에 빠지면 혼자 사라지기 일쑤다. 그리고 철저하게 논리적인 방법으로 단서가 아니라 증거를 찾아낸다.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종합하여 납득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낸다. ‘그 자의 행동은 납득이 불가능하니까요. 난 납득 불가능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두 개의 사건이 얽히면서 시작된다. 데커의 가족이 살해된 사건과 맨스필드 총기 난사 사건.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맨스필드 사건을 수사하면서 밝혀지는 모든 단서는 데커를 향하고 있다. 데커를 노린 두 개의 사건이다. 누가 데커에게 원한을 가진 것일까? 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데커는 그 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북리뷰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데커가 전혀 기억할 수 없는 범인을 찾기 위해 현재의 사건을 파고 들어가는 구성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수수께끼가 궁금하고, 맨스필드 사건의 단서들을 찾아 맞춰가는 데커의 능력에 감탄하며 빨려 들어간다. 1996년 <앱솔루트 파워>로 데뷔했던 변호사 출신 작가인 데이비드 발다치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데커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당연히 시리즈로 이어질 매력적인 캐릭터의 탄생이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