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뤄양…문화재 약탈국은 ‘엘긴의 변명’을 멈추라

그 옛날 숭배와 신앙의 생생한 산물인 용문석굴, 거기에 부조된 부처·보살·제자·역사가 뜯겨져 나가 해외 어딘가에서 전시되고 있다. 잘못 뜯겨진 경우엔 머리와 몸통이 나뉜 채 말이다. 그렇게 뜯겨져 나간 것의 실상은 인류의 양심일 터이다.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으로부터 떼어온 조각물을 이렇게 부른다. 19세기 초 오스만튀르크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토머스 브루스 엘긴은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고 있던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조각을 영국으로 가져갔다. 수많은 조각물이 원래의 자리에서 떼어내어지면서 파괴되었고 운반되면서 유실되었다. 영국박물관의 듀빈갤러리를 채우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 조각물은 바로 이런 약탈의 결과물이다. 듀빈갤러리에 있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 강의 신 일리소스,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는 얼굴이 없다. 다름 아닌 약탈의 흔적이다.

용문석굴의 수많은 석조 역시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과 같은 불운을 겪었다. 용문석굴에서 사라진 유물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고, 그 다음이 미국이다. 유럽의 스웨덴·영국·프랑스, 그리고 캐나다에서도 용문석굴의 유물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 나라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소장된 용문석굴의 유물 대다수는 제국주의 시대의 약탈품이다.

간경사의 나한 군상. 제일 오른쪽이 뜯겨져나간 마하가섭상.

용문석굴에서 사라진 수많은 유물들
이수가 흘러가는 양쪽에 마주하고 있는 용문산(서산)과 향산(동산), 서산 석굴 곳곳에 약탈의 흔적이 남아 있듯 동산 석굴도 그러하다. 북→남으로 가면서 서산을 둘러본 뒤, 이수를 가로지르는 만수교(漫水橋)를 건너면 동산에 이른다. 동산은 남→북으로 가면서 둘러보면 된다. 동산의 주요 석굴은 뇌고대 삼동, 만불구의 천수천안관음상감·서방정토변감·고평군왕동, 간경사, 이연화동, 사안동이다. 동산에서는 석굴뿐 아니라, 북위 때 지어진 향산사와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무덤이 있는 백원 역시 꼭 들러봐야 한다. 향산사와 백원은 다음 이야기에서 다루기로 하고, 이제 빠른 걸음으로 동산 석굴을 쭉 살펴보기로 한다.

동산의 가장 남쪽에 자리한 뇌고대 삼동은 뇌고대 북동·중동·남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밀종(密宗)의 조상(造像)이 많다. 당 현종 때 만들어진 뇌고대 북동의 주불은 비로자나불이다. 불교의 삼신불(법신불·보신불·응신불) 가운데 부처의 진신(眞身)에 해당하는 법신불(法身佛)이 바로 비로자나불이다. 뇌고대 북동의 비로자나불은 얼굴 부분이 풍화되었고, 양쪽의 좌불(보신불인 노사나불과 응신불인 석가모니) 역시 훼손된 상태다. 11면(面) 4비(臂) 관음상은 벽에서 뜯겨진 채 현재 일본 오하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측천무후 때 만들어진 뇌고대 중동은 석굴 내부에 1만5000존의 좌불이 조각되어 있다. ‘대만오천불상감(大萬五千佛像龕)’이라고도 하는 이 석굴의 주불은 미륵불이다. 미륵불이 앉은 자리 아래에서 양옆으로 뻗어나간 두 송이의 연꽃 위에는 보살이 서 있다. 미륵불의 두상은 1930년대에 약탈되었고,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아트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다. 뇌고대 남동 역시 측천무후 때 만들어졌다. 중앙에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고, 석굴의 벽에는 연꽃과 보살이 가득 새겨져 있다.

만불구는 뇌고대 삼동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동서 방향의 산골짜기 북쪽 측면에 불감이 밀집되어 있고 조상 역시 많기 때문에 ‘만불구(萬佛溝)’라고 부른다. 용문석굴의 당나라 조상 가운데 20% 정도가 바로 만불구에 있다. 3개의 눈에 12개 팔의 천수천안관음상(千手天眼觀音像), <아미타경>과 <무량수 경>에 나오는 서방의 극락세계를 묘사한 서방정토변(西方淨土變), 만불구에서 가장 큰 석굴인 고평군왕동(高平郡王洞)은 꼭 살펴보시길. 이 가운데 고평군왕동은 만불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니 단단히 마음먹고 찾아가야 한다. 이 석굴을 만든 고평군왕은 측천무후의 조카인 무중규(武重規)다. 석굴이 만들어지는 중에 무중규가 병사하여 미완의 상태로 남았다. 석굴 안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2보살과 2제자가 시립해 있으며, 석굴 밖에는 두 명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만불구의 감실과 석굴을 살펴본 다음엔 간경사·이연화동·사안동을 차례차례로 둘러보면 된다. 여기서는 이연화동과 사안동에 대해 간단히 먼저 알아보자. 간경사 북쪽에 자리한 이연화동은 이연화(二蓮花) 남동과 북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연화동 역시 측천무후 때 만들어졌으며, 남동과 북동의 구조는 거의 비슷하다. 석굴 안에는 1불 2제자 2보살 2천왕이 한 세트로 부조되어 있다. 사안동은 연화동에서 30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사안동 내부의 동쪽 벽 아래에 장방형의 불단은 있지만 석조상은 사라진 상태다. 남쪽 벽에는 작은 감실이 있고 1불 2제자 2보살 2천왕 2역사가 부조되어 있다. 석굴 천정에는 커다란 연꽃과 그것을 둘러싼 4마리의 새가 조각되어 있다. 이 새의 정체는 본래 학인데 기러기로 오인되는 바람에, 이 석굴을 ‘사안동(四雁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연화동과 사안동은 많이 훼손된 상태다. 세월에 따른 풍화의 탓도 있지만 고의로 뜯겨진 것들도 상당수다. 하지만 그 행방조차 알 수 없다. 이제 간경사를 끝으로 용문석굴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면서, 문화재 환수 관련 문제도 고민해보기로 하자.

뇌고대 중동

70여년 만에 겨우 돌아온 마하가섭상
간경사 역시 측천무후 때 만들어졌다.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오던 도중에 이수에 불경을 빠뜨리게 되어 이곳에서 그것을 말린 데서 ‘간경사(看經寺)’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간경사 석굴 바깥에는 문루(門樓)가 세워져 있다. 석굴의 높이는 8m이고, 남북 너비는 11m, 안팎 깊이는 12m가량이다. 이곳의 내부 역시 풍화로 인한 훼손이 매우 심한 상태다. 간경사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29존의 나한(羅漢) 군상이다. 석굴 정면의 벽(11존), 남쪽 벽(9존), 북쪽 벽(9존)에 새겨진 각각 1.8m가량의 나한 부조는 당대 최고의 나한 군상이라 칭해진다. 이들 나한 군상으로 인해 간경사 석굴은 마치 대형의 선당(禪堂)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선종이 주관하여 만든 석굴로 추측된다.

29존의 나한 군상은 <역대법보기(歷代法寶記)>의 기록에 근거해 조각되었다고 한다. <역대법보기>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열반한 뒤 마하가섭에게 불법을 전수했고 그 뒤로 29대인 보리달마까지 전해졌다. 이들 29명이 바로 선종의 서토(西土) 29조(祖)다. 간경사 석굴 안의 나한 군상은 바로 이 계보의 순서를 따르고 있다. 남쪽 벽에 가장 먼저 새겨진 이가 1조인 마하가섭이고 그 다음이 2조인 아난이다. 3조인 말전지 다음으로는 상나화수·우바국다·제다가·미차가·불타난제·불타밀다·협(10조), 부나야사·마명·비라·용수·가나제바·라후라·승가난제·승가야사·구마라타·사야다(20조), 파수반타·마나라·학륵나·사자·사나바사·우바굴·수바밀다·승가나차(28조)가 차례로 새겨져 있고, 마지막으로 29조인 보리달마가 새겨져 있다. 이렇게 보리달마까지 전해진 법맥이 마침내 중국으로 이어지고, 보리달마는 중국 선종의 개조가 된다.

29존의 나한 군상에서 선두에 해당하는 마하가섭상의 상반신이 남쪽 벽 하단에서 보이지 않는다. 원래 있었던 흔적은 선명히 남아 있는데 말이다. 1935년 즈음 뜯겨져 나가 외국으로 반출된 것이다. 이후 마하가섭상은 오랜 세월 여러 차례 팔리면서 여러 곳을 전전하게 된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갔고, 다시 캐나다로 가게 된다. 이후 캐나다의 개인 소장가가 1978년에 캐나다 국립미술관에 기증하면서 마하가섭상은 그곳에 계속 소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2001년 4월, 마하가섭상은 마침내 용문석굴로 돌아오게 된다. 그 경위를 간략히 알아보자. 2001년 4월 12일, 중국 국가문물국에서 뤄양의 문물관리국과 용문석굴 관계자에게 신속히 전문가를 파견해 감정해달라고 요청한다. 용문석굴에서 사라진 마하가섭상을 캐나다 국립미술관에서 반환하겠다고 알려왔다는 것이었다. 4월 18일, 베이징 고궁박물원에서 전문가들이 감정회를 열었다. 캐나다 국립미술관에서 보내온 붉은 상자 안에는 마하가섭상 상반신(84.3cm)이 들어 있었다. 감정 결과 그것은 용문석굴에서 유실된 것임이 확실했다. 이튿날 캐나다 국립미술관 측은 정식으로 마하가섭상을 중국에 반환했고, 국가문물국에서는 이를 용문석굴에 넘겼다. 4월 21일, 70년 가까이 타향을 떠돌던 마하가섭상은 마침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간경사에서 이수 건너편을 바라보면 봉선사의 노사나불이 정면으로 보인다. 사람들을 눈뜨게 하는 노사나불의 빛이 이 극적인 귀환을 이뤄낸 것일까?

간경사

간경사 마하가섭상

이행되지 않는 유네스코 문화재협약
간경사 마하가섭상의 귀환은 캐나다 국립미술관 측의 자발적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캐나다 국립미술관에서 먼저 그것이 불법적으로 반출된 문물임을 발견하고 확인 과정을 거쳐 무상으로 중국에 반환한 것이다. 이는 문화재 환수·반환과 관련된 정말 훌륭한 본보기다. 간경사 마하가섭상의 반환은 1970년에 유네스코가 채택한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국제협약(유네스코 문화재협약)’에 근거한 것이다. 이 협약에 의하면 불법 반출된 문화재는 원소유 국가에 반환해야 한다. 이런 협약이 있음에도 실제로 이행되기란 쉽지 않다. 약탈을 자행한 강국들의 기득권 주장은 너무도 당당하다. 만약 자신들이 보관하지 않았다면 해당 문화재가 더 많이 파괴되었을 것이라는 게 대표적인 변명이다. 문화재 약탈 행위를 ‘엘기니즘(Elginism)’이라 하고, 이를 합리화하는 것을 두고 ‘엘긴의 변명’이라 한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물을 약탈한 엘긴의 이름에서 유래한 용어다. 불법 반출된 문화재를 원소유 국가에 모두 반환하게 된다면 영국박물관은 텅 비게 될 것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과거에 열강은 약소국의 문화재를 대놓고 약탈했다. 그리고 그것을 그럴듯한 엘긴의 변명으로 포장했다.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한 중국은 관련 국가에 문화재 반환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 문화재들을 중국에서 제대로 보관할 수 있게 된 지금은 엘긴의 변명조차 통할 수 없다. 이게 어디 남의 나라 이야기인가. 국외로 불법 반출된 우리나라 문화재는 얼마나 많은가. 무려 6만 점이 넘는 우리나라의 문화재가 일본에 있다고 한다. 해외로 유실된 문화재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이다. 이 가운데 합법적 루트를 통한 것은 일부일 것이다. 대부분 일본의 식민지 치하에서 약탈당한 것들이다.

그 옛날 숭배와 신앙의 생생한 산물인 용문석굴, 거기에 부조된 부처·보살·제자·역사가 뜯겨져 나가 해외 어딘가에서 전시되고 있다. 잘못 뜯겨진 경우엔 머리와 몸통이 나뉜 채 말이다. 그렇게 뜯겨져 나간 것의 실상은 인류의 양심일 터이다. 그 옛날의 신앙심은 잃었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양심은 이제 되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캐나다 국립미술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마하가섭상 반환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박물관 측에서는 마하가섭상의 반환에 대해 “과거의 잘못(the wrongs of the past)을 바로잡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라고 표현했다. “예술 세계와 캐나다에게 좋은 날이다. 우리가 조각의 반환을 결정한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인류의 예술적 유산을 보존하는 데 책임 있는 태도(responsible manner)를 취한다는 미술관의 입수 정책에 부합하고자, 캐나다 국립미술관은 나한상의 정당한 자리(rightful place)는 그것의 본거지(original home)인 중국의 용문석굴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캐나다 국립미술관 측의 이러한 입장에서 책임을 다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긍지와 자부심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

캐나다에서 마하가섭상을 간경사 석굴에서 떼어내 가져간 것도 아니다. 캐나다 국립미술관은 그것을 개인 소장가로부터 기증받은 것이다. 그 개인 소장가 역시 불법으로 취득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캐나다 국립미술관은 ‘애초에’ 그것이 불법으로 반출된 것임을 확인하고 반환 결정을 내렸다. 캐나다 국립미술관에서 마하가섭상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그들의 양심과 책임과 품격을 인증했다. 제국주의 패권으로 남의 것을 약탈해간 강국들이여, 진정 존경받는 강국이 되고자 한다면 그대들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책임 있는 태도로 모든 것을 그것의 정당한 자리인 원래의 장소로 되돌려 놓으라. 약탈품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 그대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그대들의 자존과 역사의 심판일지니.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원>