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그럼에도 후회를 달고 사는 존재다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을까, 저렇게 하는 것이 좋을까, 매순간 결정을 내려야 한다. 선택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엎질러버린 물은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홍상수의 영화는 묻는다. “만일 이랬다면?”이라고.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두 가지 에피소드를 겹쳐놨다. ‘이랬을 경우’와 ‘저랬을 경우’다.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 분)는 실수로 특강 하루 먼저 수원에 간다. 시간이 남아 행궁에 들른 그는 윤희정(김민희 분)을 만난다. 한때 모델이었지만, 지금은 화가를 꿈꾸는 여성이다. 희정은 예쁘다. 한눈에 반한 춘수는 희정에게 “커피나 마실래요”라고 제안을 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갈라진다. 춘수와 희정은 일식집에 가고, 희정 지인의 카페에 들른다. 그리고 술을 마신다. 하지만 행동은 다르다. 한 명의 춘수는 희정의 호감을 사기 위해 비위를 맞춘다. 속내를 숨기고 자신을 포장한다. 또 한 명의 춘수는 자기 의견을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다. 유부남임을 공개하며 사랑을 고백한다. 어떤 경우에 희정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후회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후회를 달고 사는 존재다. 후회를 하고 싶지 않은 심리를 행동경제학에서는 ‘후회회피(regret aversion)’라고 부른다. 현재 혹은 미래에 후회를 꺼리는 심리는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단기적으로는 실패한 행동을 더 강하게 후회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하지 않은 것을 분하게 여기며 마음 아파한다. 마크 트웨인은 “20년 지나면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을 더 후회하게 된다”고 말했다.

[영화 속 경제]<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그럼에도 후회를 달고 사는 존재다

주식 X종목을 갖고 있는 ㄱ씨가 있다. 그는 지난해 그 주식을 팔아서 Y주식을 사려 했다가 그대로 두고 말았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때 팔았으면 1500만원의 이익을 낼 수 있었다. ㄴ씨도 X종목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해 Y주식을 팔아서 X종목을 샀다. 만약 Y주식을 그대로 들고 있었다면 1500만원 이익을 낼 수 있었다. 두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후회를 할까. 단기간으로 보면 ㄴ씨가 더 후회를 한다. 팔지 않았더라면 벌 수 있었던 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ㄱ의 후회가 더 커진다고 한다. “그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심리가 더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최근 몇 달 사이에 있었던 일 가운데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런 이런 선택을 했는데, 그걸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답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때 그 일을 했어야 한다”고 답한다는 것이다. 마테오 모텔리니는 저서 <경제는 감정으로 움직인다>를 통해 ‘후회회피’를 이렇게 설명한다.

춘수와 희정의 만남은 ‘후회회피’의 연속이다. 춘수가 희정에게 “커피 마시러 갈래요?”라고 묻는다. 희정은 잠시 뜸을 들이다 “그러죠”라고 답한다. 낯선 사람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영화감독이라는데, 그가 한국 최고의 감독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좋은 기회를 날렸다는 후회를 하기 싫은 거다. 희정은 춘수에게 “아는 언니가 파티를 여는데, 같이 갈래요?”라고 묻는다. 춘수는 망설이다가 “그러죠”라며 동의한다. 굳이 그 파티에 끼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행여나 희정과 가까워질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아니오”라고 했다가 뒷날 후회할 수도 있다.

영화 속 경제

극단적인 후회회피는 결정을 미루는 것이다. 하지만 결정을 미뤘다고 후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은 그 상태에 대한 동의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는 의미다.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들이 나온 선거 때 유권자들이 종종 겪는 일이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이 있다. 후회회피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문구가 있을까 싶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